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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술적 변호사 Apr 01. 2020

개념미술과 저작권법, 멀고도 어색한 사이

아트로 칼럼 ②


저작권법상의 아이디어/표현 이분법


저작권법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아이디어와 표현을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인간의 사상 또는 감정을 표현한 창작물’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잘 읽어보면 ‘아이디어’가 아닌 그것이 실현된 ‘표현’ 자체만을 보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 사상, 감정과 같은 아이디어의 영역을 보호하지 않고 ‘표현’이라는 결과물을 보호하는 이유는 특정한 아이디어를 일부만이 독점하지 않도록 하고자 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고안해 낸 사상과 감정, 아이디어가 아무리 독창적이라고 해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무궁무진할 수 있다. 만일 최초로 아이디어를 고안해 낸 사람에게만 그 아이디어를 표현할 수 있는 독점권을 부여한다면, 그로 인해 생겨날 무궁무진한 결과물을 우리는 향유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요즘 대중에게 가장 흔히 소비되는 영상물을 예로 들어보자.


유투브에 들어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먹방 ASMR 콘텐츠는 누군가의 아이디어에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음식을 먹는 장면과 그 소리를 영상에 담아본다’는 아이디어를 창작적인 표현을 통해 실현하였고, 그 영상이 대중들의 관심을 얻게 되자 많은 영상창작자들이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만일 저작권법이 표현만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보호한다면, 최초의 창작자만이 위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따라서 다른 영상제작자가 ASMR 영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에 대한 이용 허락을 얻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저작권법은 표현의 결과물만을 저작물로써 보호하고 있다. 위의 예시에서라면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되는 것은 음식 먹는 소리를 전달한다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영상에 실질적으로 표현된 구도, 색감, 출연자의 대사, 표현의 배열, 순서, 규칙, 특징 등에서 나타나는 독창적인 표현일 것이다. (대법원 2017.11.9. 선고 2014다49180 판결 참조)



저작권법의 영역을 벗어난 개념미술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저작권법은 관념이 아닌 ‘표현’을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을 보면 예술행위의 결과가 반드시 작품 자체에만 머물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현대미술은 예술에 한계를 두는 것을 포기하고 ‘물질’로부터 ‘개념’이라는 형이상학적인 세계로 부단히 넘어오고 있다.


고대에는 대상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자를 최고의 예술가로 보았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 근대에 이르러서야 예술가들은 작품에 관념을 적극적으로 집어넣었다. 일정한 공식을 따라야만 찬사를 받던 예술작품이 이제는 단순한 감상의 대상에서 벗어나 개념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1866년 귀스타프 쿠르베는 여성의 성기가 화면 전체에 가득 차도록 그린 그림에 <세상의 기원>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 후 50년이 지나 본격적으로 ‘개념’이 주목 받게 된 사건이 등장했다.


프랑스 작가 마르셸 뒤샹이 뉴욕의 어느 가게에서 구입한 소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뉴욕 독립예술가협회 전시에 출품한 것이다. 여기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소변기’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상품이었으므로, 뒤샹이 한 예술행위는 그저 소변기를 구입하고 그것에 개념을 부여한 뒤 전시한 것뿐이었다.


‘샘’은 감상하는 이로 하여금 사물을 바라보는 경직된 관점을 뒤집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므로, 우리는 뒤샹이 매개체로 삼은 소변기(예술의 결과물) 자체보다도 개념에 집중하여 다양한 질문을 던져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


이렇게 표현보다 개념을 내세우려는 예술가들의 시도는 표현의 자유가 넓게 인정되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활발해졌다.

       

(다음 칼럼에서 계속됩니다.)


https://blog.naver.com/naverlaw/221802993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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