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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세원 Oct 18. 2020

주인공은 왜 캣을 구해줬을까

영화 <테넷>을 두 번 보고 깨달은 생각들

*영화 <테넷>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닐의 시선에서


처음 영화를 보았을 땐 주인공과 

닐의 만남에서 닐의 표정이 

무언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영화를 다시 보게 된 주요한 이유도 

닐의 그 표정을 다시 보고 싶어서였다.


테넷을 만든 주인공의 위대한 첫 발걸음.

한 번도 닐을 실망시키지 않는 

The protagonist의 어리숙한 첫 모습.

닐은  자식처럼 애틋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 

첫 만남 치고는 눈빛이 너무 끈적하더라. 


실은 그런 The protagonist를 

위기에서 구해주는 건 항상 닐이다.


오페라 극장에서도, 

프리포트에서 

자기 스스로를 죽일 뻔했을 때에도,

심지어 스탈스크에서는 무려 두 번이나. 


자신을 발굴하고 키워준 사람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과 바꾼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슬프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가 세상을 구할 The protagonist니까.

그래서인지 닐이 주인공을 보는 눈빛은 

항상 따뜻하다. 


영화 속 CIA가 사용하는 암호는 다음과 같다.


We live in a twilight world.

 -  우리는 황혼의 세상에 산다.

And there are no friends at dusk.

 -  해 질 녘에는 친구가 없다.



하지만 닐은 영화 속에서 주인공을 

몇 번이나 친구라 불러준다.


그러니까 어둠이 내리기 직전, 

도와주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그곳에서

나를 믿어주는 친구와 함께 

The protagonist는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구한 것이다. 




주인공이 캣을 도와주는 이유


처음엔 연출과 음악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사랑에 빠지는 장면도 안 나오는데,

주인공은 왜 알게 된지 얼마 안 된 

캣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줄까?


다시 보니 캣을 구해줌으로써 

주인공의 캐릭터가 더욱 명확해졌다.


주인공은 기본적으로 

남보다 타인을 위하는 사람이다.

주인공은 동료를 지키기 위해 

생니를 모두 뽑히면서도 비밀을 누설하지 않고, 

자신이 죽는 선택을 한다. 

영화에서도 언급되었지만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다.


그러니까 주인공은 

캣이 아닌 나이거나, 당신이었어도

위험을 무릅쓰고 도와주었을 것이다.

그것이 인류애를 가진, 

그리고 테넷을 만든 

The protagonist의 덕목이니까. 


캣은 자신과 아들을 모두 사랑한다.

하지만 아들을 버리면 놓아주겠다는 남편의 말에 

순간 흔들릴 만큼 인간적인 사람이다.

반면 사토르는 자신만을 생각한다.

자신이 죽으면 세상이 끝나도

-아들이 같이 죽는대도- 상관없다는 사람이다.


환경보호의 관점에서 이 영화를 보면

어차피 내가 죽기 전까지 지구는 멸망하지 않는다며

마구 환경을 파괴하는 모습은

어쩐지 빌런과 매우 닮아있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따뜻함


영화를 처음 볼 때부터 느꼈지만, 

놀란 감독은 우리에게 결코 폭력을 전시하면서 겁을 주려고 하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잔인하게 찍을 수 있는 수많은 신을 

생략하고, 멀리서 보여주고, 

행동을 멈춘다.

덕분에 관객은 

피해자의 절망과 고통에서 

한걸음 떨어지는 대신

 The protagonist와 테넷의 입장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감독은 인간의 의지가 

얼마든지 자신과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캣은 베트남 선상에서 바다로 

거침없이 떨어지는 한 여인의 모습을 목격하고는,

그 자유로운 모습을 한없이 부러워한다.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면 

그 모습은 죽었던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캣 자신의 모습이다.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이육사 시인의 광야가 떠올랐다.


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江)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 누구든 자유의지로 세상을 구할 

The protagonist이자 

초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나와 세상을 

어둠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는 것. 


감독이 주인공의 이름을 짓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일 것이라 감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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