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보다 쉽게 외로움을 느끼는 30대 금쪽이의 원인을 찾아서
외로움이란 감전과 허전함은 오늘과 어제, 그리고 내일에도 이어지는 시대의 공통어이자
내 삶을 강하게 지배하는 표준어라는 것을 매 순간마다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최근에 이르러서는 거창한 삶을 사는 위인이나 현인에게 어울릴법한 '고독'이 아닌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외로움'을 지칭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꽤나 현대적이고 대중적이며 한 없이 나약한 사람들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연애기간이 길어지며 상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거나, 믿었던 상사 역시 직장이라는 테두리 안에선 믿기 어렵다고 느끼거나, 죽마고우로 여겼던 친구가 여러 상황들로 인해 점점 더 멀어지는 상황과 경험들이 이 시대의 '고독'이자 '사회적 관계'에서 오는 대표적인 외로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새로운 관계를 확장하는데 폐쇄적이며, 어색해지며, 낯설어지며, '사회성'이란 단어는
희미하게 뜬 눈처럼 옅어지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 외로움의 원인을 찾아 가보면 먼저 준거집단과 소속집단의 괴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나를 지탱해줄 수 있는 특정 집단 또는 내가 희망하는 커뮤니티에 들어가 평소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다는 생각과 달리 현실은 그 그룹에 소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정서적 외로움과 괴리감을 뜻합니다.
본래 본인이 인기가 많거나 사교적이거나, 굳이 큰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저절로 희망하는 준거집단에
소속된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럴 외로움을 느낄 일은 덜할 것입니다.
하지만 준거집단의 기준이 너무 크거나 또는 여러 이유로 소속하지 못한 경우라면, 그 사람은 흔들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떻게 흔들리냐고요? 마음이 항상 불안합니다. 뭔가 관계에 있어서 공을 계속 들여야 하니까요. 또는 기존의 실패했던 관계를 복기하며 행여 지금 잘 유지하고 있는 이 관계가 깨지지는 않을까 걱정하곤 합니다. 어쩌면 흔들림의 정도가 강해 본인이 불안하거나 우울하거나,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애써 자각하지 않으면 바닥을 치는 경우도 남들보다 훨씬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감정을 딛고 일어나 #갓생과 #생산적인삶 으로 이겨내려는 사람들의 경우, 무언가에 집중합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블로그를 열심히 하거나, 투자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등
그 불안에 본인이 매몰되지 않기 위해 다른 것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 조차도 나를 향한 것이 아닌 타인의 사랑과 존경, 그리고 내가 들어가지 못한 준거집단 속에서 받지 못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오늘도 갓생과 자기 계발을 일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은 왜 그렇게 외로움을 병적으로 느끼고
스스로에게 엄격하며 자기 학대를 일삼는 것일까?
열심히 살다 보면 어느 순간 해결되는 감정들이 아닐까?
준거집단이 그들에게 그렇게 중요할까?
네,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이 전개된 한 가지 이유를 뽑으라면
저는 '부모로부터 받은 얕은 사랑'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힘은 부모가 아이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줄 때 생기는 것'
이영자 씨의 저 짤막한 말과 영상 뒤에 이어지는 본인의 방황은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표현되지 않은 얕은 사랑에 기원하고 있습니다.
자식은 나이에 관계없이 철륜이라는 이름 아래 부모로부터 사랑을 갈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표현을 듣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아이들의 경우, 2가지 선택을 하게 됩니다. 방황하거나 아니면 끊임없는 자기 증명과 효도를 통해 어떻게든 돌 같은 우리 부모님의 사랑을 얻어내고야 말겠다고 말이죠.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고, 부모가 제시한 높은 수준의 기대치를 부응하기 위해 자아가 아닌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익숙해진 자식들. 그리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 찾지 못한 채 커버린 소위 '어른 아이'들.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얕은 사랑으로 인해 그 감정의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유독 심하게 흔들리는 친구들은 '관계로부터의 외로움'을 더 많이 느낍니다. 준거집단에 들어가서라도 그 허전함을 꼭 채우고 싶기 마련이거든요.
그리고 부끄럽지만 저 또한 그런 단면들을 일부 가지고 있습니다. 내색하진 않지만 흔들리는 경우도 많고요.
기존에 작성했던 글에서도 밝혔지만,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응원자가 없이 자란 아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저 글을 쓴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부모님은 저에 대해 아쉬운 것과 못마땅한 것들이 한가득이시기도 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있습니다.
여전히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끼고 있지만, 방황하지 않으려 애썼고 누군가를 원망한 적 없으며
그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것이 절대 효도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는 것.
효도는 '빚'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낍니다.
효도라는 짐과 빚에 얽매인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저와 비슷한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끼고 계신 분이 있으신가요?
그리고 그 원인이 혹시 사회적 관계에 대한 허망함과 근원적 이유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얕은 사랑에 있으신가요?
이미 이 글을 읽고 살아계시며 스스로의 삶을 일구고 계신 당신이라면 생존하고 있음으로,
그리고 방황하지 않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자식 된 도리와 효도를 다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 자책하지 말고,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에 너무 많은 무의미한 시간을 흘려보내지 말며, 관계에서 오는 허망함을 삶의 징벌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도 여러분은 잘 살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