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LOV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개연성 Aug 28. 2021

7의 여자, 5의 여자

너무 부담스럽게 예쁘지도, 같이 다니기 부끄러울 만큼 못생기지도 않고 딱 적당해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여자가 ‘7의 여자’라고 부른다고 한다. 연애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됐다(남자들 커뮤니티에서는 많이 쓰이는 말이라고).


나 정도면 7의 여자이지 않나 생각해서 친구에게 말했더니, 뜻밖에 그녀는 요즘 예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며, 최근에 수영장을 갔는데 전부 선녀들만 있었다거나, 우리 과에 예쁘기로 유명했던 그 애 기억하냐는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에는 어리둥절하며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나에게 하지'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 말에는 '너는 7의 여자가 아니야'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직접 물어보니 맞다고 한다. 친구는 나 정도면 5나 6의 여자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굳이 그런 숫자놀음에 우월감을 느낄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


친구가 한 말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한편으로는 내 가장 가까운 사람 중 한 명이 나를 그런 식으로 깎아내렸다는 게 실망스럽고 속상했다. 난 단지 스스로 자신감 있다고 느낄 뿐인데 그걸 우월감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나를 5나 6의 여자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평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를 대했다고 생각하니 배신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는 결국 절연하게 됐다.



오늘 유튜브를 보다가 우연히 또다시 7의 여자에 관한 콘텐츠를 봤다. 내가 6일까 7일까 애매할 때, 어떻게 7의 여자가 될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구체적으로 이런 이야기였다. 머리는 최소 가슴까지 기르고, 고데기를 하고, 허리와 골반이 드러나는 (여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옷을 입어라. 그것에만 충실해도 남자들이 예쁘다고 인식한다. 이런 식으로 꾸미면, 6의 여자도 7의 여자가 될 수 있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여성스러운 라인이 많은 여자를 남자들이 예쁘다고 느끼는 것 말이다. 아마 어떤 본능적인 반응일 것이다. 그 객관적인 사실과,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매우 구체적으로 콕 집어서 알려주는 그 연애 유튜버에게서는 일종의 인류애마저 느껴졌다. 댓글에서도 사람들이 격렬한 감사를 표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개소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갑자기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이다.


왜 7의 여자가 되고 싶은 걸까?

왜 남들이 나를 7의 여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분이 나빴던 걸까?


사실 나는 객관적으로 아주 예쁜 외모는 아닌 것 같다. 친구의 말처럼 7의 여자까지는 아닌지도 모른다. 5의 여자, 잘 봐줘야 6의 여자인 것 같다. (4의 여자일지도 모른다.) 일단 7의 여자가 가장 인기가 많다는데, 나한테 대시하는 사람은 잘 세봐야 일 년에 두세 명 정도다.


그런데, 7의 여자가 되기 위해 머리를 기르는 것도, 7의 여자가 되기 위해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는 것도 정말이지 섹시하지 않아서. 그런 행동을 할 바에야 차라리 5의 여자가 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에 대해서도 최근 이런 생각을 했다. 데이트가 있다고 했을 때 어떤 사람과 만날 때는 성적 매력을 어필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또 이왕이면 호감을 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일부러 몸매가 잘 드러나는 스키니진이나 원피스, 튀는 패턴이나 디테일이 없는 최대한 무난한 옷을 입게 된다. 한편 어떤 사람과 만날 때는 내가 평소에 입는 옷, 편한 옷, 가장 좋아하는 옷을 입는다.


전자의 사람과는 항상 안 되었고 심지어 최악으로 끝났다. 만족감을 주는 유쾌하고 애정 넘치는 관계로 이어진 건 항상 후자였다.


이런 결과는,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내가 상대를 대하는 마인드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전자는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호기심보다는, 상대를 어떻게든 성적으로 꼬시겠다는 비굴하고 속물적인 마인드로 대했던 것이다. 또 본인의 객관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람들이 내게 전자의 충동을 들게 했는데 (그들과 대화하다 보면 나도 객관적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것처럼 느껴졌다.) 내면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애초에 멀리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백 프로 나의 책임이다.


자, 그래서 나의 문제는 이것이다. 5의 여자로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나에게 대시하는 남자도 없고, 인기도 그다지 없고, 연애도 매번 망하고.. 7의 여자라는 기준에 못 맞추다 보니, 주위에는 너디한 개발자만 소개해주려 하고.. 열심히 헬스타그램하는 간지남들과 잘되긴 요원하고..


뭘 어떻게 살아, 좆 까라 그래.

그냥 나답게 살면 된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외모지상주의 극복한 썰


출구 없는 방을 원하지 않는 이유


매거진의 이전글 출구 없는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