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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Jun 21. 2018

로다, 목공을 배우다.

원하는 일과 먹고 사는 일의 교집합 찾기

2018년 2월 5일. 목공의 시작.


로다는 국비지원이 가능한 목공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야외 컨테이너에서 몇개 안되는 난로로 손수 작업을 해야하는 환경이 걱정스러웠다. 난로에 필요한 연료조차 좋지 않아 눈이 따끔거리고 계속 콧물이 나오는 곳이였다. 한겨울에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은 정말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야외에서 해야하는 작업이라면 따뜻해질 때까지 필히 기다려야 한다. 먹고사니즘의 걱정으로 조바심이 들어 이사짐도 다 풀기 전에 목공학원에 보낸 것이 많이 미안했다. 교육 도중에 심하게 앓았을 때는 정말 그만다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한겨울 컨테이너 박스 안에는 한 대의 난롤 뿐이었다. 작업특성상 문도 못 닫는 상황이라 매일 추위와 싸워야 한다.


다행히도 로다는 생각보다 강한 사람이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 추운 컨테이너에서 9시부터 6시까지 잠깐의 점심 휴식시간만 가진 채 하루종일 나무를 자르고 조립했는데 한번의 몸살 외에는 꿋꿋이 다 이겨냈다. 특히 국비지원은 출석체크가 엄격해서 등하원 시간을 꼭 지켜야하고 몇 번 이상 결석하면 지원 받는 것이 도루묵이 되어 버린다. 이러한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 로다는 몇 주간의 길고 긴 '겨우나기'와 '목공나기'를 시작했다.




로다가 수업을 몇번 나가고 가장 힘들어 했던 것은 추위도 아픔도 아닌 '낮아진 자신감' 이었다. 같은 반 수강생(스무명) 중에 자신만 가장 느리고 서툴다는 것이었다. 같은 조 사람들도 과제를 받으면 쓱쓱 톱질하고 드르륵 잘 박아서 금방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로다 자신은 손도 느리고 항상 실수가 잦다고 했다. 조원 사람들이 도와주어야 제 시각에 끝날까말까 한다는 말을 하면서 표정이 어두운 날이 많았다. 10일 중 아홉 날은 본인을 자책했던 것 같다.


조원분들이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 로다의 서랍장


이 시기는 나도 로다와 같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퇴사 욕구가 가득했던 시기였고 로다와 출퇴근을 함께 하다가 빈자리를 느낀 터라 출근이 더욱 고되었다. 더욱 우리가 서로를 배려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사 간 이후에 출퇴근시간이 배로 늘어났고 집과 역 사이의 거리도 꽤 되어서 한두달은 로다가 역까지 태워주었다. 아침에 목공방 가야 하고 저녁까지 몸을 써야하는데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도시락까지 사주기도 했다. 낯선 장면이 연달아 이어지는 출근길이 우울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모두 로다의 노력 덕분이었다.


로다가 데려다주는 출근길. 집에서 직장까지 최적의 경로를 찾기위해 두 달이 걸렸다


로다는 나를 무사히 태워다주고 돌아와 목공 갈 준비를 서둘러 한다. 아침도 재빨리 먹는다. 강의 일주일차부터는 아침도 잘 못챙기고 수업시작 전에 가서 전날 못마친 작업을 이어간다. 조원들의 손을 거쳐야 완성되는 작품을 보며 로다는 어떤 생각을 했을지 잘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쓰렸다. "다른사람들보다 꼼꼼해서 그러는거에요. 느린 게 아니라 천천하는 거에요." 위로를 하면 로다는 고맙게도 알았다고, 힘내보겠다고 말해주었다.



로다도 많이 갈등했을 것이다. 여러 미래들을 고민했고, 이것저것 다양한 분야를 찔러도 봤다. 결국 선택한 '목공'으로의 길. 이것만은 제대로 해보고 진지하게 시작해보려는 로다였다. 웬만하면 기죽지 않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 로다가 수익도 없이 잘 될지도 모르는 길에 들어서니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미니장 1등, 서랍장 2등, 의자 1등!! 사진은 없지만 벤치 1등!


강의는 어느덧 마지막 주가 되고, 수강생들이 만든 작품들을 수강생끼리 투표하는 시간도 가졌다. 미니장, 서랍장, 벤치, 의자 지금까지 만든 작품들이 차례로 전시되었다. 투표는 목심이라고 하는 짧고 얇은 나무막대를 마음에 드는 작품 위에 올려 놓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목심 갯수가 가장 많은 작품이 1등이다.  조원분들이 도와준 서랍장 위에는 4개의 목심이 놓였다. 건너편 목심은 그보다 많다. 그래도 로다는 잘한 편이었다.


이어지는 투표. 미니장이었다. 로다의 미니장 위에 올려진 목심의 개수는 7개. 스무명의 수강생 중 다른 작품은 0~4개 정도였다. 미니장은 로다가 1등이었고, 벤치와 의자는 압도적으로 1등을 차지했다.


목공 수업을 듣는 수강생분들


교육이라기 보다는 노동의 현장에 가까운 강의였다. 정말 힘들었고 열심이었던 늦겨울이었다. 수업이 끝나자 로다는 한 편으로는 시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섭섭하다고 했다. 낯가림이 많고 사람이 불편해진 로다가 조원분과 돈독하게 지내왔기 때문이다. 그 강의에서 로다가 속한 조 분위기가 가장 좋았다. 다른 조와는 달리 좋은 나무는 함께쓰고 어려운 부분들은 가르쳐주며 서로 배려한 덕이었다.


어떻게 먹고 살지?

가장 추운 시기,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목공을 배운 로다는 이제 어떤 것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먹고사니즘의 막연한 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흐릿하게만 보였던 미래들이 조금 선명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두려웠다. 뭐해먹고 살지는 어렴풋이 알겠는데 어떻게 벌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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