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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젬툰 Oct 31. 2016

겨울과 소매 시보리의 상관 관계

거짓말처럼 3일 만에 계절이 바뀌었다. 목요일에서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사이, 가을은 겨울에게 잡아 먹혔다. 겨울이 많이 배가 고팠나 보다. 가을의 손톱 하나 남김없이 순식간에 잡아먹어 버렸으니. 미처 겨울과 만날 준비도 못 했는데, 나는 익숙한 퇴근길에 익숙하게 베스파에 시동을 걸었다. 오랜만에 장갑을 꺼내 꼈다. 사실 스쿠터를 탈 땐 손의 방한대책이 가장 중요하다. 손만 안 시려우면 한 30분 정도는 탈만하다. 그리고 시동을 걸어 하루에 두 번씩 방향만 바꿔 다니는 출(퇴)근길 위에 몸을 싣는다. 날이 추워지니 확실히 스쿠터 엔진도 버거워한다. 엔진이 얼른 뜨듯해져야 속도도 시원하게 나는데, 도통 엔진이 데워지질 않으니 괜한 소음만 거세지고 속도의 오름세는 더디다. 아, 그런데 속도를 낼수록 자꾸만 차가운 바람이 소매와 손목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손목까지 들어오는 거야 어지간하면 참겠는데, 팔꿈치를 넘어 겨드랑이까지 타고 온다. 양 소매 사이로 침투한 찬 공기가 겨드랑이를 지나 가슴에서 만난다. 생각지 못한 복병이다. 장갑으로 방한대책이 완비됐다고 생각했건만.

불과 지난주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겨울의 소매 공격. 춥다의 느낌이 아니라 차갑다. 그리고 무척 수치스러운 추위다. 이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내 가슴을 만지다니. 그렇게 수치스러운 느낌을 가슴에 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부터는 시보리가 쫀득한 잠바를 입어 이런 수치를 겪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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