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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작가 Oct 23. 2019

프리랜서 작가, 사람을 만나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그리고 만난 사람들을 그리고자 한다.

나는 프리랜서 에디터이자 작가다. 

2017년 12월을 꽉 채우고 퇴사 후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것도 네 번째 퇴사. 

따박따박 월급이 나오던 안정적인 생활을 뒤로 한 채, 굳이 불안정한 생활을 택한 나는 그만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아 이 글을 기획하게 되었다. 앞으로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그리고 만난 사람들을 그리고자 한다. 물론, 별 내용이 없을 수도 있다.




++ 프리랜서의 삶, 그리고 사람들

이날 제주공항에는 일과 여행이 모두 있었다.


벽 3시 45분, 알람이 울렸다. 

알람은 보통 두 종류로 나뉜다. 일어나야 하는 시간과 일어나야‘만’ 하는 시간. 그 시간은 전자의 시간이었고 잠결에도 알람의 순서를 기가 막히게 구분해낸다. 지금 나에겐 조금 더 하루의 시작을 미룰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노라고. 그리고 15분 뒤, 알람이 다시 울렸다. 첫 번째 알람을 내 손으로 끄고 잠을 청했음에도 두 번째 알람이 울릴 때는 공포영화라도 본 듯 화들짝 일어난다. (헉 이게 뭐야!)


그렇게 마지못해 일어난 시각 새벽 4시.

오늘은 제주로 취재를 가는 날이다. 작년 12월부터 예비 신혼부부들에게 웨딩 사진작가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서비스에 그들의 인터뷰를 기고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제주로 취재를 가게 되었다. 낮 1시에 사진작가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해놓았기 때문에 오전 11시에는 제주에 도착해야 했다. 아침 9시 정도의 비행기를 희망했으나 이게 웬걸. 내가 탈 제주행 비행기의 출발 시간은 이른 아침 6시 50분. 취재 날짜가 급하게 잡히는 바람에 아침 비행기는 모두 동난 탓에 난데없이 새벽부터 부지런한 일꾼이 되었다.


사실 지난밤(이랄 것도 없이 두어 시간뿐이었지만) 잠을 깊게 들지 못했다. 얼마 전 출간한 책 <내 마음 어딘가가 부서졌다>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인 MBC <김이나의 밤 편지>에 나온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첫 책이었고, 라디오에서 DJ가 읽어주는 것 또한 처음인지라 본방으로 듣고 싶었다. 다음 날 녹음된 것으로 들어도 무방했건만, 내가 낳은 첫 번째 자식이었기에 아무래도 애정이 각별했다. 방송이 끝난다고 바로 잠들 수 있나? 요즘은 라디오 어플에서 방송을 들으며 실시간으로 댓글로 반응을 남기기 때문에 그것들 또한 살펴야 했다. 도저히 잠들 수 없는 밤이었다. 그렇게 출장 전 나에게 주어진 밤은 1시간 반이 전부였다.


취재지로 향하는 길은 분명 여행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제주 일정 3박 4일. 첫 번째 취재지는 애월이었다. 

사람 많던 육지를 떠나 한적한 제주에 오니 마음이 편안했다. 비록 캐리어를 끌고 두 손 가득 무거웠지만,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고 발걸음이 가벼운 게 분명 나는 즐거웠다. 쪽잠을 자서 비몽사몽 몸이 무거웠지만, 그럼에도 즐거웠다. 이것은 일인가, 여행인가. 그 어디쯤 사이에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었다. 아무렴 어떠한가.


제주 시골 동네에는 버스가 듬성듬성 왔다. 바람은 가을이지만 볕은 아직 여름이었기에 정류장에 몸을 숨겨도 뜨거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할머니 두 분이 차례로 오셨고 대화를 나누셨다. 그것도 나를 사이에 두고 앉아서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 방언으로 말이다. 처음엔 두 분이 서로 아는 분인 줄 알았더랬다. 얼마간의 (종잡을 수 없는) 대화를 듣고서야 친분이 없는 관계임을 알았다. 그런데 어쩜 이리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걸까.


문득 언젠가부터 생전 초면의 사람에게 말을 자연스레 걸던 내가 떠올랐다. 마트 시식코너에서 만난 아주머니와도 지하철역에서 지도 보던 아저씨와도, 결혼식장에서 만난 다른 예식의 하객들 하고도. 언제부터 낯짝이 이리도 두꺼워졌는지... 수줍음 많던 어린 날의 내가(진짜다) 어느샌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의 얼굴에는 솜털 대신 잡티가 수북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세상의 두려움이 없어지는 과정은 아닐까. 온갖 ‘낯선’ 모든 것들과 안녕을 고하고 그 무엇을 만나도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분명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은 아닐 테고,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인 내공들이 만들어낸 굳은살 들이겠지. 그게 나의 낯짝을 이리도 두껍게 만들었나 보다.


++ 인터뷰, 몰입하기 좋은 곳 ; Cafe Morip 

조용한 공간을 지향하기에 무언가에 몰입하기 좋은 장소, 모립이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긴장되고도 설레는 일이다. 만나기 전 상대에 대해 충분한 자료조사를 한 대도 한계가 따르기 마련. 한 사람을 온라인에 몇 흩어진 자료들을 그러모아 그 사람을 유추한대도 명확히 알기는 애초부터 무리니까. 다만 처음 만났을 때 너무 낯설지 않도록, 발작을 일으키지 않을 정도로 물을 몸에 적셔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그리고 조사한 자료들은 앞으로 상대방이 뱉을 말들의 뼈대가 되어준다.

인터뷰하면서 가장 힘들 시간은 질문과 대답, 그리고 다시 질문으로 이어지지 않을 그 시간, 침묵이다. 다음에 이을 말을 찾지 못해 모두 방황하는 찰나지만 영겁과도 같은 시간. 이때 필요한 게 순발력이다. 빠르게 다음 질문을 찾을 때까지 그 침묵을 상쇄시켜줄 이음새를 찾아내 대화를 이끌어낸다. 운이 좋으면 이음새가 다음 소재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결론은, 인터뷰하는 시간 내내 긴장을 놓을 수 없다는 뜻이다. 앞에 앉은 이에게 집중과 몰입. 그것만이 좋은 인터뷰를 이끌어낼 수 있는 기본 조건이다.


물론 아무리 집중하고 몰입해도 안 되는 상대도 있다. 막연하고 두루뭉술한 대답, 누구도 답할 수 있는 별로 매력 없는 답변, 혹은 단답. 막다른 골목길을 만나 뒤돌아 다른 골목으로 돌아갔지만 또다시 막혀버린 그런 느낌.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시간과 공을 더 들여 같이 고민해보는 수밖에. 이럴 땐 나도 같이 인터뷰 당하는 느낌이지만, 어쩔 수 없다. 모두가 ‘나’란 사람에 대해 매사 생각을 떠안고 사는 건 아닐 테니 어려울 수도 있는 거니까.


인터뷰가 끝날 무렵이면, 단 몇 시간뿐이지만 농도 짙은 대화를 나눈 덕에 꽤 가까운 사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늘 헤어짐이 어색하고도 아쉽다. 다시 처음 만난 그때로 돌아가 뻣뻣하게 인사를 나눔으로써 그 시간을 갈무리한다. 애써 붙여놓은 관계를 후다닥 찢는 느낌. 불씨가 막 타오르려 하는 장작에 찬물을 팍 끼얹는 느낌. 그게 인터뷰이와의 이별이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 때마다 여행하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렇게 기나긴 하루의 마무리를 내일 취재를 준비하는 것으로 오늘을 맺는다.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노닥거리는데 한 사람이 내게 묻는다. 내일 한라산에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방금 안면을 처음 텄는데 산을 같이 오르자고 하는 것도 신기한데,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런 분위기가 당연하다는 듯 놀란 내색도 않고 거절하는 나도 웃기다.

아, 같이 가고 싶은데 전 내일 일하러 가요 :)



그렇게 제주 출장의 하루가 저문다.

내일도 부지런히 뛰어야 하기에 오늘 밤도 짧을 예정이다.


@YOGURTRA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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