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한한상상력 Aug 08. 2019

마리와 어머니

지금 일하고 있는 곳에 마리라는 할머니 정신과 의사분이 계시다. 60대 초반이니까 우리 어머니 또래시지만, 내가 손주를 못 안겨드려서 그렇지 어머니도 진작에 할머니가 되셔도 이상할 것이 없는 연세이기는 하다. 하여튼 마리가 오늘 아침, 일상적으로 건네는 ‘하우 아 유?’라는 인사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음~ 실은 오늘 어머니 생신이야’ 하길래, 2월 28일이라니 잊지 못할 날인걸! 생신 축하드린다고 전해드려(요)! 라고 답을 했다. 그 말에 마리는 ‘전해드리고 싶은데, 돌아가셨어 살아계셨으면 92세가 되시는 날이야 오늘이’라고 답을 하였다.

너무 미안하다고 언제냐고 물으니 어느덧 이십여 년 전이라고 70세의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정말, 선뜻 무슨 말을, 그것도 영어로 위로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안쓰러운 표정만 지으며 쏘리를 연발했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따스한 위로를 전하는 것이 익숙지가 않다. 어른이 되고 시간이 흘러도 영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장례식에 조문 간 상황처럼 정말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혹여 위로랍시고 건넨 말이 상대방에게 더 상처를 들추는 말이면 어쩌지 조심스러워서이다.

어쨌든 어리바리하고 있는 나를 두고 이 노련한 할머니 - 그것도 정신과 - 의사 선생님은 자연스레 ‘너희 어머님은 잘 계시니?’라고 화제를 돌렸다. 뭔가에 홀린 듯이 나는 얼떨결에 부모님은 두 분 다 살아계시고, 지금 한국에 살고 계신다. 내가 외동이라 어머님은 지금 나를 무척 그리워하실 것 같노라고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마리는 그럼 어머니랑은 어떻게 연락을 주고받냐며, 전화를 자주 드리느냐고 말을 이었다.

순간, 나는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번씩 주말 저녁마다 드리던 전화를 최근에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루며 이 삼주에 한번 걸까 말까 한 전화였다. 그때마다 어머니는 힘든데 엄마 신경 쓰지 말고 잠이라도 더 자라며, 잘 지내는 거 알았으니 되었다고 전화하는 거 부담 갖지 말라면서도,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고 아쉬우신지 매번 한 시간 가까이 수화기를 붙잡고 있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부끄럽게도, 건성으로 응응~하며 다른 손으로 집안일을 한적도 있다. 때로는 연락을 드리려 수화기를 들었다가도, ‘아.. 전화하면 또 한 시간인데..’하며 퇴근하고 와서 너무 지쳤다는 핑계로 통화를 미루기도 부지기 수였다.


낯선 땅에서 창밖을 보시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을까. 이날도 나는 포즈 좀 잘 잡아보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던 거 같은데, 손이나 좀 잡아드릴걸



그래서 오늘 아침 마리와의 대화를 마치고 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전화를 하고 싶어도 걸 데가 없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당연하지만 잊고 있었던 것들. 소중하지만 무덤덤 해지는 것들. 그때 가서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해본들 전할 수 없는 마음은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울 것인가.

오늘은 퇴근하고 꼭, 안부전화를 드려야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