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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vresavie Dec 09. 2016

몸과 마음이 무거워질때『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 / 김남희






텅 빈 절이 고즈넉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골목 안 풍경이다. 날마다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험한 이야기 밖에 없는 세상에서 자기 삶의 자리를 성실히 지켜가는 사람들이 만드는 소소한 풍경. 그 아무렇지 않고 사소한 것들의 위대함이 나를 가만히 흔든다. : P301 <치앙마이>





출처 :  김남희 작가 블로그




지극히 사적인 감수성

                                                                                                           


제목부터 강렬히 끌렸던 책이다. 추위에 너무나 취약한 나란 사람도 김남희 작가처럼 매 해 겨울마다 따뜻한 곳에서 겨울을 나고 싶다는 현실감 없는 희망을 품곤 했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더욱더 간절히 따뜻한 남쪽나라, 이왕이면 작가가 방문했던 우붓이나 치앙마이 같은 아름다운 도시에서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리고 이제 꼼짝없이 추워질 일만 남은 우리나라가 조금 더 싫어졌을 따름이다. 누가 사계절이 뚜렷하여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 했는가? 한겨울이 되면 체감기온 영하 20도 가까이 되는 날씨가 일주일도 넘게 이어져 건강하고 정상적인 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게 만드는 이런 시베리아 같은 나라말이다.





나는 이곳에서 딱히 할 일도 없고, 갈 곳도 없고, 만날 사람도 없다. 시간이야말로 내가 지닌 가장 풍성한 것이 되었다. 이런 단출한 일상이 주는 여유로움이 좋다. 여행을 떠나와서까지 시간에 쫓기고 싶지는 않다. : P57 <우붓>





아주 막연하게 나도 언젠가는 이런 책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절반은 반갑고 절반은 질투 났다. 김남희씨는 도보여행가이자 여행 에세이 작가이다. 그녀는 인도네시아 우붓, 스리랑카 중부 해발 2천 미터 이내의 고산지대인 힐컨트리의 여러 도시들, 태국 치앙마이, 라오스 루앙프라방 같은 따뜻한 도시에 약 200일간 체류하면서 관광이 아닌 여행과 일상 사이에 머무르며 이 글을 썼다고 한다. 이름만 들어도 따뜻함을 넘어 각각의 도시가 내뿜고 있을 이국적인 열기에 마음이 흔들린다.





헨리 소로가 그랬다. 소박한 삶의 기본 원칙 가운데 하나는 불필요한 것들을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버는 대신, 꼭 필요한 것들을 구하기 위해 일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조금 버는 대신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 쓰는 일상을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핸드메이드 라이프를 산다는 것은 시간의 주인으로 사는 일의 은유 같기도 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온전히 몰입해본 사람은 안다. 그때 흘러가는 시간의 속도가 얼마나 다른지를. 발리에서 시간은 넘치도록 충분하다. 선물처럼 공짜로 주어졌다. 이 시간을 잃어버린 내 육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삼고 싶다. : P98 <우붓>




일상처럼 여행에도 지루한 순간, 쓸쓸한 순간이 찾아온다. 그런 순간에 책은 나를 구원한다. 멋진 풍경 앞에서도 늘 생각한다. 아, 여기 앉아 책을 읽으면 좋겠구나. 낯선 도시에서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했을 때도 중얼거린다. 책 읽기에 좋은 카페구나. 집을 나설 때 가방 속에 책을 챙겨 넣는 건 오랜 습관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여행과 책은 서로 닮아 있다. 질문을 던짐으로써 일상과 그 일상을 둘러싼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는 점에서. 그렇게 가장 온순한 방법으로 자신이 쌓아온 세계를 부수고 더 넓은 세계를 열어준다는 점에서. : P254 <치앙마이>




작가가 갔던 도시들 중 마음이 가장 이끌린 곳은 사방이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고 예술인 마을로 불리는 발리 중부의 우붓과 태국의 치앙마이였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푸른 생명의 의지가 넘실대는, 신성한 종교가 있는 발리'와 '덜 벌어도 삶에 더 충실한 예술가들의 터전 치앙마이'라고 한다. '신들의 섬'이라 불리는 발리는 산스크리트어로 '신들의 피난처'를 뜻하는데, 종교가 발리인들의 일상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 발리에는 집집마다 '상가'라 부르는 가족 사원이 있는데, 장남의 가장 큰 의무는 사원을 돌보는 일이다. 1년에 200일의 종교 의식이 있다 하니 인생의 3분의 1을 신에게 바치는 것이다. 거의 매일 하는 의식임에도 이들이 신에게 바치는 정성은 항상 갸륵하다. 이런 점이 발리인들이 평생 간직하고 살아가는 성품인 것이 아닐까. 또한 발리에서는 모든 게 느긋하게 '플란플란' 흘러간다. 매사에 서두르는 법이 없어 내 나라의 속도로 생활하려면 속이 터질 수도 있겠지만, 관광객이 아닌 현지인들과 일상을 함께하는 '여행자'가 되기에는 안성맞춤인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복잡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데 지친 사람들이라면,  치앙마이를 설명하는 작가의 글에 마음 이끌리지 않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람들이 어딘가 달랐다. 모난 곳이 없는 것 같다고나 할까. 목소리도 낮고, 몸집도 자그마하고, 키도 작은 사람들. 눈이 마주치면 잘 웃었다. 매사에 서두르는 법도 없이 느긋했다. 이방인에게 터무니없는 바가지를 씌우는 일도 없었다. 적당히 더 붙여 부르고 부른 만큼 설렁설렁 깎아줬다. 큰 소리로 화를 내거나 싸우는 사람도 없었다. 그악스러운 일상은 간 곳 없고 오늘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만 같았다.' 그래 바로 이곳이다. 나도 이런 곳에 머물면서 여유롭게, 게으르지만 기쁘게, 눈과 귀와 피부에 느껴지는 바람과 하늘과 햇살과 향기와 분위기와. 모든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살아보고 싶다.

딱히 하는 일 없이, 만날 사람도 없이, 매일 걷고, 책도 많이 읽고, 맛있는 현지 음식을 먹고, 그곳에서만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배우면서. 그렇게 느긋느긋하게, '플란플란' 살아보고 싶다





여행이 우리가 품은 질문에 질문에 답을 주진 않지만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도록 등을 떠밀어주긴 하지. 일단 나아가면 결국 답도 찾을 수 있으리라. 아니, 평생 답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의 의미는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던져진 질문과 마주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수연 씨도, 하나 씨도, 나도 저마다의 질문을 품고 이곳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 P74<우붓>



                                                                                                       

책을 읽으면서 설레기도 했지만 고통스럽기도 했다. '아 나도 이렇게 살고 싶은데,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날이 올까?' 하는 막연함 때문이었다. 아직은 내게 너무도 먼 미래의 일 같다.  여행을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길어야 5박 6일 같은 오로지 '관광' 밖에는 할 수 없는 일정으로는 그 도시의 진짜 모습을 만날 수가 없다. 유명한 곳을 하나라도 더 보고 맛있는 음식 하나라도 더 먹으려고 늘 발을 동동 구르며 마음만 조급하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하려고 떠난 여행에서 오히려 여유를 더 잃고 올 때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버리고 훌쩍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보고 싶어질 때마다 나는 늘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렇다.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한다고 해서 용기가 없거나 현실에 순응하며 산다는 것은 아니다. 떠나온 것을 후회하거나 다시 돌아갈 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만큼의 용기를 낼 수 있을 때, 일상 여행자가 되어 진정으로 나 자신과 만나고  마주치는 매일의 새로움과 낯섦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가 오면 나도 꼭 떠나보고 싶다. 떠나야만 알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을 알지 못하고 지나간다면 인생이 너무 시시하지 않을까. 지금보다 훨씬 더 말이다.

언제가 될지, 어디가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그렇기에 나는 앞으로도 이런 책들을 기어이 읽고야 말 것이다. 부러움 반 질투 반. 희망 한 줌 불행 한 줌에 흔들리고 또 설레하면서.





사심 가득한 문장들



매일 폭우가 쏟아지는 날들인데 마당은 나뭇잎 하나 없이 깨끗하다. 산사태로 무너진 뒷벽은 천을 덮어 갈끔하게 가려놓았다. 민트색 페인트를 칠한 단층집 주변으로는 작은 화분이 가득하다. 마음이 뭉글해졌다. 할머니는 자신이 사는 공간을 가꾸는 일을 통해 삶에의 헌신을 보여주고 있다. 할머니의 집은 세상이 아무리 시궁창처럼 지저분하다고 해도 자기 삶의 아름다움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할머니는 당신만의 천국을 일구어냄으로써 지나가는 나에게도 작은 기쁨을 선물했다. 나도 할머니처럼 살다 가고 싶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몫의 천국 하나를 만들고 싶다. 저마다 쌓아 올린 그 하나한의 천국이 합쳐지면 세상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오늘 할머니의 작은 집이 나에게 말한다. 우리는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지만 아름다운 사람으로 남을 수는 있다고. : P179 <스리랑카>




어제 저녁의 푸시 언덕에서도, 새벽의 탁밧에서도 셀카봉을 든 수많은 이들과 마주쳤다. 우리는 이제 여행지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기보다는, 그 풍경 속에 서 있는 자 자신에게 더 몰입한다. 어쩌다 이토록 셀카에 몰두하게 된 걸까. 나를 지킬 수 없는 시대, 내가 사라진 시대에 살아가기 때문에? 나를 기억하는 유일한 방법이 내 사진뿐이라서? 그렇게 매 순간 찍느라 놓치는 것들은 아쉽지 않을까.  : P359 <치앙마이>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소란스러운 흔적을 이 도시에 남겨두고 떠났던 걸까. 여행자로서 최소한의 윤리는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지나가기인데... 지켜보는 내가 괴로웠을 정도이니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어땠을까. 관광객이 몰려와 돈을 번다고 좋아한 이들도 있었겠지만, 일상의 평화가 깨지는 게 몹시 싫었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한 도시도 생명을 가진 유기체와 같다. 생겨나고, 번성하고, 쇠락하기도 한다. 나는 변해가는 어떤 장소의  짧은 순간을 함께할 뿐이다. 여행지가 보여주는 찰나의 얼굴. 그 얼굴이 때로는 내가 보고 싶지 않은 민낯이라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대할 때처럼 그렇게 바라보고 싶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까지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여행을 하고 그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쓰며 살아가는 이의 제일 근 덕목은 모든 여행지를 사랑하는 마음일 테니까. : P394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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