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과의 불화
솔직히 말하자면 독립을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었다. 아니, 언젠가 할 거라고 예상했지 이렇게 당장, 떠밀리듯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2018년 11월, 남동생이 타지 생활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오겠다고 했다.
긴 백수 시절을 거쳐 나도 이제 막 다시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금전적인 여유가 없어 부모님 집에 얹혀있는 상황이라 이 집엔 동생을 받아줄 여유가 없었다. 어느 동네에 어떻게 집을 구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정말 우연찮게도 그 시기에 맞춰 부모님 집 맞은편 빌라에 급매가 나왔다. 마치 우리를 위해 준비된 것 같은 타이밍이었다.
집은 수리 한번 한 흔적이 없이 이 건물이 생기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알루미늄 새시와 덜컹 거리는 나무 단창문,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싱크대와 누런 욕조. 손댈 곳이 너무 많아 걱정됐지만 내 집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어있던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당시 내 취미도 작은 내 방에 누워 다른 집 인테리어를 구경하는 것이었다. 독립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면서도 먼 훗날 생길 내 집을 상상하며 우리 집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상상 속 장바구니를 채우고 있었다. 괜히 리모델링 과정도 챙겨보고 그랬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
퇴근하고 나서 또는 주말 내내 견적 받으러 다니고 시간 날 때마다 인테리어 정보를 찾으며 바쁘게 보냈고 셀프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셀프로 하며 제법 아늑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동생과 함께 사는 공간이다 보니 내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룰 수 없었지만 처음 치고 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맺는가 싶었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불만이 서로 안에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실용주의자인 동생에겐 내가 하는 모든 결정이 비합리적인 것처럼 느껴졌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던 것 같다.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은 제 역할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동생과 달리 난 돈을 더 주더라도 예쁜 걸 사야 직성에 풀렸고 보기 좋게 하기 위해서라면 불편도 감수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불만이 조금씩 생기다가 본격적으로 함께 산 지 3개월도 되지 않았을 때 사소한 말다툼을 계기로 사이는 걷잡을 수 없이 멀어졌다.
집에 상대가 있어도 없는 것처럼 살았고 맘에 안 드는 부분은 부모님께 은근히 돌려 말하며 유치한 생활을 했다. 중간에서 힘드셨던 부모님이 몇 번이고 화해시키려고 노력하셨지만 그렇게 회복될 상황이 아니었다. 1년 반 넘게 서로 한마디도 주고받지 않다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대화가 이 집 팔고 따로 살자였을 정도니까.
욕과 고성이 오가는 싸움 끝에 결론은 내가 이 집을 나가는 것이었다. 내가 이 집에 들인 수고와 노력은 온데간데없고 누구 돈의 지분이 더 많은가로 판가름 났다. 애초에 명의 자체도 동생 단독 명의였다. 이길 수 없는 싸움 앞에서 발악해보았지만 비참해질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순간, 독립이 덜컥 눈앞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