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는 맨해튼
서른 살엔 뉴욕, 맨해튼을 가야지.
어떤 이유도 없었다.
어린 나에게 '서른'과 '뉴욕'은 어쩐지 어울렸다. 난 항상 그런식이다. 논리적으로 전략 방향을 짜는 일을 좋아하고 그런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있어서는 무논리의 원칙이 작용한다. 아니, '그저 하고 싶어서'가 이유가 될 수도 있지.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추진하는게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다.
뉴욕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는 단순히 도시 이름이 아닌 저마다 다른 의미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뉴욕은 '서른'이라는 단어처럼 묘하게 설레고 자신감 넘치는 느낌이다.
스물 여섯에 입사해 4년 후 쯤 '서른'이면,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휴가 때는 여유있게 뉴욕을 여행하는 모습이 내가 꿈꾸는 서른 살의 모습이었다.
서른 살에 가려던 뉴욕은 스물 일곱에 갔다.
입사 첫 해에는 먼저 휴가 일정을 잡을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팀장님께서 갑작스럽게 휴가를 쓰라고 하셔서 계획도 없이 휴가를 냈다. 통영으로 가족여행을 떠난 것이 입사 첫 해의 휴가였다.
일년 뒤, 미리 휴가 일정을 조정할 수 있게 되자 여행지를 고르기 시작했고, 생각하는 것 만으로도 이미 여행을 떠난 기분이었다. 유럽을 갈까, 가까운 동남아를 갈까? 일본이나 중국은 가까우니까 언제든 갈 수 있을거야. 고심하던 중, 대학때 광고 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의 뉴욕으로 오라는 한 말 한마디에 그렇게 내 첫 해외 여행지가 정해졌다.
(사실 첫 해외 여행은 광고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싱가포르에서 열리는 스파익스 국제 광고제 참관이었으나, 스스로 떠난 것이 아니기에 제외하였다.)
서른 살에 가겠다고 막연하게 부푼 꿈을 안고 있던 뉴욕을 좀 더 이르게 가게 되었지만, 가는 날까지 야근하느라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일체 알아보지 못했다. 그 곳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던 건지, 떠나는 날 새벽 1시가 다 되어 퇴근하고 3시까지 그제서야 짐을 쌓다. 13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이 있기에 잠은 비행기에서 자기로 하고 거의 날을 새고 떠났다. 그리고 그제서야 설레기 시작했던 것이다. 떠나는 날 새벽에서야. '아 진짜 내가 뉴욕에 가는구나.' 뉴욕행 비행기 티켓을 손에 쥐고 나서야 실감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