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 시절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었다.
나는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에 드라마 속 인물이라도 되어야 했다.
"깡소주"
젊은 청춘의 시련을 달래줄만한 상징. 그것이 생각났다.
다시 한번 이야기 하지만, 나는 매우 심각했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호기롭게 소주 한 병을 샀다.
집 근처 아무도 없는 초등학교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나는 시련의 주인공이다.
소주 뚜껑을 따고 원샷을 딱 때리고 방황을 할 테다.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뚜껑을 따는 것은 계획대로 되었다. 뚜껑을 따는 것까지만.
하지만 소주는 "요만큼", 아주 "요만큼" 입에 넣었는데 도저히 넘어가 질 않았다.
분명 나는 너무나 힘든 시련의 주인공인데 소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는 것이다.
도저히 넘기지 못하는 소주를 운동장에 뽈뽈뽈 쏟아버렸다.
방황은커녕 집에 아주 잘 들어가서 자리를 깔고 잠이 들었다는 슬픈 이야기.
허세라는 단어를 들으면
나는 가끔 이 찌질한 에피소드를 꺼내보곤 한다.
언젠가 영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자기는 힘들어서 바다에 왔는데 파도가 몰려오자 살겠다고 도망치는 자신을 보고 웃고 말았다고.
이거랑 좀 비슷한 맥락일까.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있다.
너무 슬프고 싶은데 슬프지 않은, 혹은 슬플 수 없는.
그것이 환경 때문이든 스스로 때문이든.
딱 소주 뚜껑 따는 것까지만, 그만큼만 허용되는 순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