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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uman diary Nov 06. 2019

어디에서 살 것인가

1부. 아파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

"별빛이 흐르는 다리를 건너

바람 부는 갈대 숲을 지나

언제나 나를 언제나 나를

기다리던 너의 아파트

(중략)

오늘도 바보처럼 미련 때문에

다시 또 찾아왔지만

아무도 없는 아무도 없는

쓸쓸한 너의 아파트"


1982년 가수 윤수일이 불렀던 '아파트'는 다리를 건너 갈대 숲을 지나야 만날 수 있는 곳이었다. 다시 찾아 온 아파트엔 인적이 드물고 쓸쓸해 보이기 까지 했다. 그저 흥겹고 즐거운 노래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사를 살펴보니 당시 아파트가 그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는 사건이 있었다. 보통 김신조 사건이라 불린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김신조 사건으로 북한군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남침을 할 수 있고, 한국전쟁때 한강대교가 폭파되면서 서울 시민들의 발이 묶였던 기억이 교차되었던 것일까? 이후 70-80년대 늘어나는 서울 인구를 위한 강남개발이 본격화 되면서 아파트는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게 되었다. 오랫동안 강북을 터전으로 살아왔던 이들에게 강남의 아파트 단지는 멀고 볼품없는 갈대숲을 지나야만 갈 수 있고 인적이 드문 곳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파트는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을까? 건축이든 도시든 관련 분야를 전공한 이들뿐만 아니라 누구나 아파트하면 성냥갑처럼 모두 똑같고 터무늬(땅을 딛고 사는 주택은 땅에 무늬가 생긴다)가 없는 닭장 같은 주거 유형이라 생각할 것이다. 뭐 그렇게 생각하는게 틀린 것은 아니다. 최대한 빠르고 경제적으로 지어야 했고 단지설계에 대한 개념 조차 미비할 때였으니 그럴만도 하다.

아파트공화국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문제라 하지 말고 왜 그랬는지를 보자.

그렇다면 아파트는 우리에게 나쁜 것인가? 나는 32년만에 처음 아파트에 살게 되었고 아직도 살고 있다. 그 전까지는 단독주택, 빌라, 근생 등에만 살았는데 별다른 불편없이 잘 살아왔다. 오히려 아파트에 살면 인간적인 감수성은 사라지고 집에 대한 애착도 적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살아 본 아파트는 무엇보다 편리했다. 쓰레기는 지정된 장소에 버리면 되고 경비원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순찰하고 무엇보다 숨어 있는 공간이 거의 없기에 범죄 발생에 대한 걱정도 덜하다. 아파트에선 이웃 조차 잘 모르고 지낸다는 선입견과 달리 옆집, 윗집과 교류하고 아이들의 친구 부모가 같은 단지에 살면 인사하며 지내기도 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아파트에서 가장 문제라고 여기는 점은 아마도 층간 소음 때문에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지 못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를 나는 1층에 입주하면서 그냥 날려버렸다. 1층에 살면 아파트라 하더라도 단독주택과 같은 기분이다. 특히 노년층에게 놀이터가 보이는 1층은 외로움을 잊기에 더 없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가 단독주택보다 좋다는 식의 예찬론이 아니다. 아파트이든 단독주택이든 어디에 살고 어떤 방식으로 사느냐에 따라서 좋고 나쁨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아파트라고 해서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거다. 요즘 아이들에게 집을 그려보라고 하면 내가 어릴적과는 달리 아파트를 그리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어른들의 눈에서 보면 그게 무척 씁씁해 보일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집은 아파트라고 생각하는구나. 안탑깝구나....'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파트는 요즘 아이들의 눈에 고향과도 같다. 오히려 단독주택과 골목길이 많은 곳은 이 아이들에게 낯선 즐거움을 주고 아파트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준다. 어른의 눈이 아니라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곳에서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계단을 오르 내리며 거실에서 중정에 있는 친구를 부르며 예전과 방식만 다를 뿐 아이들에게 아파트는 그 자체로 마을이고 고향이다.


감성팔이 같은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도시 계획적인 관점에서 아파트를 생각해볼까?

도시 계획적으로 아파트는 모두 성냥갑처럼 똑같은 존재라 문제가 많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요즘엔 다양한 형태가 조합된 아파트를 지으라며 별도의 지침을 마련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고층의 아파트가 도시 경관을 망친다면서 층수를 제한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30층 높은 아파트가 수평으로 늘어선 형태를 가지는 부작용이 생기기도 한다. 그런데 아파트가 단지 안에서 모두 제각각이라면 과연 그게 좋은 도시 경관을 만들 수 있을까? 독특하고 멋진 아파트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이유는 다른 주변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의 마천루는 그 자체로 아름답다. 왜 그들은 멋진 스카이라인을 가졌는지 본질을 봐야 한다.

그렇다면 아파트는 어떤 모습으로 가야할까? 도시적인 관점에서 아파트를 지침으로 일괄적인 규제를 하기 보다는 도시 계획적 관점에서 디자인 혹은 형태의 특화가 필요한 부분을 선별적으로 지정해 줄 필요가 있다. 무조건 높은 건물은 경관을 해친다고 해야 할까? 뉴욕, 홍콩처럼 멋진 스카이라인을 보기 위해 일부러 여행을 떠나지 않던가? 이 역시 일괄적인 규제의 적용이 낳은 폐해일 것이다. 그래서 규제는 더욱 디테일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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