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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eddie Journey Mercury Mar 21. 2018

2. 끝과 시작이 만나는 곳

Santiago de Compostela, 끝과 시작의 공간-

산티아고는 길이 끝나는 곳이 아니다.
'인생(Real Life)'이라는 진짜 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Santiago Cathedral에 도착하던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길을 걸은지 32일차가 되는 날, 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했다. Camino de Santiago의 목적지. 32일간 이 곳에 도착하는 감격스러운 순간을 꿈꾸며 걷고 또 걸었다. 그런데 정말로 여기서 길이 끝나는걸까?




26일 차, O Cebreiro를 넘어 Santiago de Compostela가 있는 Galicia 주(州)에 들어섰다. 프랑스길을 걸으면 Navarra, La Rioja, Castilla y Leon, Galicia 이렇게 총 4개의 주를 지나게 된다. 이 가운데 Castilla y Leon은 워낙 면적이 넓어 Burgos, Palencia, Leon으로 나누어 구분하기도 한다. 카스티야&레온과 갈리시아의 자연 풍경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카스티야&레온에서는 낮은 평원이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걷었다면, 갈리시아에서는 푸른 숲으로 가득한 산속을 계속 오르내리며 걷게 된다.


갈리시아에 가기 위해서는 해발 1,300m에 위치한 O Cebreiro라는 산 정상의 마을을 넘어야 한다. 오세브레이로는 까미노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가운데 하나로 알려져 있다. 고도가 높은 곳에 위치해 안개가 마을을 감싸는 날이 많고, 돌로 지은 갈리시아 전통 양식의 집들로 가득 차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다워 순례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오세브레이로를 넘던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마을은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었다. 함께 길을 걷던 Maxime과 나는 오랜만에 보는 북적대는 관광객들의 풍경에 신선함을 느꼈다. 그런데 어느 관광객은 우리의 배낭에 달려있는 조개를 보고, 자신의 어린 자녀에게 우리가 순례자임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며 새로움을 느끼는 묘한 장면. 색다른 기분이었다.  


나와 대부분의 까미노 여정을 함께 한 캐나다에서 온 Maxime. 우리는 까미노 위에서 진짜 가족(Real Family)이였다-




스페인 북부 지역의 겨울은 우기(rainy season)이다. 눈과 비가 자주 내리고, 구름 낀 날이 많다. 특히 갈리시아 지역은 산간 지역이라 유독 눈과 비가 더 많이 내린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18일 차였던 Leon을 떠나는 날부터 약 열흘간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고, 따뜻한 햇살이 우리의 길을 이끌었다. 현지인들은 겨울에 이렇게 좋은 날씨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가 운이 좋은 순례자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특히, 오세브레이로를 전후로 3-4일간은 푸르른 녹음과 따사로운 햇살때문에 매 순간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풍경이 이어졌다.


이렇게 화창한 날씨에 갈리시아를 걸은 우리는 진짜 행운아(Lucky Guy)였다-


30일 차, Palas de Rei를 출발해 Arzua를 향했다. 이동 거리는 대략 30km였다. 산티아고까지 남은 거리는 약 70km였고, 하루에 평균 23-24km씩 사흘만 걸으면 되는 여유로운 일정이었다. 하지만, 이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전체 까미노 일정을 통틀어 가장 힘든 일주일이 시작됐다. Palas de Rei의 알베르게를 나서니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은 온통 하얗게 변해있었다. 약하게 날리던 눈발은 날이 밝아오자 비로 변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Fisterra에 도착할 때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 내렸다. 우천시를 대비한 장비라고는 싸구려 판초 우의 하나가 전부였는데,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빗줄기에 무용지물이 되었다. 목적지 마을에 도착하면 신발과 바지, 자켓, 어떤 때는 속옷까지 모두 쫄딱 젖어있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날에는 보통 Pedrouzo까지 이동한 후에 마지막 날에 약 20km를 더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는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드려지는 정오 순례자 미사에 참석하기를 원했고, 그래서 페드르주에서 9km 떨어진 Lavacolla까지 더 가기로 했다. 이동거리는 총 30km였다. 그런데 약 5시간을 걸어 페드르주에 도착했을 때 이미 옷은 몽땅 젖고, 빗줄기는 더 거세지고 있었다. 진짜 문제는 사타구니였다. 젖은 청바지를 입고 빠른 속도로 걷다 보니 사타구니 안쪽이 청바지에 쓸려 멍이 들고, 피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Maxime에게 너무 힘이 드니 Bar에서 쉬면서 옷과 신발을 조금 말리고 가자고 했다. 하지만 Maxime은 여기서 쉬면 몸이 식어 걷기가 더 힘들어지니 계속 걷는 게 좋겠다고 했다. 결국, 쉬지 않고 계속 걷기로 했고, 빠른 속도로 걸어 9km를 2시간이 채 안되어 주파했다.


라바코야에 도착한 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정보로는 라바코야에 문을 연 알베르게가 하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막상 도착하니 모든 알베르게가 문을 닫은 것 아닌가. 다음 마을은 6km 정도를 더 가야 하는데, 온종일 비를 맞으며 걸어 체력이 바닥나 더 걸을 수가 없었다. 다른 일행들에게 연락을 해보니 비가 많이 내려 다들 페드르주에서 멈췄다고 했다. 맨붕이었다. 라바코야에 덩그러니 남겨진 Maxime과 나는 까미노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여기까지 와서 가장 중요한 Santiago까지의 길을 택시로 가게 되는 거 아니냐는 농담을 주고받기까지 했다. 다행히 미리 도착하여 호텔 방을 잡은 Mariella를 만나 하루를 얹혀 잘 수 있었다.


세찬 비를 맞으며 길을 걷는 일은 나를 너무 고되게 했다-


다음날도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다행히 빗줄기가 그리 세지 않아 정오 미사에 늦지 않게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내 좋은 날씨가 이어지다가 산티아고에 가까워지면서 날씨가 험해지니 마음이 계속 다운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산티아고가 나를 반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사실 길을 걷는 동안 좋은 생각만 들었던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의 부족함과 내 안의 어두움이 인식되어 괴로웠던 순간도 많았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의 3일간은 안 좋은 날씨와 함께 이런 부정적인 감정이 절정에 달했던 시간이었다.  




까미노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3일 동안 여러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더 이상 이 길을 걸을 수 없다는 아쉬움이 겹치면서 우울해졌다.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던 Maxime과 나는 마지막 일주일 동안 까미노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까미노를 시작하기 전에 느꼈던 불안함이 생각났다. 800km를 걸어야 한다는 체력적인 염려에 여러 환경(재정적, 정서적 결핍)적 불안요소가 더해지면서 두려운 마음으로 생장으로 향했었다.


항상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새로운 시작 앞에서는 매번 두려움과 걱정 속에 시간을 보냈다. 반대로 무언가 끝이 날 때면 허무함 속에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끝과 시작 모두 내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직전의 3일간 '끝'과 '시작'이라는 단어가 서로 뒤엉켜 내 머릿속을 배회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것은 이 길이 끝난다는 것인데, '끝'이라는 순간의 허무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우울한 감정이 마음을 지배했다. 아마도 이 길이 끝나면 또 무언가가 시작될 것이라는 데서 오는 두려움과 걱정 같은 감정이 겹쳐져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이 길이 끝나고 있는 것인지, 다시 시작되고 있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길고 긴 길(Camino)을 걸어 산티아고라는 끝에 다다른 줄 알았는데,
'허무'하게도 길을 걷기 이전의 시발점으로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자 모두들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어떤 이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또 어떤 이는 하루 이틀의 휴식을 위해 고급 호텔로 향했다. Maxime과 나는 비 내리는 산티아고 대성당 광장에 남겨져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난처해하고 있었다. 와이파이를 찾아 근처 Bar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광장으로 나와 각자의 길로 떠나는 다른 순례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한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뭔가 헛헛한 마음이 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침묵에 빠졌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이 여정을 다함께 축하하며 즐거운 파티를 하는 장면을 상상했었다. 산티아고에 도착하자마자 이렇게 각자의 길로 허무하게 헤어질 줄은 몰랐다.


저녁을 먹으며, 산티아고에 다다르며 느꼈던 끝과 시작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Maxime에게 이야기했다. Maxime은 길 위에서의 까미노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제 인생이라는 진짜 까미노가 시작되는 거라며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와인 한 병에 서로를 위로하였고,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Fisterra로 향하는 또 다른 Camino를 기대하며 잠들었다-


산티아고에서 Maxime의 아버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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