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완성기에서 만나는 융과의 대화는 흥미로운 시간이자 나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 주었다
자기의 완성으로 가기위한 개성화 과정속에 만난 미시적 질문과 담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것들을 소개해 본다.
1. 책의 결론.
2. 독자로서의 의문점
3. 인류사의 혁명을 몰고온 책들과의 연결성
4. 프로이트 vs. 융
5. 책의 내용 도식화.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병리적인 충동의 저장소 였다면 융의 집단무의식은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나, 진정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며 융은 그것을 자기실현 즉 개성화 과정이라고 했다. 결국 모든 것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 융의 분석심리학의 핵심이자 개성과정의 완성이다.
강박증은 마음의 갈등이 불안을 초래하며 이를 피하기 위해 하는 특정행동이나 관념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강박증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콤플렉스, 프로이트의 히스테리 모두 비슷하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순간들의 응결된 기억들이 무의식에 남아있는 감정의 잔해물 들이다. 이는 억압된 기억이자, 성격의 파편들이며 잠재인격으로도 간주할 수 있다. 내가 가진 무의식의 콤플렉스는 무엇이며 검사처럼 날카롭게 질문하고, 해부학자처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가? 다시말해 감정의 배후를 추적하는 일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
정신, 그 자체는 철저한 검토와 성찰의 대상이 되는가? 그렇다면 관찰을 통해 어떻게 그것을 포착할 수 있으며 성찰을 통한 극복은 어떻게 이루어 나가야 하는가? 여기서 장자의 사상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프랑스 예술가 ‘폴 고갱’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는가?
마지막 질문이 독후록의 포문을 열어줄 단초였다.
우리는 어디서 왔고 (코스모스), 우리는 무엇이며(종의 기원),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꿈의 해석, 융의 영혼의 지도)는 인류사를 바꾼 4가지 사상혁명과 맥을 같이 한다.
첫째,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우주 중심으로 바꾼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둘째, 인간은 창조가 아니며 오로지 진화의 산물로서 생태계의 일부라는 사실을 알린 다윈의 '진화론'.
셋째, "인간은 이성적 존재다"라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저격하며 "인간은 무의식에 휘둘리는 비합리적 존재다"라고 말한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마지막은 경제위기와 빈부격차로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측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16세기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함으로써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님을 입증했다면 두 세기가 지난 후 다윈은 그 지구의 중심에 인간이 있다는 생각마저 앗아갔다. 인간은 철저히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래서 다윈의 ‘종의 기원’, 마르크스의 ‘자본론’,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 은 인류사에 혁명을 몰고 온 책으로 꼽힌다. 다윈의 이론은 프로이트, 마르크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심지어 어떤 역사가는 한 술 더 떠
"지성계의 거두 다윈, 마르크스, 프로이트 중에서 유일하게 다윈만이 오늘까지 건재하다" 라고 한다.
1543년 폴란드의 성직자였던 코페르니쿠스가 우주의 중심은 지구가 아니라 태양이라고 처음 외쳤다.
그의 책은 금서가 되었으며 얼마 후 1571년 독일에서 요하네스 케플러가 태어났다. 한 사람의 용감하고 고독한 분투 덕분에 현대 과학에 혁명의 불이 일기 시작했다.
케플러는 신은 공명정대하며 정의만을 구현하는 분노의 신이 아니라 우주를 창조한 권능의 신이다.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강한 어린 케플러는 세상의 종말을 배우고 싶어 했다. 감히 신의 의중을 헤아려 보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이 케플러의 일생일대의 목표가 된 것이다. 고대에 한창 꽃 피웠던 과학문명은 교회의 억압에 의해 1000년 동안 깊은 침묵에 빠져있었다. /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3장 중에서.
신께서 모든 동물들에게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셨듯이, 천문학자에게는 점성학의 길을 열어 주셨다. / 코페르니쿠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를 거처 갈릴레오는 네덜란드 사람이 설계한 스파이글라스를 개조하여 그의 첫 번째 망원경을 만들 수 있었고 이를 통해 태양의 흑점. 금성의 위상변화. 달의 운석공 그리고 목성 주위의 네 위성을 관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성들을 우리는 갈릴레오의 위성으로 부른다.
사실 ‘종이 변한다’는 생각 자체는 그 당시만 해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종의 변화를 주장했던 '종의 기원' 책에 나오는 33명의 학자들을 열거하고 있을 정도였으니말이다. 그러나 다윈이 새롭게 성취한 성과는 다음과 같다.
그는 생명의 변화에 대한 주요 메커니즘으로서 자연선택을 내세웠다는 것이다. 그는 이 선택과정을 통해 차등적인 생존과 번식이 일어나며 그로 인해 생명이 진화한다고 생각했다. 자연선택이론은 과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론 중 하나다.
만일 어떤 개체들에게 유용한 변이들이 실제로 발생한다면, 그로 인해 그 개체들은 생존투쟁에서 살아남을 좋은 기회를 가질 것이 분명하다. 또한 대물림의 강력한 원리를 통해 그것들은 유사한 특징을 가진 자손들을 생산할 것이다. 나는 이런 보존의 원리를 간략히 자연선택이라고 불렀다. _198 page
이 조건들이 만족되면 그리고 오직 그럴 경우에만 어떤 개체군 내의 형질들의 빈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하게 될 것이고 상당한 시간이 지나면 새로운 종도 생겨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제시했던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의 핵심이다.
19세기 무렵.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이란 학문이 싹트기 전 환자의 정신문제에 대하여 사회적 낙인을 불신시키고 정신질환치료의 새 장을 연 학자가 바로 프로이트다. 그는 의식과 무의식. 리비도. 히스테리. 정동이라는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적립했다. 우리가 융을 논하기 앞서 프로이트를 소환한 것은 프로이트를 논하지 않고 융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프로이트는 누구인가
프로이트가 발견한 무의식이란
융이 정의한 콤플렉스는 무엇이며
프로이트와 융은 어떤 관계였나
그리고 두 사람의 이론적 차이점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나는 1856년5월6일 체코의 영토가 된 작은 도시 에서 태어났다. 나의 양친은 유대인이고 나 또한 계속 유대인으로 살았다. 나는 고등학교시절 법공부를 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고 싶다는 희망을 가졌다. 당시에 유행하던 다윈 이론이 나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는데 그것은 이 이론이 세계에 대한 이해를 크게증진시켜줄수 있다는 기대를 걸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생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의대를 선택했다. 나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열등하고 국민의 한 사람이 아니라고 느껴야 한다는 부당함이 나에게 충격을 주었다. 나는 단호히 거부했다. 나는 내가 왜 나의 혈통 또는 그당시 사람들 입에 회자되기 시작하는 말종 인종 때문에 부끄러워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학에 진학하고 나는 의학공부를 게을리 하여 매우늦게 가서야 박사학위를 받을수 있었다. 『한 권으로 읽는 프로이트』 / 지크문트 프로이트 / 임홍빈 , 박종대 외 번역 / 열린책들 · 2019년
인간의 정신영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 지는데 바로 의식과 무의식이다. 그 중 무의식이라는 영역은 프로이트가 등장하기 전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무의식의 거대한 영역이 의식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임상실험으로 밝혀낸 사람이 바로 프로이트다.
본시 그는 신경증의 일종인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던 중 내가 모르는 마음의 부분들이 있다는걸 발견하게 되었고 이는 안나 O 양의 최면요법의 대화를 통해 낯선마음을 표현하게 해 주었는데 이를 통해 환자들의 히스테리 증상이 사라지게 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나'' 라는 자아가 인식하지 못하는 또 다른 자아 뒤에 숨어있는 낯선 마음의 내용은 무었이었을까? 이것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프로이트의 분석에 따르면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인 충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였다. 가령 성적인 충동이나 유아적인 충동 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것들을 사회나 가정이 허락하지 못하고 나의 의식의 영역은 이를 억압하고 감추게 되는데 이렇게 억압된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나의 의식에서 또 하나의 영역을 이루게 되니 그것이 바로 무의식이라는 세계라는 것이였다.
그러므로 무의식이란 내가 통제하기 힘든 충동의 저장소 같은 것이며 동시에 이런것들이 나의 심리를 구성하고 있으니 한마디로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이라고 정의 할 수 있다.
선배 프로이트는 한때 융을 자신의 이론을 물려받을 제자로 매우 반겼다. 그러나 자신의 교조적 '리비도 이론'에 반기를 들자 정신분석학회에서 융을 완전히 축출시킨다. 종교와 영성(靈性)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융을 '사이비 의사', 심지어는 조금 맛이 간 사람으로 매도했다. 이에 융은 그동안의 외부 활동을 접고 자신의 세계로 칩거하게 된다. 이무렵부터 융은 개성화이론을 완성화 시킨다.
히스테리란, 해결되지 못한 마음의 문제가 남아 몸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정신적 억압'이다. 우리는 안 좋았던 기억들은 망각이라는 치료체를 통해 잊어버린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의 저편으로 넘어가고 못한 기억들 중, 기억에 붙어있던 감정이라는 잔해물은 자신의 무의식의 바다로 흘러들어 간다. 그리고 특정 상황이 연출되면 숨어있던 무의식의 감정들은 다시 의식으로 올라오게 되고 우리는 그것을 요즘말로 "버튼 눌렸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특정사람마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반응을 말하는 것이다. 프로이트가 히스테리를 정의하였다면 융은 콤플렉스를 정의하였다.
콤플랙스는 주로 정신적 외상.가족간 관계 문화적 조건 같은 경험의 산물이다. 이들은 융이 원형적 이미지라고 부르는 고유한 요소와 결합해 콤플렉스를 구성한다. 콤플렉스는 정신이 경험을 소화하여 내적 대상으로 재구성한 뒤 정신안에 남아 있는 것을 말한다.
이제는 무의식에 대해 두 사람의 차이점을 파악해 보자.
프로이트는 의식에서 억압된 것이 무의식을 형성하고 그 중간과정에 전의식이 있다고 하였지만, 반면 융은 무의식은 개인적 차원의 무의식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집단적 무의식으로 나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융은 생성방식에서도 차이점을 주장하였다 무의식이 먼저 있으며 의식은 이후에 형성된다는 것이다.
또하나 무의식의 표현방식에 있어, 먼저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표현은 억압된 의식이 꿈으로 위장되어 나타난다고 하였지만 이에 반해 융은 가끔 꿈으로 드러날 뿐이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의 가장 큰 차이점은 프로이트는 모든 분석대상이 신경증 환자 즉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 위주였다면 융은 보통사람을 연구하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융은 인간 정신의 가장 깊은 층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했고 그 무의식 내용은 '원형(타고난 DNA 성격)'과 '본능'이라고 하는 보편적 형태와 힘이 결합된 것이라고 보았다. 다시 말해 본능과 원형은 우리 각자가 부여받은 자연의 선물이다. 더불어 정신에너지는 쇼펜하우너가 말한 의지 will는 인간의 활동 및 사유의 근원적 동기부여자를 프로이트는 이것을 리비도라고 했다. 더불어 프로이트에게 영혼이란 본질적으로 성적 에너지와 다르지 않다고 했지만 융은 성적충동 역시 리비도를 구성하는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나아가 융은 개인의 진정성이 발견되는 것은 무의식의 상상들과 생각들을 개성화 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무의식 내용들이 이미지화하는 과정에서 의식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과정은 개인이 의식화하려는 고투에서 얻는 산물이다.
페르소나는 다른 얼굴을 만나려고 우리가 쓰는 얼굴이다. 그래야 우리는 그들처럼 보이고 또 그들에게서 호감을 얻는다. 우리 모두는 지나치게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 왜냐하면 페르소나가 끝나고 그림자가 시작되는 상이한 점들이 우리를 수치스럽게 하기 때문이다. 죄의식은 행위를 분리할 수 있지만 타인으로부터 받은 수치심은 자존감 전체를 빼앗아 간다. 수치심은 죄의식 보다 더 원시적이며 잠재적으로 더 파괴적인 감정의 일종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수치심과 죄의식은 언제 느끼는가? 나는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이와 같은 미시적인 질문과 담대한 답변을 스스로에게 요청했다.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억눌린 무의식의 발원지를 찾아 대화를 통한 최면요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면 분석심리학자인 융은 예지몽과 동시성. 즉 둘 또는 그 이상의 사건들이 하나의 의미를 가지는 일치를 말하는 것으로 내면의 체험과, 외부의 사건이 시공간적으로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인과론적 법칙에서 벗어나 있는 현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언어로서 쉽게 설명되지 못하는 현상을 발견한 융은 중국의 역학에 관심을 가졌으며 주역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었다. 더구나 칼융이 만든 칼융 주역연구소는 오늘날 최고의 주역연구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p283, p 306 그림 참조. 그렇다고 융의 이론이 동시성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통해 자기의 개성화과정을 이룩했다.
나는 나의 지극히 작은 자아에 익숙할 뿐, 이런 자아로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
잠시 주역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래의 내용은 김승호 선생의 "마흔에 혼자 읽는 주역 인문학"과 강기진 선생의 "오십에 읽는 주역"의 내용을 발췌하였다.
시간에는 2가지 속성이 존재한다. 현재의 모든 것이 과거로부터 온 것이다. 이것은 다시 미래에서 온 것들로 교체된다. 다시 말해 이 과정은 영원이 반복된다. 현재는 과거로부터 왔지만 미래로부터 온 것이기도 하다. 64괘의 상괘와 하괘가 있을 때 위의 상괘는 미래에서 온 것이고 아래의 하괘는 현제를 의미한다. 현재란 바로 미래와 과거가 만나는 순간을 뜻한다.
시공. 時空 (때 시, 빌 공) 이란 무엇인가?
시간은 양이고 공간은 음이다. 양이 있으면 음이 있고 시간은 현재를 향해 오고 공간은 시간의 힘을 빌어 미래를 향해 움직임을 작용한다. 그래서 시간과 공간은 한 덩어리일 뿐이다.
주역은 이렇게 말한다.
주역에는 태극이 있으며 태극은 음양을 낳고, 음양은 사상을 낳고 사상은 팔괘를 낳는다.
사물은 팔괘로 분류되고 이것들이 서로 만나면서 대성괘가 만들어진다. 주역에 있어 팔괘가 단어라면 대성괘는 문장에 해당된다. 대성괘는 팔괘를 만나 자연적으로 64개가 되는데 이것을 이해하면 만물에 통할 수 있다.
미래를 아는 방법은 3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징조를 알고 기미를 파악하는 것.
둘째는 점을 치는 것이고
셋째는 주역의 괘상을 응용하여 사물이 변화하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 마흔에 혼자 읽는 주역 인문학 중에서
두 번째 같은 맥락을 이야기하지만 강기진 선생의 주장은 융의 개성화 주장과 일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사람나이 오십에 이르면 나타나는 현상이 한 가지가 있다고 한다. 종교를 찾거나 역술인을 찾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 나이 오십에 이르면
더 이상 인력으로 안 되는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진급도 사업도 나이 든 자녀도 이제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오십 대는 천운을 바라며 종교나 역술인을 자주 찾게 된다. 그중에 가장 많은 질문이 바로 "팔자를 바꿀 수 없나요?"라고 묻는 것이다.
주역은 말한다.
오늘 먹은 나의 마음이 내 인생을 어떻게 규정하는 가에 따라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가 바뀐다.
다시 말해 과거와 미래를 바꾸는 것은 현재 나의 마음이다.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지난 과거는 다각적이다. 지긋지긋한 과거였는가?, 의미 있는 과거였는가? 여러 각도 중에서 과연 어떤 것이 진정한 자신의 과거인지 사람은 잘 보지 못한다. 이를 분명히 하는 나이가 오십에 부여된 지천명이다.
주역이 던진 마음의 화두를 융은 9장 시간과 영원에 대하여 중 개성화 과정을 통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다. 정신 그 자체는 철저한 검토와 성찰의 대상이 되는가? 관찰을 통해서 어떻게 그것을 포착할 수 있는가. _p263_
안을 들여다 볼 이유가 커졌다.분석심리학이라는 거창한 이유보다 자기마음 하나 다스리는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임은 틀림없는 것 같다.
“감정에 대한 더 깊은 인식” 다시 말해 “감정의 과정을 고해상도로 인식하는 것” 이 곧 감정이 발생하고 사라지는 순간의 느낌과 그 사이의 모든 미묘한 변화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라면 정신분석. 분석심리학의 목표도 단 하나일 뿐이다. 나 자신과 세상을 더 따뜻하고 깊은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
각자의 답안지에 주역의 힌트를 더해 답안지를 작성할 것. 그건 바로 만점에 가까운 정답지다.
참고자료
1. 한 권으로 읽는 프로이트 / 데이비드 스태포드 클라크 저 / 최창호 역 / 푸른숲 / 2002년 01월 31일
2. 종의 기원 / 찰스 다윈 저 / 장대익 역 / 최재천,강호정,김성한 / 사이언스북스 /2019년 07월 31일
3. 코스모스/ 칼 에드워드 세이건 저 / 홍승수 역 /사이언스북스 / 2006년 12월 20일
4. 한 권으로 읽는 마르크스와 자본론 / 사사키 류지 저 / 정성진 역/ 2020년 06월 15일
5. 마흔에 혼자 읽는 주역 인문학 / 김승호 저/ 다산초당/ 2023년 04월 12일
6. 오십에 읽는 주역 / 강기진 저 / 유노북스/ 2023년 10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