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수많은 가정이 그러하듯 우리 집도 1997년 외환위기 때 쫄딱 망했다. 우리 가족에게 닥친 그 사건은 내가 6살이던 무렵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내 인생 전체를 관통 하나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내 삶은 그곳에 주저앉아 몇 발짝 나아가지 못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욕하는 모습을, 그리고 엄마가 우는 모습을 봤다. 아빠는 마트 상가에서 작은 화장품 가게를 운영했다. 엄마는 선생님이었다. 엄마는 늘 일찍 출근했고 아빠는 엄마가 집을 나선 후에야 일어났다. 그러므로 나의 유치원 등원과 관련된 일련의 과정은 대개 아빠의 몫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는지 어쨌는지 기억나지 않는 과거의 어느 희미한 기억 속에는 전화기에 대고 불같이 화를 내는 아빠의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있다. 꿈과 같은 기억은 삼인칭화된다. 그러나 꿈이 아니다. 잠에서 깬 나는 곧장 안방으로 향했는데 아빠는 분노에 가득 찬 채 X발, 개XX 같은 단어를 누군가에게 굉장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휘두르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 시절 IMF 당시 사업에 큰 문제가 있었겠구나, 싶지만, 어린 날의 나는 그 모습이 꽤 무섭고 울고 싶었다. 꿈이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그런 게 트라우마로 남았으면 욕을 너무나도 싫어하는 어른으로 자랐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아빠의 천박한 DNA를 그대로 물려받아 술에 취하면 온갖 욕설을 내뱉는 그런 한심한 인간이 되었다. (다만 내가 그렇게 느낄 때마다 내가 아는 생명체 중 가장 선한 인간인 나의 친구 나윤이는 나를 ‘입만 거칠지 마음은 여려빠진 인간’이라고 평해주어 나의 심신에 안정을 가져다준다.)(변명이다.)
등원이 아빠의 몫이었다면 하원은 엄마의 몫이었으리라. 내가 유치원에서 돌아온 어느 날 엄마는 식탁에 앉아 울고 있었다. 나는 그런 엄마가 너무 걱정되어 “왜 울어”하고 물었는데 엄마는 “너네 아빠한테 물어봐”라고 대답해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다. 엄마의 말투는 예리한 칼만큼이나 날카로웠고 ‘너네 아빠’라는 단어는 내가 처음으로 엄마로부터 분리된 남 같은 존재로 느껴지게 했다. 엄마는 나에게 케첩 찍어 먹는 감자 과자를 뜯어주고는 내 방에 들어가 나의 작은 침대에서 눈물을 쏟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식탁 위에 놓인 감자 과자를 주워 먹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는 왜 안방도 아니고 ‘남’의 방에 들어가 울었을까. 아빠와 있던 방이 싫었던 걸까. 나는 눈물 젖은 빵 대신 눈물 젖은 감자칩을 먹었다. 나는 엄마가 운다는 사실이 무서워 조용히 울었다. 그것은 내 인생 최초의 슬픔 같은 것이었다. 어째서인지 그 기억은 또렷이 남아 나는 그 이후로 웬만하면 케첩이 들어있는 그 감자 과자를 사 먹지 않는다. 엄마의 눈물이 선명히 떠 오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엄마가 나를 안고 우는 삼인칭의 기억이 때때로 끼어들곤 한다. 그것은 나의 소망일까. 꿈일까. 어쩌면 진짜 일어났던 일일까.
그렇게 외환위기가 시작되고 우리 집은 얼마 되지 않아 완전히 붕괴했다. 50평대 아파트가 어느 순간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이 되었다. 외할머니 집에는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집이 두 채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두 채라고 표현하기 민망할 정도로 화장실도, 욕실도 없는 단칸방이었다. 할머니는 주로 그곳에 ‘사글세’를 놓았는데 오갈 때 없어진 엄마와 나 그리고 여동생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원래 그 방에는 내가 무서워하는 아저씨가 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할머니 집에 가는 걸 종종 두려워했다. 그 아저씨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아저씨를 쫓아내고 우리 가족이 그 집에 들어가게 된 게 찝찝했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그 시절 사글세에 살던 청년이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작은 청년 하나를 내보내고서야 세 사람이 겨우 한방에 들어갈 수 있는 시절이었다.
나머지 한 채는 방 2개와 주방 그리고 길게 늘어선 마루로 이루어진 집이었다. 그곳에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이모가 살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는 떠나고 나는 4명의 여자와 살게 되었다. 외할머니, 이모, 엄마, 동생. (나이순) (할아버지는 이 이야기에서 제외다.) 나는 그 단칸방에서 그녀들과 6년을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