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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탐구토끼 Dec 03. 2019

토익만점자들도 영어고민이 있어?

응 엄청 많아. 10개만 대볼게.

영원히 고통 받는 영어 고급자들


고등학교 때 조금은 아쉬웠던 점수인 토플 114점을 받고, 국제학부에 입학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제가 영어고급자인 걸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이 정도 점수면 영어를 좀 한다 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쁘진 않은 점수였고, 영어에 경기를 일으키던 많은 친구들과 비교했을 땐, 내가 잘하는 게 있다는 멋진 증표가 되어주었습니다.

영어”를” 잘 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잘 해야 하는 삶에 부딪히기 전까진요….

제겐 그게 국제학부라는 조금은 특수한 상황이었고, 누군가에겐 해외 유학, 새로 들어간 회사, 출장 등 형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토익 만점으로 대표되는 높은 영어 점수를 딸 정도로 영어를 잘 배웠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진짜 고급 단계에 들어서며 마주치게 되는 은밀한 괴로움을 아는 사람은 압니다.   


그 첫번째. 쓸데 없이 심미안이 발달해서, 내 부족함이 더 잘 보인다.

뭐든 처음 배울 때는, 내가 잘하고 있던 못하고 있던, 그저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즐겁습니다.

하지만 레벨이 쌓이면서 심미안이란게 발달을 하게 됩니다.

베스트 셀러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의 작가 정문정 작가님은, 심미안은 실력보다 훨씬 빠르게 성장하고, 이 간격을 견디는 게 실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말대로, 주옥 같은 영어를 보고, 주옥 같다고 느낄 심미안이 있기에, 더욱 내 영어는 진흙 같아 보여 어디 쓰레기통에 쑤셔 넣고 싶을 정도입니다.

남들은 그래도 그런 심미안이 있는 게 어디냐고 하지만, 그 덕에 내 진흙이 너무나 고해상도로 보여서 나는 괴롭기 그지 없습니다.

내 진흙이 너무 눈부셔 엉엉


두 번째. 난 할 말 생각하고 있었는데… 토론이 끝났다….


그간 피땀눈물을 흘려 고이고이 저장해 둔 영단어와 문장 표현은, 머릿속에서 “배열” 하는 과정을 거쳐야 입 밖으로, 펜으로 나옵니다.

영어 토론 시간.

가만히 있다가 나도 한 마디는 해야겠다 싶어, 머릿속으로 할 말을 생각하고, 영어로 변환해서 배열해서 말하려고 했더니, “어 그 얘기 아까 끝났어.”

결국 강제 벙어리 행….

그 와중에 무슨 말이 오가는 지 대충은 알아들어서 더 슬픕니다.

나도 좋은 말 할 수 있는데….


 

세 번째. 주위 사람들의 “너는 당연히 영어 안 어렵지?” 라는 시선.


아니 어려워.


네 번째. “너라면 이런 건 쉽겠지?”


아니 안 쉬워.

그 번역 건 내려놔.

내려 놓으라고.


다섯 번째. 난 어디로 가야 하나


그래, 영어가 부족하면 여태껏 그랬던 것처럼, 공부를 하면 되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세상 어느 분야에서든 초급자는 많고, 중급자도 꽤 많은데, 고급자는 매우 적습니다.

고로, 돈이 안되기에 마땅한 학원이나 스터디가 없습니다. 전화 영어는 했던 말의 반복….

결국 오늘도 미 알론….


외롭다...


여섯 번째. 있어도 비싸다.


그리고 나는 돈이 없다.


일곱 번째. 이렇게 된거, 비싸도 통번역학원이라도 가서 독하게 공부할 거임!


왜 “영어” 학원이 아니라, “통번역” 학원인지 처절하게 깨닫게 됩니다.


여덟 번째. 고통 받는 내향인


거금을 주고 원어민 프리토킹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자유롭게 아무 주제에 대해서나 허물 없이, 즐겁게 이야기 해 보자고 합니다.

그건 한국어로도 힘든 일입니다.

내향인은 조용히 체념합니다.


아홉 번째. 같이 고통 받는 외향인


그 옆에 있던 외향인도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즐겁게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영어로 하려니 답답해서, 결국 했던 얘기만 또 합니다.   

난 이런 재미없는 닝겐이 아닌데…!


열 번째. 향상 속도가 매우 느리다.


초급에서 중급으로 실력을 향상시키는 속도는, 굉장히 빠릅니다.

모르는 것을 아는 것으로 변환시키면 되기에, 영단어가 어느 정도 차면 적당한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고급 레벨에서 실력은 속터지는 속도로 향상됩니다. 가성비가 안 좋아요. 결국 성질이 매우 나빠져 한국어의 우수성을 찬양하며 영어를 패대기칩니다.


그리고 다시 쭈굴쭈굴 영어를 집어들고, 영원한 고통의 굴레에….


음, 너무 암울한 면만 써서, 다음 글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왜 쭈굴거리며 고오급을 향한 여정을 계속해야 하는지, 영고자 (영원히 고통받는 영어 고급자)가 되면 좋은 점에 대해 써보겠습니다.




https://brunch.co.kr/@micamica19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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