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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 좋은 의자, 치타델레

직접 쓰고 제본한 책을 선물받다

by 뮤제라블

평범한 월요일

아주 오랜만에 선생님에게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메시지를 받자마자

덜컥 찔려버린 불충한 제자.

스승의날에도 연락을 못드려

마음이 쓰이던 차였다.



책을 받았다

다음날 커피를 사서 돌아오는 길.

집앞에 놓인 납작한 봉투.

겉면의 익숙한 글씨체.

굳이 정정한 총장실과 문화원.

그러나 이름만 세 글자 심플하게.

보낸이가 어떤사람인지를 보여준다.


AI로 생성된 글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일일이 타자를 치며 쓴 글이라니 낭만적이지.

손으로 쓰는 글은 사라진지 오래고

키보드를 직접 친 글조차도 찾아보기 힘든데.

그런 세상에서, 귀한 선물이구나.


분명 어떤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한다.

선생님은 의미주의자니까.



다만 감동파괴의 모먼트.

메모의 세 번째 줄을 읽지 못했다.

이마저도 ChatGPT의 도움을 받아본다.

mis.timing 이라고 써있는 거였구나.



읽기 전.


텍스트 읽기를 늘상 ai에게 미뤄놓고

원래라면 쇼츠와 유튜브에 빠져있을 시간.

간만에 아주 긴 글을 읽게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나저나 정말로 얼마 후에는 그런 학원이 필요하겠군.

책 읽는 학원, 대화하는 학원…

마치 노동과 처벌의 트래드밀을 재현한 헬스장의 러닝머신처럼.


어쨌든, 선생님은 아마 내게도

‘생각을 위한 치타델레’가 필요한 순간이라고

떠올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런 마음으로, 읽어본다.



읽으면서.


경계를 넘는 이야기는 늘 흥미롭다.

경계가 두터운 바다를 건너는 것.

요트를 타면서 그걸 처음 배웠다.

그런 경험은 흔치 않은 것이다.


종종 발견되는 오탈자들과 독특한 표현들은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되새기는 느낌이기도 하다.


너무나 잘 아는 이야기도 있고

전혀 모르는 이야기들도 있다.

새삼 긴 시간, 많은 생각들을 공유했다고 깨닫는다.


대리경험.

생각보다 생생하고 상세하다.

도시의 정취가 느껴지고 경험이 펼쳐지는 부분이 있다.

나와는 다른 관점, 다른 경험.

그래서 그 시절이 재미있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삶의 모양을 응원하는 듯하다.

너무 거창하지 않아도 되고

개인에게만 의미가 있어도 좋은 삶들을 함께 엿본다.


나의 아이슬란드 여행을 떠올린다.

투어링, 여정 그 자체가 여행인 것.

목적지가 없는 것. 길의 상황과 자연이 여정을 이끄는 것.

최소를 챙겨 조금씩 나아가는 길.

생경하고, 잔인하고, 아름다운 풍경.

나에게는 그 시간이 생각의자였을지도.



읽고나서.


읽고나서 가장 기억에 남는 구절은

"생활이 꿈의 발목을 잡는다는 건

핑계일지 모른다"라는

아주 초입의 어떤 몽상가를 만나고 나서의 감상.


아마도 이 책을 내게 보내준 이유는

짐작한대로인 듯하다.

생각하고, 나아가기를 원했을 거라고.


그리고 불현듯 선생님의 승진 무렵,

일본 일주 즈음의 기록을 찾아본다.

유엑스랩 졸업생이라면 습관이 된,

과거의 로그를 찾는 일을.


승진이라는 키워드로 몇 가지 기록을 찾아본다.

아이메시지, 이메일, 개인블로그.


금세 날짜를 찾아낼 수 있다.

이 책이 쓰여지기 시작할 무렵일테다.

랩에서 다같이 승진 축하 파티를 열어드렸다.

아마도 떠나기 전날 혹은 당일 즈음일까?


몇 주가 지나고, 2017년 9월 22일.

나의 개인 블로그의 일기도 발견했다.

이 if 교수제자 만났을까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이 난다.

요는 선생님과 나는 정말 다르고

많이 다른 탓에 접점이 거의 없어서

교수-제자가 아니었다면 만날 일이 없었을 거라는 것.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나고,

시애틀로 떠났을 즈음에 받은

이메일을 발견했다.


시간은 맞지 않는데

이게 왜 검색됐을까 보니 첨부파일이 있다.

같은 책의 초고. 그때는 43쪽까지였는데.

7년이 지나 205쪽으로 되돌아왔다.


그리고 나도 나의 기록을 하겠다고 했는데

다시 들어가보니 되돌아볼 만큼은 적어두었네.


물론 마음먹은 만큼 성실하진 못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완성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본다.

떠오른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

그것을 온전히 마무리한다는 것.

여간 부지런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

그런 점에서 존경스럽다.


어쨌든 이렇게 메모를 쓰다보니

책을 보내준 의도가 이미 실현된 듯하다.

되돌아보게 된다.

생각하게 되고, 곱씹게 된다.


나를 투사하여 비슷한 감정을 읽어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영영 이해할 수 없을 관점도

읽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결국 시작에 의도한 바처럼

마지막에 달하여 선생님에 대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아마도 선생님을 더 이해하게 된 만큼

나 스스로를 더 이해하게 되기도 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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