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별 Aug 13. 2024

I Hate You

부치지 않을 편지

 소설의 첫 부분을 썼습니다만 제가 쓰고 싶은 글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편지를 씁니다. 저는 요즘 밀려드는 관계들에 지쳐있습니다. 원래부터 있었던 관계들이 대부분이고, 새로 시작되는 관계들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몇 되지 않는 관계성에 있어서조차 에너지를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오늘은 퇴근 후에 집에 돌아와 배달 음식을 주문했지만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겼습니다. 종일 초등학생들과 입씨름을 하고, 질문 세례를 받고, 닥달하고 재촉하고 실랑이를 하고 웃어 주고 하다 보면 집에 돌아와서는 기운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퇴근하고 돌아와 혼자 유튜브를 보면서 배달 음식을 먹는 시간만큼은 행복했었는데 요즘 들어 그런 재미마저 느껴지지 않습니다. 소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참 오래만입니다.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로 끼니를 대신하고, 그렇게 매일이 쌓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나요? 아니, 어떻게 지냈나요. 나는 당신이 없는 긴 시간동안 참 편했던 것 같습니다. 거의 매일 외로웠지만, 그만큼 홀가분하고 가벼웠습니다. 그런 스스로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나쁘지 않다고도 생각했으니까요. 오늘 당신을 맞닥뜨렸을 때, 나도 모르게 놀라서 "아이씨, 깜짝이야." 라고 작은 소리로 말하며 황급히 당신 곁을 지나갔을 때 당신은 기분이 어땠습니까. 나는 당신이 전혀 반갑지 않았습니다. 내 앞에 당신이 다시 나타났을 때, 혼자서 몇 번이고 다짐했으니까요. 당신에게 속지 말자. 당신을 아는 체 하지 말자. 다시 내 삶이 진창으로 굴러가게 두지 말자고요.  그냥 나를 좀 내버려 두라고 소리 지르고 싶습니다. 나는 이제 당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당신과 만나면서 행복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내 주위를 맴돌고 내 시선을 끄는 지금의 방법도 나는 그다지 설레거나 좋지 않습니다. 불편하고 어색하고 싫습니다. 언젠가 내게 물었죠. 내가 당신을 믿지 않는 거 아니냐고요. 맞아요, 나는 당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당신 역시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사랑에는 희생이 필요한 거라고요. 당신은 나를 위해 무엇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당신을 위해 희생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고 싶지 않기 때문인데 그건 당신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당신과 함께 보냈던 여러 번의 밤들을 기억합니다. 불행하게도 당신과의 기억은 그게 전부더군요. 몸을 섞고 아침이 되면 황급히 헤어지던 시간들 말입니다. 당신과의 밤은,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들을 손질하고 정성스럽게 요리해서 따뜻한 한 끼 식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마치 외로움과 허기를 동시에 급하게 해치워야 하기에 간편하고 손쉽게 데워 먹는 인스턴트 식품으로 때우는 시간 같았습니다. 몸을 섞던 밤들 뿐만이 그랬을까요, 당신과 만나던 매 순간이 내게는 그렇게 느껴질 뿐이었습니다. 답답한 체기. 질 나쁜 음식을 억지로 먹다가 얹혀버린 기분이 들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손가락을 따면 흐르는 검은 피를 보는 게 두려워 나는 모른 척 했을 뿐입니다.  당신이 아니라도, 나는 이미 많이 지쳐 있습니다. 나와 다시 뭔가를 시작하려 생각하지 말고, 나와 다시 어떻게 연결되어 보려고 애쓰지 않는 편이 당신에게도 시간 낭비가 안 될 것이라고 알리고 싶습니다. 그만 두라고 말입니다.  나를 우습게 보지 말아요. 당신에 나에게 예의를 지키고 싶다면 말입니다. 예의,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인간으로서의 존중과 예의입니다. 한때 내가 당신에게 그토록 바랐던 것이었으나 결국 얻지 못했던 것은 사랑이나 이해가 아니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잠들기 전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