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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Jun 17. 2019

OO을 잘 하는 법 : OO을 한다.

유럽에서 강조하는 Learn By Doing 교육법을 통해 영어 돌아보기

지금은 퇴사한 두번째 직장에서 유럽으로 출장을 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일주일 동안 덴마크, 독일, 벨기에, 영국을 돌며 6개의 교육기관과 미팅을 잡는 빡센 스케줄이었죠. 

(힘들걸 알면서 팀장은 왜 일정을 그렇게 잡았을까

당시 저는 엔트러프레너십 교육을 기획 매니징하는 팀에 속해 있었고, 출장의 목적은 이 분야에서 선진적이라고 평가 받는 유럽의 교육을 배워 오는 것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과 후다닥 여행을 다녀온 뒤로, 처음 유럽에 가보는 것이라 조금 설레기도 했습니다. 10프로 정도…?

(90프로는 앞으로 있을 고난과 재난에 대한 슬픔

4개 나라를 돌면서 든 생각은, ‘역시 듣던 대로 유럽인들은 영어로 말을 잘 한다…’였습니다. 

방문한 교육 기관의 사람들은 나름 엘리트여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길가에 다니던 사람들도 영어로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자전거 도로에서 길을 막고 있던 팀장님을 향해 덴마크에서 지나가던 여자가 

“Lady, I don’t care if you are a tourist, but you need to keep the lane!” 

이라고 소리쳤을 때는 경이감마저 들었지요. 

우왕 잘한당?!


영어를 공부한 시간으로만 따지면 한국인들한테 비교가 안 될텐데, 신기했습니다.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출장이 끝나갈 때쯤 추측할 수 있었는데, 

4개 국가 6개 기관에서 모두 하나같이 강조하는 교육 철학이 있었습니다. 

“Learn by doing.” 

귀가 따갑도록 들은 이 구절의 뜻은 직접 해보면서 배운다는 의미입니다. 

그 이유도 생각해봤는데, 간단하더군요. 

잘 하려면, 직접 해봐야 배우니까요. 


스키를 잘 타려면, 스키를 타봐야 합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면, 그림을 그려봐야 합니다. 

공부를 잘 하고 싶다면, 공부를 해봐야 합니다. 

연애를 잘 하고 싶다면, 연애를 해봐야 합니다. (흑) 


제 과거를 회상해봤는데, 저도 그렇게 배웠던 것 같습니다. 

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 수학 시간, 학원 선생님이 개념을 설명하시고 예제를 풀어주실 때, 저는 다 알아듣겠더군요. 

문제를 스스로 풀어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는데, 저는 풀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풀이과정을 쓱 읽으니 다 알겠더라고요. (중2병이 가장 심했던 시기입니다.) 

그리고 중간 테스트를 치렀는데, 크게 당황했습니다.

거의 못 풀겠더라고요. 

이럴 리가 없는데? 다른 문제를 어떻게 푸는지 다 보고 이해했는데? 라고 생각하며 땀만 뻘뻘 흘렸지만, 점수는 민망했습니다. 

그 때 알겠더라고요. 문제를 잘 풀려면, 직접 풀어봐야 한다는 걸요. 내가 직접 해보지 않고, 남이 해놓은 것을 머리로만 이해하는 건 천지차이로 달랐습니다. 

숙제를 꼭 하라는 선생님의 고요한 위협과, 제가 받은 충격 속에, 그 다음부터 저는 꾸역꾸역 풀이를 보지 않고 가능한 많은 문제를 풀었고, 점수도 나름 많이 올랐습니다. 

친구들이 뭔가 굉장한 노하우를 가진 학원에 다니는 거라고 확신하더군요. 

나중엔 선생님이 숙제를 안해오면 제 앞에서 맨 손으로 사과를 부시긴 했습니다. (여선생님이셨는데, 악력이 장난이 아니셨어요.) 



영어 작문도, 처음엔 ‘나는 이렇게 어려운 영어 책들도 다 술술 읽으니, 그대로 쓰면 되는 거 아닐까’ 라고 생각했던 저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쓰려니, 한 글자 쓰는 게 고역이었습니다. 

머리에 집어넣은 건 많았는데, SAT 단어까지 다 알고 있는데, 간단한 한 마디를 표현하는게 그렇게 막막할 수가 없었습니다. 

막상 완성한 영작문은 제 눈으로 봐도 조악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 때부터 다시 영단어집을 들고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사촌동생이 보는 수준의 쉬운 레벨이었지요. 

어머니는 놀라셔서, “어머 얘. 너 갑자기 여태까지 왜우던 거 다 까먹은거니?” 라고 동공을 흔들며 걱정하셨는데, 

저는 그 때, “아니. 머릿속에 넣는 거랑, 그 넣은 거를 꺼내서 잘 쓰는 건 다른 문제더라고 엄마. 이젠 이 단어들을 좀 쓰려고.” 라고 대답했습니다. 


달리기 실력은 책을 읽어서 느는 게 아니라, 직접 해봐야 늘죠.


그게 언어건 기술이건 지식이건, 잘 활용하는 법을 배우는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늘 “직접 활용해보는 것” 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유럽 교육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연습을 통한 배운 내용의 활용이라고 합니다. 

배워서 잘 활용하는 게 목적이니까요. 

엔트러프러너 교육에서도 감명받았던 부분은, 학생들이 직접 회사를 차려서 물건을 팔아보도록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창업이란 무엇이고 창업가의 마음가짐이 무엇인지 가장 잘 배우는 방법은, 직접 창업을 해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직접 해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선생님들의 역할은 ‘코치’ 혹은 ‘멘토’로 권한과 통제권이 줄어듭니다. 

선생님이 보기에 실수를 하고 있는 것 같아도, 나서서 바로잡는 일은 지양됩니다. 실패도 직접 겪어야 배우니까요. 


영어를 12년간 공부하며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왜 한국인들은 영어 말하기와 쓰기에 울렁증이 있는지, 그 답을 이제는 대다수가 압니다. 

영어를 실용하기 위해 배우는 것이 아닌 교양으로서 배워야 한다는 가치관, 그리고 누가 더 교양이 높은지 점수를 메겨 랭킹화하고, 이에 근거하여 사회적 자원을 배분하자는 논리는, 영어의 Output 보다는 Input 이 얼마나 많이 들어 있는지를 측정하는 교육으로 나타났고, 그 결과 우리는 영어로 말해보고 쓴 “Doing” 의 경험이 거의 전무합니다. 그러니 “Learn” 한 것도 없겠죠. 

성인이 되어서, 영어를 제대로 활용해보고 싶어서 배우려고 하면, 우선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좋은 내용을 많이 듣는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제 경험에 비춰보자면 맞지만 조금 틀린 부분도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영어에 대한 이해 자체가 아직 높지 않은 경우, 읽기와 듣기를 병행하지 않고 말하기와 쓰기만 하는 건 막막하고 어렵습니다. 

영어에 대한 이해가 이미 높은 경우도, 더 나은 문장을 쓰고, 더 나은 표현으로 말하려면 참고가 될 만한 내용을 읽고 들어서 input 을 풍부하게 해야 합니다. 

읽기와 듣기는 분명 중요하고, 그렇기에 위 문장은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사회에서 치명적으로 간과하고 있다는 건, 어쨌튼 영어로 잘 말하고 잘 쓰려면, 말하기와 쓰기를 계속 연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추가로 읽기와 듣기를 통한 input 을 참고하여, 말하기와 쓰기 실력을 향상시키는 거죠. 

우선 다름 사람이 말하는 걸 듣고, 다른 사람이 쓴 걸 읽어야 멋지게 말하고 쓰는 게 가능하다는 건 전형적인 주입식 정답형 교육의 사상과 맞닿아 있습니다. 

말하기를 잘하려면 말하기를 해야 하고, 쓰기를 잘하려면 쓰기를 해야하는 게 “Learn by doing” 의 기초 전제입니다. 

무언가를 잘 하는 법은 직접 해 보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해 놓은 것을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더 쉬운 길인 건 압니다. 저도 귀찮은 거 싫어해요….

그래도 언젠가 매끄럽게 말하고 쓸 날을 위해 계속 머릿속에 우겨 넣을 게 아니라, 지금부터, 롸잇 나우, 말하고 쓰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음 글에서는 갓 국제학부에 진학해서 영어 실력의 차이에 큰 충격을 받았던 제가, 영어를 진짜 잘 쓰기 위해 시도했던 갖가지 고군 분투를 공유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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