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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러게요 Mar 24. 2024

여기보다 나은 그곳

네 저 역마살있어요.

나는 역마살이 있다. 이걸 알게 된 것은 작년 '오지은 임이랑의 무슨 얘기'라는 유튜브 채널을 보다가 '살'에 관한 얘기를 하길래 따라서 찾아봤더니 떡하니 지살이 나오더란 거다.

살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보면 사람을 해치거나 물건을 깨뜨리는 모질고 독한 귀신의 기운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기본적으로 살은 안 좋은 것이니 찾아보면 좋은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불쾌해질 수 있다. 그래도 궁금하다면 나는 여기서 찾아 보았다. https://i.sazoo.com/run/free/sal/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 다녀온 티를 내는 것도 좋아하다보니 나는 보통 다들 나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는 게 기본값이라고 생각했다. 소수의 집순/돌이들만이 여행을 꺼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난 사실 언제나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고 싶고, 늘 새로운 곳을 원한다. 심지어 식당도 같은 곳 두 번 가면 가기 싫다. 방금 다시 살풀이를 검색해보니 지살이 있으면 직장도 한 곳에 오래 다니지 못한단다. 정말이다. 난 직장에서도 어디든 여기보다 낫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언제나 도착한 곳은 여기보다 낫지 않을까의 여기만 될 뿐 나은 그곳이 되질 못했다. 


하지만 이제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여행을 쉽게 갈 수도 없고 나는 심지어 운전면허도 없다. 젊을 땐 돈이 없고 지금은 시간이 없고 나중엔 체력이 없겠지.. 솔직히 지금은 돈도 좀 없다. 자주 떠나지는 못하지만, 나는 늘 지도를 보며 가보지 못한 곳을 찾는다. 항공사 마일리지 소멸 이슈로 어쩔 수 없이 사둔 여수행 비행기 출발 날짜가 한달도 남지 않아 여수 근방 가볼만한 곳을 뒤지다가 내가 여행지에서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정리해 보기로 했다.


첫번째는 맛집인데, 그 맛집이 너무 화려하면 안된다. 요즘 물가가 원체 올라 값으로 정리하긴 어려워졌지만 제주도라면 1미터짜리 갈치구이를 파는 곳은 내 리스트에서 제외된다. 우리나라는 작고, 최고의 음식은 거의 서울에 다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행에서 만나야 하는 음식은 지역 사람들이 평범하게 점심을 먹는 곳이라거나 가족 외식으로 방문하는 약간 걸지고 푸짐한 음식점 정도이다. 하지만 또 너무 열심히 검색해서 찾아가면 기대감 때문에 맛이 덜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감으로 갈 곳을 고르기엔 몇끼되지 않는 소중한 끼니를 날려버릴 수 있다. 그래서 결론은? 여행을 간다면 전라도로. 4년 전, 목포에서 별 생각없이 들어가서 먹은 백반집이 제일 만족감이 컸다. 보통 나는 허영만의 백반기행 나온 집을 찾아 보고 그 가운데 고기가 주메뉴가 아닌 곳을 주로 방문하곤 한다. 기대만큼은 아니더라도 아주 꽝은 없었다. 


두번째는 산책. 하지만 뻔한 공원은 싫다. 우리나라는 어쩜 한곳에서 인기를 얻으면 전국이 똑같은 것을 만들어 버리는지 요즘은 어딜가도 흔들다리가 있더라. 산책길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정말 다 똑같이 생겼다. 그나마 바다라도 있음 낫긴 한데.. 그렇지 않다면 여기가 뭐 어딘지 전혀 알 수 없다. 경리단길의 이름을 따와서 지은 -리단길을 둘러보는 것도 괜찮고, (이름은 전국 통일이지만 가게들은 다 다르니 또 보는 맛이 있다.) 시장을 둘러 보는 것도 좋다. 시장은 또 은근히 지역마다 파는 물품이 다르기 때문에 보는 재미가 있다. 수산물이 가장 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뭐 지역에서 걷기 좋은 길, 둘레길로 이름 붙여 놓은 곳에 가는 수밖에.


세번째는 양조장. 술쟁이는 늘 양조장을 검색한다. 양조장, 브루어리 둘다 검색한다. 예전엔 오로지 막걸리였는데 요즘은 맥주 브루어리도 제법 있다. 양조장에서 막걸리 사서 숙소에서 먹는 맛은 말할 것도 없지. 맛있으면 귀가길에 몇 병 더 챙겨오기도 하고. 전국 막걸리 먹기도 10년이 넘어가니 거진 비슷한 맛이라 큰 기대는 없지만, 그래도 술 만드는 곳에 방문하는 것은 늘 설렌다. 가끔 운이 좋으면 사장님이 양조장 구경도 시켜주신다. 추천 양조장은 괴산의 목도 양조장과 문경의 오미나라. 


나의 욕구는 이정도고 이제 여행길에 아이가 있으니 아이할 만한 것을 끼워넣는다. 할게 없으면 아빠랑 둘이 자전거라도 타고 오라고 하면 되겠지. 요즘은 어딜가나 카페와 빵집은 많으니 중간 중간 들리면 하루가 채워진다. 현재는 여수에서 고흥 하동을 찍는 코스를 고민 중에 있다. 고사리를 사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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