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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Mar 13. 2023

마음이 답답할 땐 다이어리를 연다.

손으로 쓰는 일기장의 순기능에 대해


 24시간 동안 쌓인 걱정의 종류가 (소소한 것 포함) 열다섯 개가 모였다. 요 며칠 나는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독한 약을 먹은 것 같기도 했다. 글로 풀어내자면 아마도 몽롱한 기분. 일주일이 밀린 다이어리를 펼치고 말 그대로 '토해내듯' 펜으로 글을 썼다. 마음에 차곡차곡 묵혀둔 다양한 종류의 감정들에 대해 나열했다. 이 감정 중에는 오래된 친구처럼 익숙한 감정도 있고, 새 학기에 만난 낯선 이처럼 어색한 감정도 있었다.

 확실한 답을 내리지 못한 것들도 많이 쌓여있었다. 지난주,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서 남긴 '마음을 편하게 먹겠다고 결심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메모도 다이어리에 새롭게 추가되었다. 문득, 나는 해소되지 못하는 이 모든 것들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내 일상의 카타르시스라는 명목으로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지도... (이 생각도 새로운 메모로 방금 등록되었다)


 다이어리에 남겨둔 겨울의 필사들을 다시 읽는다. 이땐 이런 말이 가장 큰 위로가 되었구나 하고 다음 장, 또 다음 장을 넘긴다. 카카오톡의 나에게쓰기나 노션의 메모 기능이 아닌 손으로 눌러 써둔 이 글들은 언제 어디서나 힘이 있다. 여기저기 메모를 해두기 좋은 요즘 같은 시대에 손으로 쓴 메모가 귀하게 느껴지다니!
'자기 인생의 사명을 누군가가 집 앞까지 가져다주기를 기대하면 안 되고 자아와 세상이 만나는 곳으로 나와 적극적으로 사명을 찾아야 한다' 1월 말에 남겨둔 <가치있는 삶>의 이 구절이 오늘의 나를 살렸다.


 좋았던 필사도 정신 회복에 도움이 되지만 감정을 배출해낸 흔적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일기는 일기장에'라는 신념 하에 절대 들키고 싶지 않은 감정들이 다이어리에 가득하다. 지금 보면 '무슨 이딴 걱정을 다..!' 싶은 것들이 많은데, 그게 묘하게 힘이 된다. 웃기는 순기능이다. 수많은 걱정들을 적극적으로 적어내기만 한 오늘 하루도, 언젠가의 하루를 살릴 것이라 믿는다. '뭐 이런 걸 열다섯 개씩?'하고 웃고 지나갈 그날을 위해 다이어리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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