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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닝 Aug 18. 2022

EP 01. '내 집'이 있다는 안도감

 

20대의 내 가장 큰 바람은 온전한 내 공간을 갖는 것이었다.


나의 20대는 어떻게 보면 이사의 역사다. 고시원부터 옥탑방, 유학생 기숙사, 반지하 하숙 생활, 홈스테이, 단기방, 하우스 셰어 등. 계산해 보면 1년에 무조건 한두 번은 이사를 한 셈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사정은 각기 달랐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 학교가 멀어서, 시간이 맞지 않아서 등. 그러나 결국 그 사정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돈이 없어서.


지방에서 상경하면서 고시원에 처음 방을 얻었다. 부모님께는 우선 이곳에 있으면서 제대로 지낼 곳을 알아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그 큰 보증금을 턱턱 내줄 형편이 아니라는 것을. 더구나 아빠는 대학 진학도 부모님과 함께 살며 근처 가까운 국립대로 가길 희망했기 때문에 이미 첫 학기 입학금과 등록금에 많은 돈을 낸 상황에서 또 다른 큰돈이 들어가는 일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예 무리도 아니었을 텐데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 살에게 천만 원, 이천만 원 하는 돈은 터무니없이 크게 느껴졌다. 온갖 이유를 둘러대며 이곳의 좋은 점을 어필했다. 여자 전용이라 깔끔하고 조용하고 밥도 주고 학교도 금방이라고. 이따금 혼자서 깔끔하고 넓은 자취방을 쓰는 친구를 보면 부럽기도 했지만, 매일 같이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던 그때 내 주의력은 다행히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내가 번 돈으로 보증금을 마련한 진정한 첫 자취 집에 이사한 후 친구들에게 자랑스레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고시원에서 시작해 내 힘으로 조금씩 방을 키워나간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그 당시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등바등 살아왔다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고 내 분수에 맞게, 내 형편에 맞게 잘 살아온 것이라 믿었다. 물론 그 생각에 변함이 없지만, 그 뒤로도 많은 이사를 거쳐 내 집을 마련한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만난다면 꼬옥 한번 안아주고 싶다. 그 자긍심이 정말 많은 위로가 되어주었으므로. 남들이 집에 대해 말하면서 공간의 가치가 아니라 경제의 논리로 나를 무시할 때 나를 잡아주는 기준이 되어주어 고맙다고.


그렇게 공간을 조금씩 늘려가며 이사를 하는 동안 내 몸 하나 누울 공간을 구하지 못할까 걱정한 적은 없었다. 단지 비용 대비 거리가 가까운 곳이었으면, 면적이 조금 더 넓었으면, 인테리어가 신식은 아니어도 깔끔했으면 하는 바람이 하나씩 고개를 내밀었는데 어학연수로 떠난 아일랜드에서 그런 생각이 모두 사치였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다. 약 7개월간 그곳에 머무르면서 집을 무려 4번을 옮겼고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이사 스트레스와 내 집 없는 서러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나의 목표는 나만의 온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되었다. 빨래를 하든, 요리를 하든, 가만히 있든 타인의 간섭이나 방해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낼 수 있고 남아있는 계약 기간을 신경 쓰지 않고 더 이상 이삿짐을 싸고 풀 필요가 없는 그런 공간. 크기는 둘째치고 우선 그런 공간을 가질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 느낌에 강력히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내려왔다. 물론 벌어 놓은 돈을 어학연수에 모두 썼기에 남아있는 돈도 없었고 부모님 집에 있는 동안은 그런 걱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을 구하고 나면 방법이 생길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회사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도 타지에서 일을 정리하고 내려왔고, 같은 시점에 급매물로 나온 집이 있어 운이 좋게 동생과 함께 나와 살게 됐다. 모르는 타인보다야 그래도 동생이 낫겠다 싶었는데 동생도 타인과 다를 게 없었다. 처음엔 그래도 거실에서 치킨과 맥주를 함께 하던 사이였는데 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2년의 냉전을 거치다 폭발하여 내가 나오는 것으로 마무리되면서, 예상치도 않게 빨리 내 목표를 이루었다.


지금 ‘내 집’에서 산 지 벌써 8개월 째인데 여전히 내 집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때가 있다. 얼마 전 날이 더워 안방에 에어컨을 켜고 잤는데, 다음날 아침 안방 문을 열고 나가다 문득 감격했다. 전에는 집 안에 방문이라고는 화장실 문밖에 없고 다른 문은 현관 문이라서 열면 바로 밖이었는데, 이제는 안방 문을 열고 나가면 거실이 있고 부엌도 있구나. 입주 초기에는 별게 다 감동적이었다. 거실 한가운데 매트를 깔아놓고 스트레칭할 수 있다는 것도, 집안 가득 인센스 냄새를 풍기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크게 틀어 둘 수 있다는 것도. 이렇게 해놓고 한참 뒤에 감탄한다. 와 여기 진짜 내 집이구나.


글만 보면 모든 것이 순식간에 정리되고 준비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사이 사이 정말 고민이 많았다. 내가 독립을 준비하던 2021년도에는 특히나 부동산을 빼놓고 말할 수 없는 해여서, 주변에서도 내 결정에 온갖 태클을 걸어왔다. 집에 대해 꽤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만 결정을 머뭇거리게 되고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까 멈칫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백번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과정을 글로 남겨보고자 한다. 나의 집은 30년도 넘은 오래된 빌라다. 내 나이보다 조금 많은 이집을 어떻게 왜 얻었는지, 반셀프 리모델링하면서 있었던 에피소드 등 집에 관한 시작부터 끝까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백수가 된 김에 원없이 써서 남겨봐야지.


                    

반셀프 리모델링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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