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더 이루어진다.

또 하나의 선물, 생각지도 못했던 순간

by 생강

# 또 하나의 선물

본선에 진출한 우리나라 피아니스트들이 무대에 오르는 1라운드의 네 번째 날, 사실 전날 밤에 잘 자지 못했다. 거의 못 잔 것 같다. '혹시라도 너무 피곤해서 알람을 못 듣고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와 같은 걱정이 머릿속을 빙빙 돌면서 점점 커지는 것 같았다. 평소에 알람을 못 들어서 출근을 못했었거나 중요한 일정에 차질을 빚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도 말이다. 바르샤바에 오기로 결정하면서 직관 표를 구하면 좋은 거고, 구하지 못하면 쇼팽 콩쿠르 기간 바르샤바의 분위기를 느끼면서 도시 여행을 하면 된다고, 편안하게 생각하자고 짝꿍과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말 많은 비용을 들여서 여기까지 왔는데...'와 같이, '본전'에 대한 생각이 돋아나면서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다음 날(10월 6일 월요일, 쇼팽 콩쿠르 1라운드 넷째 날) 감격스럽게도 바르샤바 필하모닉홀 직관 표를 사게 되었고, 우리나라 피아니스트 이효님, 이혁님, 이관욱님 연주까지는 신을 붙잡고 있었는데... 인터미션 후 두 명의 참가자 연주가 끝난 후 도저히 앉아있을 에너지가 없어서 결국 콘서트홀을 나왔다. 다행히도 우리나라 참가자들의 연주는 모두 들었지만 날 밤에 잠을 잘 못 잤고, 장거리 비행, 시차와 추운 날씨 적응으로 적된 피로를 국 이기지 못했다.

콘서트홀을 나온 김에 로비에 있는 굿즈샵¹ 구경을 마치고 레스홀(중앙홀) 쪽으로 이동했다. 역시 아직 세션이 끝나지 않아서 사람들이 없었다.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필하모닉홀을 나가는 계단 쪽으로 향하려던 때, 누군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일본 분이신가요?"고 일본어로 물었다.

¹굿즈샵

우리는 한국에서 왔다고 답했다. 사진을 탁한다고 하셔서 짝꿍이 사진을 찍어드렸다. 국인이 사진을 잘 찍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운이 좋다고 하셨다. 우리도 사진을 찍어주셔서 감사 인사를 하고 나서려고 하는데, 우리가 일본어로 답해서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하시면서 대화가 작되었다. 그분은 참가자들이 선택하게 되는 피아노 회사의 직원이고, 콩쿠르 기간 동안 참가자들 지원을 비롯하여 콩쿠르와 관련된 자사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중국에서 출장을 왔다고 했다. 우리도 하는 일과 바르샤바에 온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쇼팽 콩쿠르를 관람하러 온 우리는, 콩쿠르를 업무로 대하고 있는 분의 다른 시선과 일화들을 듣게 되니 몰랐던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고, 말씀해 주시는 모든 내용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리가 늦은 점심 식사를 할 시간이니 며칠 동안 가 본 곳들 중 주변의 꽤 괜찮은 아시안 식당으로 안내해 주겠다고 했다.

'사진을 찍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분과 대화를 하게 되고 식당까지 데려다주시는 호의를 받는다!?' 어딘가에서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한데, 잠을 잘 못 자서 몽롱한 상태와 갑자기 일어난 상황이 콜라보되면서 얼떨떨했다. 처음부터 일본어로 대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미천한 일본어 실력으로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보려고 이미 자고 있던 뇌를 깨워 독촉했지만, 나의 뇌는 이제는 진짜 자야 한다고 자꾸 거부하며 이불을 덮는 것 같아서 답답하기만 했다.

바르샤바 신시가지까지 같이 걸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분이 천하는 한 아시안 식당에 도착했다. 사를 같이 하실 수 있냐고 여쭤보니, 지금은 근무 중이라 다시 들어가 봐야 한다고 하셨다. 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을 텐데, 쉬웠다. 신시가지 한복판 식당 앞에서 애매하게 기념사진을 찍고, 메신저로 사진을 공유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한국 음식점에 가지 않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설정했던 우리가) 우연한 만남로 결국 아시안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고, 식사를 하면서도 갑자기 생긴 만남과 대화가 너무 신기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내향인인 우리에게 스스럼없이 질문을 건네고 괜찮았던 식당까지 친히 데려다주며 낯설고 추운 바르샤바에서 또 하나의 따뜻한 기억을 만들어 준 분, 돌아와서도 그 구와 근황과 일상의 감상을 메신저로 공유하면서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이 인연은 역시, 초대받지 않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며 기꺼이 모인 이들에게 음악 잔치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

(한국 음식점에 가지 않는 것을 하나의 목표로 설정했던 우리가) 우연한 만남으로 결국 아시안 식당에서 주문을 하고 있었다.


# 각지도 못했던 순간

숙소에 돌아와서는,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쌓여있던 긴장과 피로를 풀고 더 편안하고 여유롭게 바르샤바를 둘러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거의 쓰러지듯 누워서 그 무렵 쇼팽 콩쿠르 참가자들의 무대 후기가 자주 올라오는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다음 날 아침 세션의 직관 표를 급히 판매한다는 글이 보였다. 링크를 타고 가보니, 티켓을 양도하는 거래를 합법적으로 연결해 주는 웹사이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매크로를 활용하여 다수의 티켓을 매점한 후 추가 비용을 붙여 중고거래 형식으로 개인에게 되팔아 문제가 되는데, 해외에서는 스포츠 경기나 공연 등의 티켓을 합법적인 티켓 양도 중개 웹사이트²에서 양도를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이나 커뮤니티에서 티켓 양도 거래 사기 문제를 많이 언급해 왔기 때문에 글을 읽고도 처음에는 강한 의심을 품고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아쉬움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다시 링크를 타고 봤다. 티켓 양도 중개 웹사이트는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불안하기는 하지만, 바르샤바까지 온 이상 한번 더 도전해 보자는 생각으로 재빠르게 구입을 시도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쇼팽 콩쿠르 1라운드 2회차 직관이 가능해지는 순간이었다.

²이런 류의 플랫폼에서는 '원가 대비 일정 비율 이상 인상 금지' 규정을 두고 있는데, 예컨대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원가 대비 +20% 선이 상한선으로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또한 티켓이 유효하지 않거나 행사 주최 측이 특정 플랫폼을 통한 양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 입장이 거부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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