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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too Mar 20. 2018

우연히, 그곳에서...<106화>

[ 제106화 _고통, 고문... 누군가에게는 선물 ]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 
세현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착신 번호를 확인하며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사이 휴대폰 벨소리는 계속해서 울려댔다.

“뭐야? 누군데 안 받아? 프랑스까지 광고 전화가 온 건 아닐테고..."

“음? 아영이...!"

“에? 그럼 받아...! 뭐 죄졌니...? 저번에 또 무슨 부탁했다더니 거절 당할까봐 무서운 거구나? 뭔지 말도 안 해주더니..."

“그런 거 아냐! 잠깐 생각 좀 하느라고..."

"전화가 왔는데, 그 앞에서 무슨 생각을 하고 난리야! 빨리 받아, 아영이 기다려!! 걔 바쁜 애야!!"

해인은 세현의 코앞까지 다가와 장난스럽게 세현의 휴대폰 통화 버튼을 눌러주었다.

“엣...! 앗, 아...여보세요...?!”

“...야!! 임세현...!”

받자마자 소리를 꽥 지르는 통에 깜짝 놀란 세현.

아영의 목소리는 전화기 밖까지 새어 나와 바로 옆의 해인에게까지 들린 듯 했다. 

"그것 봐! 늦게 받아서 아영이 화났잖아!!" 

옆에서 자그마하게 속삭이는 해인.

일본 공항에서 자신의 손님맞이를 부탁했던 세현은 혹시나 자세한 사항을 코치코치 물어오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다행히도 아영은 별 다른 의문 없이 별 대수롭지 않게 응해주었었다. 

부탁 후 하루가 지난 지금. 아영은 세현이 보낸 손님을 만나 어떤 해프닝을 겪었음에 틀림없었다.

 “... 만났니? 그 사람...?”

“그래...!! 만났다!! 너 이러는 게 어디 있냐!? 이렇게 갑자기 보낼 거였으면 얘기라도 먼저 해주던가...!!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미안... 그래도 너한테 어떻게 보낼 방법이 없어서 그랬어...! 이런 핑계 아니면 당분간 자기 나라로 돌아갈 것 같지도 않고...”

세현이 얼마 전부터 꽤나 치밀하게 구성했던 이 계획은 아영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이제는 남...이 되어버린, 친구 기태를 찾아준 아영에게, 정작 아영 자신이 늘 찾고 있었던 대상을 눈앞에 대령시켜주는 것. 

마치 서프라이즈와도 같은 이벤트를 해 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에게도 현재 가장 눈엣가시였던 카와모토에게 복수하고 싶은 이유였다.

얼마 전까지도 해인을 모델로 한 것이나 다름없는 그 사이트 때문에 그 소란을 일으킨 주제에,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게 사이트 운영을 하고 있는 상황을 확인했던 것.

생각해 보아도 괘씸하기 그지없는 카와모토. 세현은 큰 고통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 맞추어 어떤 것이 있을까 생각했다.

카와모토에게 가장 큰 치욕을 안겨줄 수 있는 방법이란.

다른것은 몰라도 예술에 관해서만큼은 무척이나 진지했던, 예술 혼만으로 가득 찬 듯한 그에게 그 방면에서의 '희망고문'이라는 복수였다.

그것도 해인을 이용하려 했던 사이트라는 창구를 역으로 이용해...


“아주 프로 사기꾼 납시었어...! 나도 속이고, 크리스도 속이고... '이게 무슨 상황이야... 하고 한참 어리둥절 하다가 야마다가 옆에서 정리해줘서 겨우 알았다...너... 진짜...!!”

메일 전달 부탁도, 손님맞이 부탁도... 사실은 어느 정도 위험부담을 감수한 일들이었다.

어느 쪽도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세현은 그 순간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시 평소같이 장난 끼 섞인 아영의 전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은 것은 다행이었다.

‘음...!!!’

자기만 모르게 뭔가 흥미로운 얘기를 나누고 있는 듯한 상황을 억울해 하며, 

해인은 알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세현에게 가까이 다가와 속삭였다. 

“임씨, 뭔데, 뭔데? 아영이가 누구 만나? 아영이 소개팅이라도 시켜줬어?"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든 채, 남은 손으로 장난스럽게 해인의 볼을 꼬집어대는 세현.

해인의 질문에는 대답 없이 장난스런 표정만을 지어주며 아영과 통화를 계속 이어갔다.

“그 야마다라는 친구, 정말 쓸 만한 친구네... 상황도 다 파악해서 설명해주고... 나도 결국 그 친구한텐 다 들킨 거 아냐...!! 완전 범죄가 될 수 있었는데...하핫...!”

“너 암튼 일본 다시 오기만 해봐, 아주 엉덩일 걷어 차 줄거야!"

“좋은... 파트너 같아. 그 야마다란 친구...! 그 친구도 많이 도와줬었다면서 기태...찾는 거... 엄밀히 자기 일도 아닌데..."

“리서치 오타쿠라고 해야 하나...탐정놀이 하난 정말 놀랍게 하더라고... 좋은 파트너....라... 뭐 지금까진 썩 나쁘지는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톤의 아영이었지만, 세현은 조심스럽게 전 날의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 그 사람...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 돌려보내진 않은 거지? 어제...였을 텐데..."

“후우... 얘기가 좀 길어지겠는데... 다 들을 시간 되니, 거기 지금...?”





***




전날. 일본 하네다 국제공항 귀국장.

“그...그럼 뭐야...미야비... 어쩌고 했던 건... 다 헛소리였다는 거야?! 내... 그림을...사겠다고 했었던 것도...!?”

갑작스러운 조우에 아직 상황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던 카와모토. 

이제까지의 사실들을 조합해 완벽한 해석을 이끌어 낸 야마다의 중재 덕에, 

현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카와모토는 순간 끓어오른 분노에 휩싸였다.   

사람들이 즐비한 공항안에서, 주변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무슨 일이라도 벌일듯한 눈빛으로 아영과 야마다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카와모토.

눈 앞의 ‘야마다’라는 사람의 정체에 대해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자신을 찾는 피켓을 들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속인 이와 한패라 여기기는 충분했다.

카와모토는 단번에 야마다의 멱살을 강하게 잡아채며 소리쳤다.

“뭐야!!! 당신...!! 장난이 지나치잖아!! 누구 사주 받고 이런 짓 하는 거야?! 예술가한테 할 짓 못할 짓이 따로 있지 말야...!! 작품을 가지고 장난을 해?!"

갑작스런 카와모토의 도발에 놀란 아영.
말려보려 카와모토의 손을 잡고 늘어졌지만, 가녀린 여성 혼자 분노로 가득 찬 남성의 힘을 저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멱살이 잡힌 야마다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카와모토를 노려보았다.
 
“카와모토... 당신 말야... 뻔뻔함의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아영씨도... 당신한테 속아 금전적으로 손해 본 피해자들이라고...!!”

“뭐, 뭐...피해...? 내가 그럴 생각으로 그랬던 게 아니라고...그리고 아직...”

“아, 그래...?”

야마다는 순간 피식 웃으며 카와모토의 정강이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아얏! 뭐야!! 해보자는 거야?!”

“아, 내가 그럴 생각으로 그런 게 아닌데, 미안하게 됐네...!”

“뭐, 이 자식, 장난하나!! 지금...”

“...라고 내가 얘기하면... 네놈이 지금 맞은 정강이가 안 맞았던 게 되냐? 통증이 없던 게 돼?”

“뭐, 뭐...?!”

“아니지? 그럼... 적어도 정강이 맞은 놈한테 나처럼 미안하다 사과 정도는 해야 할 거 아냐!! 너 찾아다니느라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고생 했는 줄 알기나 알아?!”

“날... 찾아다녔다고...?!”

“그럼... 그러고 돈 떼어먹고 튄 놈을 가만히 놔둘 거라 생각했단 말야?! 이건 뭐 싸이코 패스도 아니고...”

아영은 조금 긴장이 풀린 틈을 타, 있는 힘을 다해 야마다의 멱살을 잡고 있는 카와모토의 손을 밀치고 반대로 카와모토의 멱살을 잡아챘다.

“크리...아니, 카와모토!! 이 자식아!! 왜 엄한 애는 잡고 난리야...! 어디 이번에는 내 멱살 잡고 따져봐라!! 지금 네가 큰소리 칠 입장이야? 남 속이면서, 넌 속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냐?!”

“아, 아영! 미안한데 정말로 속일 생각은 없었어...!! 나 프랑스에서도 계속 아영이 못 잊고 지냈다고...!! 다만, 예술가로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아영이 한텐 너무 미안하니까... 더 성공해서 나타나고 싶었다고...!!”

여전히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은 카와모토. 
아영은 콧방귀도 뀌지 않으며, 오히려 멱살 쥔 손에 더욱 힘을 담아 카와모토의 목을  졸라댔다.

“그게 비겁한 변명이라는 거야! 이 새끼야!! 들킨 다음에야 떠들어 대는 주제에, 지금 그 말을 나더러 믿으라는 거야!!? 긴 말 필요 없고... 경찰서 가자...!!! 콩밥 좀 먹어야 겠다 너란 놈은...!!”

“겨...경찰서..?! 자...잠깐...!!”

“왜? 법적으로 나가자니까 또 쫄았냐?!”

“버...법적으로는 책임을 물을 수가 없지...!!! 내...내가 아영 돈 빌릴 때 뭐...아무 것도...."

아영은 이 순간을 늘 우려해왔었다.

괘씸한 작태를 뒤로 하고라도, 자신이 당한 것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까를 생각하면 늘 확실치 않은 부분이었다.

일본에 오기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차곡차곡 모아두었던 금액의 대부분이었는데, 

철없던 그 때, 아무 의심 없이 그저 신뢰 관계만으로 돈을 빌려주었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대출이나 거래처럼, 
뭔가 서류로서 증빙자료를 남겨놓는 것은 신뢰관계를 망치는 일이라 생각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뿌듯함까지도 가졌었는데.

이제 와 저 빌어먹을 자식에게 법적인 조치를 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한 건지... 돈을 돌려받을 수나 있는 건지...

더군다나 자신이 외국인인 이곳 일본에서라면, 보다 힘든 싸움이 되리란 것이 자명했다.

이제까지 필사적으로 쫓아왔지만, 혹시나 만나게 된다면 카와모토의 일말의 양심에 기대를 거는 방법뿐이었다.

스스로 죄를 뉘우치고 모든 걸 제 자리로 돌려놓았으면 하고...

"지금은... 바로 돈이 없어... 그, 그리고 법적으로 가는 건 별 의미가 없어..."


"......"
 

눈앞에서 이따위 변명을 계속 늘어놓고 있는 쓰레기를 보니 그 생각이 참 바보 같았지만...

막상 바로 손에 닿을 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지금, 이 자식을 달리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원망스러운 현실.
카와모토의 멱살을 잡고 있던 아영의 손은 점점 힘이 풀려갔다.


“...미안해, 아영아... 말 못한 것도 미안하고... 연락 못한 것도 미안해...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반드시 작품으로 돈 벌어서...나중에...”

오히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아영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의 의도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던 것인지, 

카와모토는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아영의 두 손을 꼭 감싸며 조금은 부드러운 톤으로 설득하려 했다.

카와모토의 접촉에 소름이 돋았지만, 아영은 여전히 카와모토를 쥔 멱살을 놓을 수 없었다. 분하고 억울했다. 

순간, 아영의 손을 감싼 카와모토의 손을 거칠게  치우고, 멱살 쥔 손을 더 꽉 쥐어주며 야마다가 말했다. 

“아영씨, 계속, 이거 꽉 잡고 있어. 괜히 휩쓸려서 놓을 생각하지 말고...!”

“어? 어... 어....!!”

야마다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한 채 카와모토 옆으로 다가와 얼굴을 들이밀고 이야기 했다.

“카와모토. 네 놈 얘기 많이 들어왔지만, 이렇게 까지 치졸한 자식일 줄은 몰랐다.”

“뭐. 뭐?! 네...네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카와모토 케이타. 화가명 크리스. 일본에서 한창 화가로 활동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괜히 프랑스에 가서 예술을 해보고 싶다는 헛된 꿈에 부풀어 무리하게 이곳저곳에서 돈을 끌어갔지.

겨우겨우 자리 잡은 그곳에서 안톤을 포함한 다른 외국인들 5명과 작업실을 열어 한 갤러리와 지속적인 거래를 터왔어. 

그러기를 이제 3년이 지났고... 여전히 안 팔리는 그림을 그리는 건지, 누군가가 네 그림 구매 한다 말만 믿고 쪼르르 다시 일본으로 건너 온 상황. 어때? 아니냐?”

조그조근 팩트를 정리해 주는 야마다. 
무언가 비아냥이 섞인 듯한 정리에 카와모토는 큰소리로 항변을 해댔다.

“이 지식이...!! 어디서 사람 뒷조사나 하고 다니나...!! 뭐? 안 팔리는 그림? 말 다했냐?!”

“그래...! 난 그림 같은 거 모르니까...거기까진 모른다 치고... 예술 쪽에 별 관심도 없는 사람한테 예술인으로서의 긍지 같은 거 설파하지 말고...! 얼른 빌려간 돈이나 가져와!! 이건 명백히 갈취야!! 돈 관계 관련해서 다른 변명 만들어낼 생각 하지마!"

“아니, 그러니까 넌 안톤한테...”

“그래도 옛날 생각 때문인지, 네놈 앞에서 저렇게 약한 모습하고 있는 아영씨 봐서 그나마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거 뭐,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군...”

야마다는 가지고 있던 자신의 짐을 열어 트렁크의 깊은 곳까지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후우...안 꺼낸 지 워낙 오래 되긴 했지만...”

각종 서류들로 가득 차 있는, 뚱뚱해진 파일을 꺼냈다. 이제까지 아영과의 숱한 회의와 동행에도 보여준 적이 없던 파일. 

아영 역시 처음 보는 파일에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다...!”

야마다는 뚱뚱한 파일의 거의 마지막 장에 끼워져 있는 약간은 구겨진 듯한 서류를 꺼내며 카와모토에게 들이밀었다.

“카와모토...! 넌 아영씨한테 돈 빌리면서, 이런 상황까지도 예상했던 거 맞지? 여친에게 빌려주는 돈이니, 누구도 뭐라 하지 않을 테고... 증거도 안남았겠다, 혹시 뒤에 문제가 되더라도 네입만 싹 씻으면 아무 효력이 없을 거라고...?!"


카와모토는 야마다가 자신감 넘치게 자신의 앞에 들이민 서류를 보고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이게 뭐냐...!?"





http://m.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628943&page=1#volume1


http://m.me.co.kr/?mode=cdetail&itemNo=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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