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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벨라 Jun 25. 2019

여성 캐릭터 진화는 왜 더딜까

여전히 <검법남녀>에는 없는 것

휴스턴 국제영화제 금상 수상작,

그러나 아쉽게도 저에게는 불합격입니다


제52회 휴스턴 국제영화제 TV 드라마 시리즈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작품. MBC 최초의 시즌제 드라마 <검법남녀>다. 시즌 1 때도 스토리 자체에 확장성이 있어 시즌제가 충분히 가능한 드라마라 생각했고 시즌 2로 만나본 연출은 소름 돋게 핍진했다. 리모컨을 든 오늘이 월요일이나 화요일이었고 오후 9시였다면 채널을 고정시켜둘 것 같다. 그러나 나에게 조금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면? 예를 들어 원하는 콘텐츠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OTT 서비스가 발달해 인터넷으로 무제한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되었다면? <검법남녀>를 ‘선택’하진 않을 것이다. 더 자극적인 스릴러를 찾는다면 넷플릭스로, 더 색다른 스릴러를 찾는다면 또 넷플릭스로 가면 되니까. 확장성 있는 스토리만으로 어필하기에는 <검법남녀>만이 가진 차별성이 없다. 특이한 것, 내가 <검법남녀>를 선택하지 않으면 절대 아무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것, 그게 없다. 띠링- 최종 시청 결과 <검법남녀>는 아쉽게도 불합격하셨습니다. TV 드라마 전형에 관심을 갖고 콘텐츠를 제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귀사 콘텐츠의 우수한 자질과 역량에도 불구하고 저의 한정된 하루 시청시간으로 인해 선발되지 못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필자가 살면서 가장 많이 받은 문자 변형(좌측), 검법남녀 시즌 2 기획의도(우측)  /사진=iMBC 검법남녀 시즌 2 공식 홈페이지




콘셉트는 세 캐릭터의 공조?


<검법남녀> 기획의도를 보면 제작진이 드라마를 만들 때 캐릭터에 유독 집중했음을 알 수 있다. 잘 캐치했다. 2019년 드라마의 성패는 캐릭터의 힘에 달려있다. 그런데 캐릭터를 강조한 기획의도 치고는 캐릭터가 너무 죽어있다. 세 캐릭터의 공조가 아니라 거의 캐릭터 1명이 멱살 잡고 끌고 가는 수준이었으니까. 나머지 둘, 은솔과 도지한은 묻혔다. 이렇게 한번 물어볼게. 은솔이나 도지한이라는 검사가 <비밀의 숲> 황시목 검사보다 매력 있나? 황시목 캐릭터보다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캐릭터인가? 그래, 둘은 확실히 힘이 없다.



좌측부터 정재영(백범 역), 정유미(은솔 역), 오만석(도지한 역)  /사진=iMBC 검법남녀 시즌 2




매혹적인 캐릭터 백범


법의학에 100%는 없습니다.

야, 소설 쓰지 마. 피 나오면 다 살인이야?


드라마를 보는 내내 귓가를 맴돈 법의학자 백범의 대사다. 힘 있다. 멋이 있다. <검법남녀>는 백범 캐릭터가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한 이유다. 사건을 마주할 때마다 백범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지 궁금하다. 저울에 올려놓고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달아보는 백범의 머릿속이 궁금하고 저울질을 멈추게 할 사건은 없을지 궁금하다. 계속해서 한 캐릭터가 궁금해진다는 건 그린라이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내추럴>보다 신선하진 않다. <언내추럴>은 <검법남녀> 시즌 1보다 네 달 일찍 시작한 일본 TBS 드라마다. 오전 9시라는 불리한 편성에도 평균 시청률 11.1%를 찍으며 일본 드라마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작가상 등 6관왕을 차지했고 방송기금상 최우수상, 갤럭시상 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작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대단한 실적을 거머쥔 바 있다. 비슷한 시기의 법의학 드라마임에도 <언내추럴>이 더 신선하게 비친 이유는 캐릭터라이징 때문이다.

 


이시하라 사토미(미코토 역)  /사진=TBS アンナチュラル 공식 홈페이지


법의학은 미래를 위한 학문이다.

절망할 시간 있으면 맛있는 거 먹고 잘래.


명대사를 남긴 주인공 미코토는 젊은 여성 법의학자다. 이성적인 판단력으로 중무장한 미코토와 비교하면 <검법남녀> 백범 캐릭터는 성별도 나이도 고리타분하다. 또 한 번 물어볼게. 백범 캐릭터가 <언내추럴> 미코토 캐릭터보다 매력 있나?


콘텐츠 영향력 지수(CPI, Contents Power Index)를 보면 시청자들이 현재 요구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6월 둘째 주 CPI 5위 내에 진입한 TV 콘텐츠 중 드라마는 두 개였다. 2위를 차지한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검블유)>와 화제성 하락으로 4위를 차지한 <아스달 연대기>다. 두 드라마의 공통점은 ‘신선한 차별성’이 있다는 점이다. 400억 이상 투자받은 <아스달 연대기>가 바이럴 되는 이유는 관심 없지만 <검블유>가 2위를 차지한 건 주목할 만하다. 직장인 여성 세 명을 주인공으로, 팽팽한 신경전과 색다른 사랑을 그려낸 드라마는 특히나 젊은 여성 시청자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트렌드는 여성이다.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검법남녀>는 시대의 과제에 얼마나 충실하고 있는가? 아프지만 솔직해지자면 <검법남녀> 속 여성 캐릭터는 모두 죽어있다. 젊은, 선택권을 가진, 콘텐츠를 찾아서 소비하는 시청자에게 <검법남녀>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시대에 역행하는 안정적이고 평이한 캐릭터 설정으로 젊은 시청자를 TV 앞에 앉히려고 했다면 욕심이 과했다. 시청률 7%를 넘기고 있는 지금에 만족하지 말고 그 이상을 바라봐야 한다. 그러자면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당차고 소신 있는 여성 캐릭터가 필요하다. 황시목, 조장풍, 조들호 등 최근 인기 있었던 남성 원톱 서사에 힌트가 있다. 아주 단순히 이들의 성별만 바꿔도 신선한 충격일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난 그걸 원한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자는 말이야?


첫 번째 현실적인 대안은 은솔이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시즌 1 시청자가 대거 탈주한 이유는 은솔이라는 온실 속 화초 아니, 민폐녀 캐릭터 때문이었다. 더 이상 민폐 끼치는 멍청한 여성 캐릭터는 보기 싫다. 여전히 감정에 휘둘리는 모습 말고, 진짜 성장한 모습을 보고 싶다. 시즌 2에 내가 거는 기대는 은솔이 이성적이고 냉철하며 똑똑한 검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똘똘 뭉친, 매혹적인 은솔 캐릭터를 기대한다. 오히려 백범 캐릭터와 티키타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이 잘 맞는 업무계 솔메이트(soulmate)가 되는 모습을 바라본다.


두 번째 현실적인 대안은 too much 냉장고 속의 여자를 걷어내는 방법이다. 이제 막 3개의 에피소드가 마무리되고 있는 시점에 제시하긴 이른 방법이다. 그러나 보여준 3개의 에피소드 모두에서 여성이 그저 피해자, 사건을 제시하는 도구로 소비되는 장면은 거북했다. 계속해서 피해자는 여성이고 가해자는 남성, 사건을 해결하는 법의학자와 심지어 검사도 남성이다. 우연일까? 선악을 떠나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여성 캐릭터가 최소한 조연으로라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사건의 진행을 위해 희생되는 여성이 더 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좌측부터 정유미(은솔 역), 강승현(샐리 역)  /사진=iMBC 검법남녀 시즌 2



세 번째 현실적인 대안은 여성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에피소드를 추가하는 방법이다. 시즌 2에서 유독 눈에 들어오는 캐릭터는 은솔이 아니라 샐리다. 그러나 현재는 백범과의 로맨스로만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잘 들여놓고 사용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달까. 은솔과 샐리가 사건을 해결하는 주축에 서는 에피소드를 구상해보면 좋겠다. 약물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샐리와 은솔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히 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또 최강 보스가 등장했다


이제 최강 빌런 Dr. 장철이 등장했고 이 큰 사건을 해결하면 한 시즌이 끝나지 않을까 싶다. 다음 시즌이 있다면 제작진에게 미리 부탁할 점이 있다. 한국 범죄 드라마의 영원한 약점, ‘범행 동기’를 깊이 있게 고민해 주셨으면 한다. 왜 한국 범죄 드라마는 동기가 항상 원한일까. 부모님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죽마고우의 복수를 대신해주기 위해, 나의 과거를 돌려받기 위해. 그러다 더 힘센 빌런이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사이코패스. (찡긋-) 더 이상 누군가에 대한 원한 말고, 사이코패스 말고, 색다른 범죄 드라마를 원한다. 내가 살아가며 두려운 건 누군가에게 진 원한이나 내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일상에서 쉽게 마주할 평범한 악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고민과 함께 한 층 새로워질 시즌 3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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