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날의 추억
어쩐지 어젯밤 달이 밝다 했다. 백중이었어!
음력 7월 보름, 일 년 중 밀물 수위가 가장 높다는 백중에 머리를 감으면 아이들은 허물이 안 생기고, 잠수병에 신경통을 달고 살던 어른들도 온갖 병이 사라진다며 물놀이를 했었다. 그 날만은 밤에도 아이들은 물놀이를 할 수 있었고, 어른들은 수놀음을 같이 하는 접(接)원들끼리 말이나 닭을 잡고 무더위를 식혔다.
해마다 백중 즈음에 우리 동네 팽나무 아래엔 입심 좋은 ‘뻥쟁이’ 남자가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뻥튀기를 생업으로 하던 그는 자신을 곡물증대업자라 뻥을 쳤는데, 킹카는 아닐지라도 '뻥' 하나만큼은 킹카도 울고 갈만큼 기가 막혔다.
그가 뻥을 칠 때마다 수령 백 년도 더 된 팽나무 아래에서 구슬치기하던 녀석들은 쪼르르 달려들어 때가 잔뜩 낀 손을 내밀곤 했다. 뻥튀기 장수가 맛보기로 나눠 준 게 성이 차지 않은 녀석들은 잠시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뭔가 한 보따리씩 뻥튀기 기계 앞에 던져 놓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자는 얼마인가 요구했고, 돈이 없는 경우엔 아이들이 갖고 온 보따리에서 몇 움큼의 곡물을 덜어내어 자신의 보따리에 옮겨 담았다.
동네 꼬마들이 가져온 보따리엔 옥수수가 들어있기도 했고, 보리나 쌀이 들어있기도 했다. 남자는 그것들을 뚜껑을 꼭꼭 닫은 검은 솥통에 넣고 돌리고 또 돌렸다. 그렇게 그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무엇을 집어넣었느냐에 따라 달랐다. 옥수수는 팝콘이 울고 갈 정도로 달달했고, 보리는 조리퐁에 비교가 안될 만큼 고소했으며, 쌀은 솜사탕에 버금갈 만큼 살살 녹았다.
여름마다 장이 서듯 팽나무 아래를 찾아와 떼돈 아닌 때돈을 벌었던 곡물 증대업자는 번듯한 가게나 공장을 차렸는지 모르겠다.
요즘 뻥튀기는 아이들 가슴을 뛰게 하지도, 사람을 모으지도 못하고, 맛도 따라가지를 못한다.
그래서 추억!
"뻥이오!"
남자는 뻥을 치기 전에
길게 내빼는 소리로
아이들에게 긴장을 요구했다
잠시 후 귀를 막고
총기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저마다 잔뜩 때 낀 손을 내밀면
의기양양해진 남자는 줄을 설 것을 주문하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딱총놀이도
구슬치기도
아이들 관심을 벗어났다
침을 꼴깍 삼키고
숨을 죽이고
총총한 눈으로
남자의 손짓 하나 말 한마디에 집중했다
그 정성이면
박사도 몇 개는 문제없을 거라는
어른들의 핀잔은 귓전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옥수수는 달콤했고
보리는 고소했고
쌀은 살살 녹았다
이제 그 맛은 추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