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일기 vs 엄마일기
1980년생 여자가 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일기 속에서 공통된 스토리를 뽑다.
남자친구
1994년 8월 27일
아침에 폐품을 들고 등교하다 w를 만났다.
"들어줄까?"
w가 먼저 묻길래 "아니. 괜찮아. 암튼 우리 신기하다. 이렇게 아침 일찍 만나다니 말야. 너무 재미있는거 있지" 했다.
저녁에는 9시 반에 집에 왔다. 우리집에 오는 지름길은 날이 갈 수록 무서워진다. 오늘도 지름길에 들어섰다. 들어서는 길목부터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뒤에서 시커먼 물체가 쑤욱 나타났다. 자전거를 탄 남자였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진미야."
"어머. w야?"
주저 앉을 뻔했다. 아니 너무 놀랐고 눈물 날 것처럼 반가웠다. w는 금새 자전거에서 내려 나와 길을 같이 걸었다. 얼마나 안심되었는지 수십명의 호위대를 거느린 기분이었다. 만약 진짜 내 남자친구였다면 손이라도 꼭 잡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w야. 우리 정말 재미있다. 아침에 만나고 지금은 이렇게 밤에 만났잖아"
게다가 w는 얼마나 매너있는지 자전거를 공터 뒤쪽에다 세워두고 집에 바래다 주었다.
"그럼 다시 가서 자전거 가져와야하잖아? 정말 고마워.w야"
"그래. 잘가."
"응. 이 은혜 잊지 않을게"
w는 집 앞 골목까지 바래다주고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w에게 고맙다는 보답을 어떻게 해야할지 가슴이 뛰었다. 아.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하지.
2009년 12월 31일
결혼전부터 알고 지낸 세명의 남자친구가 있다.
A는 한동안 연락이 뜸했기에 내 결혼식에 안왔고
B는 그 날 자격증 시험이 있다며 계좌로 축의금 십만원을 입금했고
C는 축의금 오만원 내고 사진까지 찍어주고 갔다.
지하철에 앉아있는데 오늘 그들에게 연말 인사를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차려대로 문자를 보냈다. B하곤 주거니 받거니 문자놀이를 했다.
"b아, 오늘도 근무 잘하구 뻔한말이지만 행복해라~ 새해가 코 앞이다."
"죽자!!"
b는 걸핏하면 저런 답장을 보낸다.
"유행어 좀 바꿔 식상해"
" 아니. 난 쓰레기일뿐이야"
"네가 뭔 쓰레기냐 넌 공기업직원이잖아. 공기업직원."
"아니. 난 이번에 000명을 명퇴시킨 민간기업의 피래미일뿐이야"
"네가 점심안먹어서 신경이 예민한가봐. 맛난거먹어. 넌 피래미보다 소중하니까"
그렇게 문자메시지를 끝냈다. b가 힘들어 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나는 B를 아주 좋아했었다.
5년이란 긴 시간동안. 하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고 지금은 친구로써 B의 행복을 바란다.
B는 냉소적이고 똑똑하고 여자처럼 까칠하며 ....또 나를 잘 챙겨준다. 만약 결혼했더라면 저 까칠함에 피가 말랐겠지.
그래도 B, 난 여전히 니가 좋구나.
가만보면 나는 너무 많은 사람을 좋아했나보다.
세명의 남자친구 a.b.c가 결혼하더라도 그 애들과 연락이 끊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B군, 너 어떤 여자 만나는지 보자. 좀 궁금하다.
2015년 9월 6일
"행복은 곁에 와 있는 걸 느끼지 못할만큼 서서히 찾아오지만 불행은 너무 선명하게 찾아온다."
오늘 b의 카카오톡엔 저렇게 씌여있다.
연락 안한지 2년쯤 됐는데 아직도 결혼 전인 것 같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스물 다섯....
b야. 힘내. 너를 응원할게.
★브런치독자들에게.
스물 다섯에 만난 b.
사회생활 시작할 때까지 곁에 있어준 초등학교 동창 w.
두 남자친구가 있어 청춘의 시간이 든든했습니다.
때로는 애인으로 착각하며. 때로는 차라리 가족이길 기도하며.... 우린 남과 여의 평행선을 걸었습니다.
작게 보면 저의 일기지만 크게 보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이기에 케케묵은 일기장을 펼쳤습니다. 오늘도 고맙습니다. 문창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