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 마리라는 할머니 정신과 의사분이 계시다. 60대 초반이니까 우리 어머니 또래시지만, 내가 손주를 못 안겨드려서 그렇지 어머니도 진작에 할머니가 되셔도 이상할 것이 없는 연세이기는 하다. 하여튼 마리가 오늘 아침, 일상적으로 건네는 ‘하우 아 유?’라는 인사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음~ 실은 오늘 어머니 생신이야’ 하길래, 2월 28일이라니 잊지 못할 날인걸! 생신 축하드린다고 전해드려(요)! 라고 답을 했다. 그 말에 마리는 ‘전해드리고 싶은데, 돌아가셨어 살아계셨으면 92세가 되시는 날이야 오늘이’라고 답을 하였다.
너무 미안하다고 언제냐고 물으니 어느덧 이십여 년 전이라고 70세의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선뜻 무슨 말을, 그것도 영어로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안쓰러운 표정만 지으며 쏘리를 연발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익숙지가 않다. 어른이 되고 시간이 흘러도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장례식에 조문 간 상황처럼 정말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혹여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 상대방에게 더 상처를 들추는 말이면 어쩌지 조심스러워서이다.
어쨌든 어리바리하고 있는 나를 두고 이 노련한 할머니 - 그것도 정신과 - 의사 선생님은 자연스레 ‘너희 어머님은 잘 계시니?’라고 화제를 돌렸다. 뭔가에 홀린 듯이 나는 얼떨결에 부모님은 두 분 다 살아계시고, 지금 한국에 살고 계신다. 내가 외동이라 어머님은 지금 나를 무척 그리워하실 것 같노라고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마리는 그럼 어머니랑은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냐며, 전화를 자주 드리느냐고 말을 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 저녁마다 드리던 전화를 최근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며 이 삼주에 한번 걸까 말까 한 전화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힘든데 엄마 신경 쓰지 말고 잠이라도 더 자라며, 잘 지내는 거 알았으니 되었다고 전화하는 거 부담 갖지 말라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고 아쉬우신지 매번 한 시간 가까이 수화기를 붙잡고 있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부끄럽게도, 건성으로 응응~하며 다른 손으로 집안일을 한적도 있다. 때로는 연락을 드리려 수화기를 들었다가도, ‘아.. 전화하면 또 한 시간인데..’하며 퇴근하고 와서 너무 지쳤다는 핑계로 통화를 미루기도 부지기 수였다.
낯선 땅에서 창밖을 보시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이날도 나는 포즈 좀 잘 잡아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던 거 같은데, 손이나 좀 잡아드릴걸
그래서 오늘 아침 마리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전화를 하고 싶어도 걸 데가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 소중하지만 무덤덤 해지는 것들. 그때 가서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해본들 전할 수 없는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울 것인가.
오늘은 퇴근하고 꼭, 안부전화를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