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간 것보다 여행가기 전, 언제쯤 어디로 갈지 생각하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봄이 좋을까,여름에 가서 수영도 하고 일광욕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도 여유있게 누워볼까, 선선한 가을에 갈까, 사무치게 뼛속까지 시린 겨울에 가볼까... 추운 겨울에 떠나 더운 나라에 도착할까. 365일 눈이 내리는 겨울의 나라로 갈까. 지구의 수많은 나라로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여행을 떠나기 전이다. 언제,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며 나는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그렇게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여기 저기 여행을 하고 난 뒤, 어렵사리 선택하는 여행지에는 딱히 이유가 없거나, 혹은 아주 명쾌한 단 한가지의 이유가 있다. 내게 부다페스트 여행이 그랬고, 베를린의 여행이 전자와 후자의 여행지였다.
여행지를 정하고 난 뒤엔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마치 내 집에 돌아가듯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모른 채 가보고 싶지만 간판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곳을 어떻게 집이라고 하며 일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게 허락된 시간 동안 그 곳에서 일상을 보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공부가 필요하다. 관광객들이 드글드글한 곳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지만 난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모른다. 어렵사리 찾아갔지만 그 곳 역시 관광객들이 사랑하는 곳 일뿐. 보물찾듯 나만의 기억을 갖기 위해선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늘 그 곳을 제 집 드나들듯 오는 단골이고 싶지만, 속으론 잔뜩 긴장한 여행객이다.
한 도시에서 최소 일주일은 머물길 바란다. 시간이 부족한 우리같은 일개미들에겐 하루 하루를 쪼개 많은 걸 보고 많은 도시, 많은 나라를 가야할 것 같지만, 다녀오고 나면 남은 것 힐링이 아닌 피곤함. 남들 다 보고 찍어 온 풍경뿐이다. 그것이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어쩐지 아쉬운 기분이다. 일주일 정도 한 도시에 머물며 하나의 숙소에서 쭉 머물다보면 여행 말미에는 숙소를 '내 집' 이라고 부르고 있고 숙소가 있는 동네를 '우리 동네'라고 부르게 된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며 들르는 맥줏집이 생기고 매일 아침 간단한 끼니를 해결하는 편의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조금이나마 일상적이지 않을까? 여행을 떠나, 낯선 곳에서 일상을 찾는다는 것이 조금 우습기도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