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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Apr 02. 2019

엄마보다 나를 사랑하는 그 사람

영화 <인사이드 아웃>



<인사이드 아웃>은 흥미진진한 스토리나 상상할 수 없는 반전이 존재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영화이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과 다름없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다만 그것이 외부의 환경 속 내 모습이 아닌 내부의 나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 영화가 일반적인 다른 영화와 다른 점이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자 '진짜 나를 만날 시간'이라는 영화의 설명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나의 내면이 어떻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다. 모든 사람도 그러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통해서야 나는 내 안의 나와 만나볼 수 있었다. 날마다 조금씩 자라는 우리의 키가 아닌, 어느 날 우리의 내면이 훌쩍 자라 버리는 그 순간에 대해 이 영화는 말해준다.


이 영화가 그 전의 픽사 영화인  <업>이나 <토이 스토리>만큼 내게 감동을 주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영화는 유일하게 나가 앞으로 삶에서 내 자신을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깊은 영향을 주었다.


아마 내 인생은 이 영화를 보기 전과 후로 나뉠지도 모를 일이다.



(아래 내용부터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 라일리의 탄생 이후에 나는 그녀와 나를 동일시하기 시작했다. 라일리가 태어날 때부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라일리의 시작과 함께 같이 동고동락하게 된 기쁨이란 존재 때문에. 나의 탄생이 다른 사람의 기쁨이 되면서 내 안에도 기쁨이 생긴다는 사실이 나의 감성을 건드린 것 같다.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기쁨을 느낀다는 사실을 이 영화를 통해 깨닫게 된 셈이다. 또 우리가 자라기 전까지 우리 대부분의 인생이 기쁨이라는 사실도 인상적이었다. 까르르까르르 웃는 아기 라일리를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 비디오를 보는 것 같은 갸륵한 감정으로 영화를 바라보았다. 아 나도 저런 순간이 있었겠구나. 세상에는 웃음과 기쁨밖에 없던 것 같은 순간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기쁨 외에도 슬픔, 분노, 까칠(disgust), 소심 등의 여러 감정이 내 인생에 들어온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인데도 처음 맞이하는 부정적인 감정은 차마 컨트롤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 감정에 종속되어 그들이 하라는 대로 행동해버리고 만다. 사실은 컨트롤하지 못하는 것조차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좋고 나쁜 일들을 '처음' 겪으니까. 세상 모든 처음은 우리에게 항상 낯설게 다가오니까.


 나도 라일리처럼 열 살이나 열한 살쯤,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 보였던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나쳐왔다. 지금에서야 돌아보면 인생의 잔잔한 날들 중 하나일 뿐이지만, 당시에는 내 작은 몸뚱이로는 차마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거대하고 감당하기 벅찬 하루하루였다.


또 한 가지 새삼 깨달은 사실은 지금껏 내가 경험했던 모든 순간이 내 뇌에 남아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어떤 것들은 중요 순위에서 밀려나 망각된다. 그런 사실들이 가끔은 슬프게 느껴진 적도 있었다. 휘발되는 기억이 많아지는데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거의 없어서 그저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안타까워하는 순간마저 내 기억에서 휘발되곤 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이런 현상을 어른이 아이에게 설명하듯이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핵심 기억들이 라일리와 우리 자신의 인격을 만들고, 그것들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하나의 섬으로 생성되어 우리의 감정에 영향을 준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부서지고 새로운 섬이 다시 생겨난다.


이 영화는 내가 지금까지 겪어왔고 앞으로도 겪어올 모든 '첫 번째 순간들’을 변호해준다. 그것들은 잔잔한 호수에 떨어지는 돌멩이처럼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마음에 동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런 경험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다. 나는 즐겁거나 슬픈 경험들을 통해 또 한 가지를 배우고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섬세해지고, 조금 더 성장한다.
  

새삼 알게 된 것은 기쁨은 행복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기쁨이라는 감정만으로 행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이미 체험적으로 느끼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통해서 또렷이 목격할 수 있었다. 그리고 기쁨뿐만 아니라 슬프거나 노여운 감정마저 내 마음을 다독여줄 때, 그제야 나는 또 한 가지 행복한 기억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세상 속에서 방황하는 동안, 내 안의 수많은 감정들은 오로지 나를 위해서 저런 모험을 감행했었구나. 내 안에 감정들은 나의 행복을 위해서 저렇게 노력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앞으로 더 열심히 살아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오롯이 나의 행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가 있으니까. 세상 나를 가장 알아주는 친구가 생긴 것처럼 한없이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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