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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Jun 29. 2019

국제학부 영어분투기 2편

영자신문 동아리에서 코피 터지게 영어 다듬은 이야기

“우리 동아리에 오면 회식은 뷔페란다, 호호” 

갓 입학한 햇병아리들을 채어 가기 위한 동아리 선배들의 어프로치가 시작되었습니다. 

굶주리고 돈 없는 신입생이었던 저는 피자를 준다는 한 동아리 설명회에 쭐레쭐레 들어갔고, 

거기서 바로 위 문구에 낚여 버렸습니다. 

아아 뷔페라니…! 저 동아리는 아주 우아하고 돈 많은 즐거운 곳이 분명해…! 

여기서 우리는 물질주의에 의거한 성급한 판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뷔페는, 이유 없이 오지 않는 거십니다. 

그 동아리의 정체는 영자신문 동아리였습니다…. 

마침 영어가 콤플렉스였는데, 저기 가서 우아하게 갈고 닦겠어…! 란 마음가짐으로 입부 시험을 보러 가던 날의 저를 생각하면 아직도 안쓰럽네요.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제가 본 대학교 신문사는 보통 굉장히 독특한 성격을 띄고 있었습니다. 

우선 스스로를 ‘동아리’ 라는 설레고 말랑말랑한 단어로 정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학교의 이름을 달고, 평생 기록되는 글을 쓰는 자들이라는 자부심이 남달리 강했고, 

그렇기에 책임감과 프로 의식을 강조, 또 강조하며 이곳은 “회사” 라고 정의합니다. 

기사를 쓰는 것은 그러므로 “일” 이었고, 누구보다 진지한 태도와 책임감이 요구되었습니다. 

일례로 제가 있었던 때에는 매주 2회의 회의에, 무단 지각이나 결석은 절대 용서받지 못했고 (즉각 퇴부), 마감 기한을 어기는 것 또한 있어서는 안 될 실태로, 이는 벌점 사유에 해당했고, 벌점이 일정 기준을 넘기면 역시 퇴부당했습니다. 

지금은 조금씩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분위기도 굉장히 엄격해서, 기사 진행 상황을 체크하는 “오피스 아워”, 기사의 주제와 상세 내용에 대해 토론하는 “회의” 시간에는 모두 존댓말을 쓰고, 웃거나 떠드는 건 절대 용서되지 않았지요. 

처음에는 뭐 이런 무시무시한 데가 있지 싶었는데, 무서운 건 이것도 적응이 되더라고요. 


무엇보다 제일 악명 높았던 건, 완벽한 기사를 위한 눈물 나는 사투였습니다. 

어떤 글을 기획해볼 지, 2개의 후보안을 쓰는 프리-에디토리얼 기획안.

기획이 조금이라도 허접하면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눈물 쏙 빠지게 까이고 다시 써와야 했습니다. 

실제로 제 주위에서도 정말 많이 울었다지요….

선배들 모두에게 돌아가면서 까이고, 그 자리에서 울면서 회의에 참석한 동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호랑이 선배님들은 불쌍하다고 봐주는 일은 절대, 일절 없었죠. 

어떤 친구는 기획안을 세네번이나 다시 써와도 허접하다고 욕을 먹고, 멘탈이 나갔지만 

‘니 멘탈이 빠개지든 말든, 일은 해야지’ 정신으로 다섯번째에야 통과하고 터덜터덜 글을 쓰러 갔습니다. 


기획안이 통과되면, 어떤 내용으로 쓸지 글의 개요와 논지, 근거를 일목 요연하게 정리하여 다시 회의에 올립니다. 

여기서도 다시 폭풍과도 같은 비판이 기다립니다. 

저번에는 아이템의 매력도와 현실성을 까였다면, 이번에 까이는 것은 글의 논리와 흐름입니다. 

이 까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은 실례라고 여기고 자라온 이들에게, 이는 공포였지요. 

그런데 사람은 늘 익숙해진답니다. 후후 

익숙해지니, 흥미롭기까지 합니다. 

분명 그 사람은 심혈에 심혈을 기울여서 써온 글인데, 여럿의 시각으로 개선점을 찾다 보면, 늘 있었단 말이에요. 개선점이. 

집단 지성의 힘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집단 지성은 무서울 수 있단 것도 느꼈습니다. 

또, 익숙해지면 이제 논리로 무장한 워리어가 됩니다. 

내 소중한 베이비를 이렇게 개조당할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상대가 어떤 점을 지적해올지 시뮬레이션 한 후, 이에 맞는 반박 근거를 철저히 준비해서 받아 치는 거지요. 

처음 제 카운터 어택이 먹혔을 때는 얼마나 짜릿하던지요….


그렇게 글을 어떻게 쓸 지 합의가 되면, 이제야 본격적으로 취재를 하고 자료를 조사하며 글을 쓰는 과정에 들어가게 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건 알아서 완성된 글을 써오라고 하지 않고, 처음 쓴 글 (first draft) 와 이를 수정해서 다시 쓴 두 번째 글 (second draft) 는 마감 기한을 따로 주고, 꼭 지키도록 확인한다는 겁니다. 

수습일 때는 ‘시간을 더 주고 알아서 완성해오게 해주지’…라고 궁시렁 거렸는데 

막상 제가 스스로 글을 써보니, 이게 그립기까지 합니다. (이젠 졸업했으니 막 던져 본다.) 

철저하게 기획에 기획을 거듭하다 보면, 막상 직접 실행해야 할 ‘액션 모드’가 되었을 때, 주춤거리게 되더라고요. 

완벽주의가 저를 덮치고, 백지가 무서워집니다. 

그런데 마감 기한은 “일단 당장 쓰도록 해, 노예야!” 라면서 채찍질을 합니다. 

그러면 또 신기하게 완벽주의 장벽이 무너지고, 기획을 액션으로 옮기게 됩니다. 

자 그러면 한 두 번 고쳤으니 된 걸까요? 

노우노우….

저희 학교의 영자신문사는 직책이 수습기자-부기자-정기자-부장-국장, 5개가 있었는데 

부장님에게 OK 를 받을 때까지, 즉 ‘부장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다’ 의 상태가 될 때까지 무한 피드백과 수정이 고리가 반복됩니다. 

제 동기들과 저는 기본 7,8번은 피드백을 받고 고치길 반복했답니다….

그렇게 올라간 회심의 기사는, 다시 ‘국장님이 보시기에 참 좋았다’ 의 상태가 될 때까지 다시 똑 같은 순환고리에 오릅니다. 

저는 기본 3,4번의 피드백을 받고 고치길 반복했네요…. 

한 달에 한 번, 무슨 일이 있어도 영자신문을 출간해야 했기에, 이 기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감일까지 완성되어야 합니다. 물론 완벽한 품질로요.

그 결과, 이 모든 피드백을 거쳐 국장님의 입에서 “OK” 가 떨어지기 전까지, 학생 기자들은 철야로 밤을 새며 집에 가지 않습니다…. (못합니다.) 

저는 금요일에 들어가서 일요일 밤에 나온 적도 있네요. 지금은 죽어도 못할 일…. 

핏발이 서고 떡진 머리로 “이번에는…!” 하고 내는 기사가 어김 없이 빨간 줄이 쫙쫙 쳐서 돌아올 때는 저절로 이가 악물렸다지요. 

화장실에 가서 우는 동기들도 많았습니다.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울기보단 분노하는 타입이기에, 이만 벅벅 갈았죠. 

핫식스와 레드불은 저희의 동반자였고, 간이 침낭은 필수품이었죠. 

지금은 이런 관습은 없어졌다고 하니, 후배들의 정신 건강을 위해선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아하하 

그래 집에는 가야지 


그렇게 혹독하게 버티다 보니,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무섭고 싫었던 저희 국제학부의 영어 리포트 과제가, 이젠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단 걸요. 

우연한 기회에, 제가 고등학교 시절 토플 라이팅을 준비하며 썼던 작문과, 당시 대학생 때 쓴 기사를 비교해 봤는데, 엄청난 수준 차이가 보이더군요. 

고등학교 때는 

“In the 21th century, men, who were represented as being strong and tough in the past, became more feminine.” 

로 표현하고 말았을 내용을, 대학교 때는 아래처럼 표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In the 21th century, machos were forced to descend from their status of the epitomy of masculinity, conceding the crown to metrosexuals.” 

이걸 보니, 스스로 영자신문사라는 호랑이굴에 들어간 제 1학년 때의 선택이 (뷔페에 홀린 멍청함은 논외입니다.) 나름의 의미가 있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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