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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yond eyes Aug 09. 2022

[에필로그] 아버지가 망해가는 회사를 인수했다

작은 기업에서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

※ 이 글은 아래의 글과 연결되는 글입니다. 


아들, 회사를 인수했어 

작년 겨울, 어머니와 단둘이 데이트를 즐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혹시 너 회사 언제까지 다닐 생각이니?"

"갑자기 왜?"

"아직 정확하지는 않은데, 아빠가 다니는 회사를 인수할까 생각 중이야. 작은 기업이지만 우리가 인수한다면 

꽤나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거든. 일단 확정되면 다시 알려줄게." 


방송사에서 작가로 30년 넘게 일한 어머니와 신문사 기자에서 방송사 임원을 거쳐 30년 가까이 일한 아버지는 서로 내조와 외조를 반복하며 집에서 조차 일 이야기가 가득했다. 

특히 기자 출신인 아버지는 말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고, 그 덕분에 어렸을 적부터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자본사회에서 월급 받는 직장인이 아닌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그리고 아버지 나이 60에 그렇게 간절히 원하던 회사의 주인이 되었다. 

그것도 40이 넘어 입사한 첫 방송사의 월급 사장에서 14년 만에 떳떳한 회사 주인으로서 말이다. 

어머니의 귀띔에 따라 아버지가 나름의 격을 갖춰 그 영광스러운 순간을 발표할 기회를 주기 위해 

나의 얄팍한 기다림을 참기 위해 꽤나 노력했다. 


사양 산업에서 살아남기 vs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문제는 나는 이 인수를 마음속으로 극렬히 반대했다는 것이다. 

공동 투자 방식으로 1인 대주주 체제가 아닌 3인 대주주 체제라는 것도 물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 회사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이 라디오 방송이라는 것에 있었다. 


굳이 큰 설명을 하지 않아도 라디오는 사양이다 못해 기피 산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CBS 김현정의 뉴스 쇼와 같은 히트 프로그램을 보유한 지방 방송사 또한 상황은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지역 방송사로서 주요 프로그램조차 확보하지 못한 라디오 방송사의 수익은 어떨지 안 봐도 뻔하다. 개인적으로 회계 리포트를 유료로 구매해 아버지 회사의 재무 구조를 살펴본 결과 내 예상은 그리 틀리지 않았다. 라디오 광고 수익은 아주 일부였고, 지역 방송사의 특성상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한 홍보비와 지역 축제 프로그램 기획이 주요 수입원이었다. 


살아남을 방법이 있을까도 고민해보고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비즈니스를 해야 할지 갈림길에 선 상황이었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남의 회사였지만, 이제는 좋으나 싫으나 가족 회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역 축제를 통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꿈꾸는 아버지의 야심, 하지만?

아버지의 선택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지자체 행사 중 10년 넘게 해 오는 행사가 하나 있었는데 연간 50만 명이 방문하는 대형 행사로 지역 내 자리매김했다. 아버지는 이를 플랫폼이라 지칭하며 축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려고 했다. 

축제 비즈니스 자체가 수익이 많이 남지는 않지만, 새로운 파트너들과 협업하고 축제가 아닌 하나의 '서비스'로 변화시키며 수익원이 될 수 있는 여러 가지 들을 추가해본다는 것이 아버지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소 달랐다. 

축제 비즈니스를 챙길 것이 아니라 코어 비즈니스를 재정의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입장이었다. 

방송사에 입사한 직원들은 분명 축제가 아닌 방송을 하고 싶어서 입사한 사람들이다. 

그것이 사무직이건 방송 직군이건 간에 방송사를 다닌다는 자부심과 이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기대를 충족하기 위해 입사를 한 것이다. 축제 비즈니스를 확대시키려는 것이 대표의 생각일 뿐 직원들과 협의된 사항은 아니다. 만약 직원들에 대해 '어차피 대표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것이 직원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면 80-90년대 수직적인 회사 문화의 관습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직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행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기업은 철저히 기업의 비전을 보여주고, 이것이 기업을 넘어 직원들의 성장과 미래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 설득해야 한다. 마치 다그치는 강남 엄마 스타일의 입시 교육이 성공하는 것이 아닌 큰 그림을 그리고 먼발치에서 떨어져 아이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그의 선택에 힘을 실어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관점과 일맥상통한다. 기업의 규모가 작아 '우리 회사는 수평적인 구조에선 오히려 우왕좌왕할 가능성이 높아 수직적인 의사결정이 훨씬 더 적합하다'라고 했다고 해보자. 맞는 말이지만 최소한 기업은 자신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방향성은 정해줘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로드맵을 보여주는 것은 기업들의 역할이다. 그리고 이것은 기업의 규모가 작을수록 그렇게 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작은 기업에 다니는 명분이 세워져 직원들이 금전적인 조건이 부족하더라도 회사를 믿고 의지하며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힘을 보태기 위해 블라인드와 잡플래닛의 후기를 찾아보았고, 아니다 다를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직원들의 의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버지에게 내용을 캡처해 현재 집중해야 할 것은 캐시카우를 만드는 것에 투자할 것이 아닌 '코어 비즈니스', 즉 라디오 방송사로서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뉴미디어가 범람하는 채널 경쟁 속에서 무엇을 가지고 승부해야 할지 일목요연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아버지에겐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아버지를 향한 소소한 일침

직원들 스스로가 구원의 주체가 되어 능동적으로 살 것을 기대하지 말고, 

먼저 리더로서 방주를 만들어 명확한 방향성을 제안하는 것이 첫 번째라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아버지가 어떻게 경영을 해나가실지는 모르지만 

고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지라 아버지와의 소소한 투닥거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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