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광복절이라고 합니다. 머리를 염색하고 스타벅스에 갔습니다. 국경일이고 휴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제법 있었고, 매장 직원들은 아주 바빠 보였습니다. 주문한 음식을 받아왔지만 포크와 나이프는 설거지가 제대로 안 된 듯 치즈가 굳은 채 묻어 있었습니다. 바꿔달라고 하려다가 누군가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서 손으로 들고 먹었습니다. 먹기는 오히려 편했습니다. 나이프로 자르다 보면 야채와 빵과 햄과 소스가 다 분리되어 흩어져버려서 먹다가 흘리기 일쑤이기 때문입니다.
이틀 전에는 최은영 작가의 단편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었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제 마음의 문을 두드리더니 뒤쪽에 배치된 <답신>과 <파종> 두 이야기는 마음의 둑을 터뜨렸습니다. 결국 저는 울고 말았습니다. 조르르 운 게 아니라 펑펑 쏟았습니다. 소설을 읽다가 많이 울었던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울면서도 작가가 쓴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답신>은 수감 중인 화자가 스물셋이 되었을 조카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이야기입니다. 화자가 어릴 때 친언니와 같이 자랐는데 자매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대로 보호받거나 사랑받지 못한 채 서로 의지하며 자랐습니다. 언니가 대학을 포기하고 백화점에서 판매직으로 일을 하며 고단하게 번 돈으로 화자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생 때부터 담임과 '교제' 하던 언니는 임신을 해서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자상하고 다정하지 않았습니다. 폭력적이고 강압적이고 치졸한 인간이었죠. 어느 날, 언니 집에 방문했던 화자는 형부가 언니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해 형부를 폭행하고 재판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랜 기간 수감생활을 하면서 조카에게 편지를 쓰고 찢어버리기를 반복합니다.
아마 이야기를 읽다 보면 행간에 드러난 의미, 소설의 호흡, 문체를 통해 당신도 저처럼 괴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저는 말할 수 없이 복잡하고 무거운 감정을 느끼며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음껏 슬펐습니다.
하지만 <답신>의 바로 뒤에 오는 <파종>은 더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파종>을 읽으며 오열했던 것입니다. 혼자 먹고 혼자 자고 혼자 생활하는 투룸에서 평수에 비해 큰 책상 앞에 앉아 벽을 보며 끅끅 울었습니다. 혼자 울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외롭다는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이었는데 다 읽고 알라딘에서 한 권을 구매했습니다. 읽지 않은 사람에게 꼭 선물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도 소설을 읽으며 저와 비슷한 마음으로 울게 되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으며 저는 여럿에게 고마움이 생겼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고심해서 진땀 흘리며 썼을 최은영 작가와, 작가가 쓴 이야기를 읽으며 많이 울 수 있었던 저 자신, 그리고 저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을 친구, 이 책을 읽은 사람들과 앞으로 읽을 이들. 이렇게 모두가 이 책 한 권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모종의 힘을 받았습니다. 왠지 좀 거창하고 신뢰는 가지 않는 예감입니다만 그렇습니다.
웃기는 것과 울리는 것.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해진다.'(최은영, <밝은 밤> 중에서)는 말.
저는 이런 것들이 왜 좋을까요.
여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희망이 보임과 동시에 서늘한 절망의 기운을 예감합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게 지내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