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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창그녀 Sep 07. 2015

밀양이 아닌 '단양'

소녀일기 vs 엄마일기


1980년생 여자가 쓴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 일기 속에서 공통된 스토리를 뽑다.




단양







1990년 7월 31
7시에 가족이 청량리역으로 향하였다. 충청북도 단양으로 피서 겸 해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빠가 생각하신 시간의 차는 매진된 상태였다. 드디어 가지 말자는 아빠의 말이 나왔다. 실망했다. 동생의 입이 주걱만큼 나왔다.
“그럼 어디로 가요?
“가긴. 그냥 집에 가지
아빠는 겸연쩍은 듯 말씀하셨다. 그래도 어디 정도는 가야잖는가. 분통이 터졌다. 김밥이랑 과자랑 사탕은 다 어떻게 해. 그냥 집으로 향하는 마음이란 무겁기만 했다.

 

1990년 8월 11
포기했던 단양을 언니와 아빠랑 가기로 했다. 멀미약을 미리 먹어서 아주 든든했다. 완행열차를 탔는데 완행은 좌석표가 없고 입석표만 있어서 먼저 자리에 앉으면 임자다. 그런데 늦게 타서 자리가 다. 아빠는 날 자리에 앉게 하시려고 고등학생 오빠들 사이에 앉히셨다. 앞도 오빠 둘. 양옆도 오빠 둘. 쪽팔려서 앉아있을 수가 없다. 한가운데 쪼들려 있으려니 말할 나위가 없다. 앞에 오빠는 기타를 치고 옆에 오빠는 신문을 봤는데 옆 오빠가 “애 앞에서 그런 걸 보니. 자아식” 하는 것이다.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 언니가 불러서 다른 자리로 갔다.

 




2007년 11월 12일

내 고향은 충청북도 단양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마지막으로 러간 그 곳을  다녀왔다. 단양의 가장 번화한 곳에 내렸다. 분식집에 들러 음식을 시키고 수몰민임을 밝히자 주인 내외가 반가워한다. 돌아오는 대답이 느려 역시 충청도 사이구 느꼈다.

우리 가족은 내가 일곱 살 때 댐 건설로 수몰민이 되었고 덕분에 충북 단양에서 서울 큰 아버지 댁으로 이사를 다. 댐이 아니었다면 이 답답한 시골 도시에 갇혀 살아야했을 것이다.
구인사와 천동동굴에 가기로 했다. 구인사는 가파르고 무서웠다. 마지막으로 들른 천동동굴은 좁고 낮았다. 동굴을 겨우 빠져나오자 안내원이 방긋 웃어준다. 추운 날씨라 사람이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단양 이야기를 써서 백일장 장원 탔던 기억이 난다.  내가 이만큼이나 좋아하고 추억하는 단양은 우리 세 자매의 고향이며 엄마의 고향이기도 다. 자꾸 그런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왜 이리저리 떠돌다가 단양이란 도시에 흘러들었던 걸까. 엄마는 왜 아버지의 꼬임에 넘어갔을까. 어찌 보면 가난한 기억이 있고 그닥 볼 것도 없는 도시지만 고향이니까 찾아왔다. 결혼할 사람과.







1990.  단양으로 가는 기차엔   오빠들이 습니다.

2007.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습니다.

 보면 저의 일기지만 크게 보면 우리가 살아온 이야기이기에 케케묵은 일기장 펼쳤습니다. 

오늘도 고맙습. 문창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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