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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툰 Jun 11. 2016

비가 오는 날에는 일기예보를 듣지 않는다.

 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 차가워진 새벽 공기를 가르며 퇴근하는 길. 스쿠터에서 내려 확인하는 것은 오늘의 날씨다. 비가 온다고 하면 지하 주차장에 스쿠터를 대려고. 비를 맞으며 스쿠터를 탈 수는 있지만 이미 비를 흠뻑 맞아 안장이 젖은 스쿠터는 도저히 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가 온 단다. 지하 주차장에 댔다. 현관문을 열고 부엌을 지나 내 방문을 열고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한 그 곳. 이불 속. 그래서인지 곧 잠이 든다.

 기억나지 않는 꿈을 몇 번 바꿔꾸고는 일어나니 오후 한 시. 출근이 가까워왔다. 토요일이라고는 하지만 주말이니 쉰다거나 평일이니 일한다는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다. 할 일이 있으면 회사를 가고, 할일이 없어도 회사는 간다. 그래서 거의 매일 샤워를 한다. 새벽녘에 봤던 어슴푸레한 하늘이 여전하다. 아직도 낮이 오지 않은 낮이다. 비가 오려나보다. 젖은 머리를 대충 말린다. 바싹 말려도 얼마 지나지 않아 습한 공기 덕분에 축축해질테니까.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스쿠터 키를 챙겨 집을 나선다. 그리고 스쿠터 안장을 열어 헬멧을 꺼낸다. 날씨가 맑은 날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쓰지만, 비가 오는 날은 머리가 젖지 말라고 쓴다. 어차피 쓰는건 매한가진데 이유만 그 때 그 때 달라진다. 헬멧을 쓰고 시동을 걸고 스로틀을 당긴다. 가는 중에 툭툭툭툭 빗방울이 헬멧을 때린다. 조금 더 조심스럽게 가속을 하고 천천히 감속을 한다. 그래도 도착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다.

 회사에 도착해 처마 밑에 스쿠터를 댄다. 비를 맞으면 타지 못하니까. 내가 타기 전까지 스쿠터가 비에 젖지 않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그리고 시동을 끄고,헬멧을 안장 밑에 넣고 사무실 문을 연다. 이제 오늘은 더이상 일기예보를 볼 필요가 없다. 비가 오기 시작한 이상, 언제 그칠지는 내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는, 오기 전에 대비할 필요가 있을 뿐 내리기 시작하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맞을 만 하면 우산없이 젖어야 하고, 맞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우산을 사거나 밖으로 나가지 않거나 할 수 밖에 없다.

 이미 벌어진 일은 내가 손을 쓸 수가 없다. 그저 닥치기 전에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들을 할 뿐. 그리고 그 준비가 끝나면 담담하게 비를 맞는 것 뿐이다. 비거 언제 그칠지도 내게는 중요하지 않다. 비를 맞으며 기다리는데 익숙해지고 나니 맞는 것 자체로도 작은 즐거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퇴근할 즈음에는 비가 그칠까. 그치지 않아도 세차게 퍼붓지만 않는다면 스쿠터를 타고 퇴근할 생각이다. 속옷까지 흠뻑 젖은 채로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옷을 벗어제끼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는 보송보송한 옷들로 갈아입고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갈거다. 그 순간을 위해서 비를 맞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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