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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용석 Oct 19. 2023

8화 - 이곳은 AI로부터의 피난처?

이곳은 철저한 움직임의 세계

안녕하세요.

30 대 후반, 9년 가까이 일한 회사를 퇴사한 후 작년 8월에 평택에 있는 삼성 고덕 반도체 현장에서 숙식 노가다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여기서 있었던 일들과 깨달음, 의미 있는 일들을 온라인 커뮤니티 ‘클리앙’에 연재하기 시작했습니다. 글들은 매번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어 베스트 게시판으로 이동했고 많은 응원과 공감의 댓글이 있었습니다.


현재도 지속적으로 연재중이고 이 글에 대한 반응(댓글)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게시글 아래에 댓글이 있으며 브런치 댓글도 언제나 환영입니다^^)

https://m.clien.net/service/board/use/17932355



요즘 인공지능으로 온통 난리입니다.

저도 글을 쓸 때 일러스트는 가끔 AI로 만들어서 올리는데 최근 작품들을 보면 넋이 나갈만큼 완성도나 접근방법이 쉬워졌습니다.


심지어 지인이 chatGPT로 설교문을 만들어서 보여주었는데 처음에는 대형교회 목사님의 설교와 너무나 비슷해서 놀랬습니다. 그 외에 오로지 chatGPT로만 작성한 책이 나오는 등 인간의 창의성의 원천이라 생각했던 영역을 AI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출처 : 노컷뉴스 2016년도 기사)


어릴 적에도 인공지능이 사람의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견해는 계속 있어왔습니다. 위 도표를 보면 누구나 예술적인 감각 쪽은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중장비, 정밀 기계의 발달로 누구나 가장 단순한 노동을 하는 사람이 제일 먼저 로봇에 대체될 것이라는 예상을 했습니다.  


23년 9월 고덕에서 한창 땡볕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즈음 인공지능으로 그림을 그려주는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AI가 공개되었습니다. 미술 선생님으로 있다가 갑자기 전혀 다른 세계에서 일하고 있던 저에게 그림 그리기는 사치였습니다. 일단 매일 12시간씩 일하면서 퇴근하고 나면 저에게 남는 시간은 고작 1시간에 불과했으니까요.  


하지만 미드 저니를 통해 다양한 주제를 입력하면서 나오는 결과물에 엄청난 소름을 느꼈습니다. 뉴스에서는 AI의 그림이 대회 1등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시험 삼아 기관총을 든 소녀라는 다소 이상한 주제에 10초도 채 안되어 여러 장의 예시를 보여주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한동안 고민해야 나올 법한 구도와 색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너무나 짧은 시간에 나왔습니다.


한 때 디자인을 전공하고 미술에 몸 담았던 때를 생각하면서 ‘그림이란 무엇인가’ ‘창의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그려진다고? 사람보다 더 창의적인 거 같은데?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 계속했습니다.  


과거에는 누구라도 포크레인이 인부 20명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고 거대한 기중기는 수십, 수백 명 인부의 능력을 뛰어넘는 것을 보면서 육체노동이 기계들의 제일 첫 먹잇감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 창의성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림이나 글쓰기는 최후의 도피처라 생각했습니다.


현실은 그림은 물론, 기사 쓰기, 법률 해석, 비즈니스 메일, 심지어 설교문까지 거의 인간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 제일 먼저 AI의 첫 제물이 되었습니다. 온 세상이 인공지능으로 난리인데 고덕은 어떨까요?


매우 조용합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출퇴근하고 중장비들은 먼지를 거친 엔진음을 내며 바삐 돌아가고 있습니다. 무엇 하나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거대한 기계를 조종하는 것도 사람이고 전선 하나 연결하는 것도 단말인증을 받은 사람의 세세한 손길로 만들어집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프리퀄인 ‘애니 매트릭스’에는 로봇의 반란 이야기가 나옵니다.  피라미드와 같은 거대한 공사에서는 사람 대신 로봇들이 일을 하고 사람은 오직 문화예술만을 향유하는 걸로 나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현장에서는 거대한 배관들 사이로 사람들이 용접기와 산소통을 운반하며 작업을 해야 합니다. 여러 중장비가 있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을 작업 위치까지 옮겨주거나 자재들을 옮겨주는 역할을 합니다. 대체 인공지능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처음 ‘미드 저니’가 나올 당시 그림업계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커뮤니티에서는 커미션을 받는 사람들은 이제 굶어 죽는다라는 극단적인 발언이 이어지고 실제로 제가 속한 그림 단톡방에서도 꽤나 진지한 분위기였습니다. 실제로 부업으로 커미션을 받는 선생님들로부터 ‘최근 주문이 확 줄었다’라는 소식도 들려왔습니다.  



’ 결국 이렇게 하나씩 먹히는 건가...‘라고 생각하며 현장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현장에서 눈앞에 신기한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테이블 리프트, 줄여서 티엘(T/L) 또는 렌털이라 불리는 장비가 있습니다. 사람을 높은 곳으로 올려주고 이동하는 차량입니다. 작은 차량에 좌석 대신 커다란 상자를 얹어 놨다 보시면 됩니다. 그때 유도 이모님과 티엘 운전자가 독특한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모님은 노란색 공업용 테이프를 길게 늘어뜨려 티엘의 바퀴 아래에 살며시 놓았고 티엘 운전자는 천천히 앞으로 와서 바퀴에 노란색 테이프가 붙게 했습니다. 이후에는 이모님은 테이프를 당기고 티엘의 바퀴에 눌려 팽팽해진 노란 테이프가 있었습니다. 마치 줄다리기하는 풍경 같았습니다. 티엘은 서서히 앞으로 가면서 바퀴에 전체적으로 테이프를 둘렀습니다.  


소위 ’ 바퀴를 보양한다 ‘라고 하는데 실내에서 티엘을 운전할 때 바닥에 바퀴 자국이 남지 않도록 테이프로 감싸는 작업입니다. 옆에서 보면 뭔가 귀엽고 재미있는 장면입니다. 이때 문득 머릿속에서 외침이 들렸습니다.


’ 그들이 오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다.‘



여기서 그들이란 바로 인공지능, AI입니다.  

1965년 NASA에서는 인간을 우주로 보내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 눈에는 위험하고 세금도 엄청나게 먹는 일로만 보였나 봅니다. 그런 사람들은 ‘왜 굳이 컴퓨터가 아니라 인간을 우주선에 태우는가’라는 비판을 했습니다.


그때 NASA는 ‘인간은 비선형 처리가 가능한 가장 값싼 컴퓨터 시스템이고 심지어 중량이 70kg 정도로 매우 가볍기 때문이다’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인간은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유도원 이모님과 티엘 반장님의 협력으로 바퀴에 노란 테이프를 두르는 모습은 참으로 기묘했습니다. 어쩌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창조적이고 지능적인 행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로봇이 저렇게 지혜를 짜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장을 보면 상황에 맞게 기술인들은 다양하게 도구들을 만듭니다. 케이블 타이로 도구들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고리부터 어떤 분은 수공구에 강력 자석을 붙여 철재 캐비닛에 붙여놓고 작업을 합니다. 인공지능이라면 차라리 24시간 일을 하지 저렇게 지혜를 짜내지 않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그들이 오지 못하는 점이 있습니다.


이곳은 철저히 움직임의 세계입니다.


일반 회사라면 하루종일 의자에 앉아 문서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이곳 고덕은 그렇지 않습니다.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걸어 다니고 당기고 들고 무언가를 올리고 내리고 자르고 찢어야 하는 그런 세계입니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급속도로 발달한 시기는 수렵을 하면서 장기간 움직이면서 유산소 운동을 한 시점이라고 합니다. 민첩하게 움직이며 사냥감의 이동경로를 예측하고 서로 작전을 짜면서 뇌는 더 조밀해지고 고차원적인 공간 지능을 처리하기 위해 발달한 것이죠.  


인공지능은 아직 움직임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현실에서는 모터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공지능이 빠르게 대체하고 있는 분야들은 철저하게 전자, 디지털 세계입니다. 그들의 홈 그라운드입니다. 전자의 세계에서 태어난 AI에게 디지털 세계는 빛과 같은 속도로 정보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사람의 뇌 계산속도를 넘어선 지 오래죠. 빛의 속도로 사람을 관찰한다면 한없이 느린, 아니 아예 멈춰있는 인간들이 한심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디지털 세계에서 계산하고 출력하는 일은 이미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철저히 3차원 공간에서 움직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빠르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몸이 그만큼 움직이지 못합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설현장에서 몇 년간 부품 교체 없이 연료만 공급해 주면 이리저리 움직이고 티엘의 바퀴를 테이프로 감아주고 도구들을 자기 손에 맞게 개조하는 일을 하려면 어마어마한 양의 모터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또 그 모터들은 디지털 세계와는 다르게 마찰이라는 복병을 만납니다. 끊임없는 마찰 속에서 부품들은 마모될 것입니다. (먼지와 기타 변수는 제외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가격은 어떨까요?

전자의 세계에서는 복사와 붙여 넣기에 아무런 비용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같은 물건을 만들더라도 원료를 만들기 위한 에너지부터 옮기고 붙이는 등 모든 것에 비용이 발생합니다.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도 아직은 상당히 고가의 운송수단입니다. 물론 미래에는 값싼 이동수단이 되겠지만 자동차의 움직임과 건설현장의 사람의 움직임의 디테일과 생산성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단순히 바퀴를 굴리는 것과 수십 개의 관절을 움직이는 것에는 큰 기술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수천, 수억이 드는 로봇 한대보다 아직은 하루 일당을 주고 사람을 시키는 게 훨씬 이득입니다.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도 아직은 인간의 사고력이 훨씬 앞섭니다. 특히 움직임이 가득한 이곳에서는 컴퓨터의 도움보다 인간의 경험, 소위 '짬'이 훨씬 도움이 됩니다. 일 뿐만 아니라 화장실 가는 길조차 최단거리를 찾아내는 사람들인데 하물며 빨리 퇴근하기 위해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는 한국인 특성상 ’ 짬‘의 알고리즘은 오히려 AI가 많이 배워야 할 듯 보입니다.


물론 완성 후 공장 자체는 거의 대부분 무인으로 운영될 것입니다. 제가 있는 그린동도 이미 완공이 가까워지자 많은 기계들이 조용히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곳을 돌아다녀도 실제 사람들이 근무하는 곳은 중앙통제실뿐이었습니다. 공식 자료만 봐도 공정의 97%까지 자동화로 운영 가능하다고 합니다.  


움직임이라는 측면에서 아직은 AI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전자의 세계에서 빛의 속도로 돌아다니겠지만 이곳에서는 수많은 장애물과 마모를 견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요즘은 더 충격적인 인공지능, chat GPT를 사용해 보고 있습니다. 삼성 고덕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 했더니 1980년대 생겨난 삼성 고덕 현장은 사고로 인해 현재는 폐허가 되었다는 으스스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나도 모르게 인공지능을 피해 이곳으로 왔을까?


이제 커뮤니티를 보면 너도 나도 인공지능으로 만든 캐릭터, 그림들을 올리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수많은 그림 중 하나만 올려도 금손취급을 받았을 텐데 지금은 한 명이 습작으로 수십 장의 캐릭터 일러스트를 올립니다. 완성도는 작년보다 더 좋아졌고 유명 작가의 작품과 비교해서 손색이 없습니다.  


어쩌면 제 본능이 저를 이곳으로 데려온 지도 모르겠습니다. 워낙 어릴 적부터 컴퓨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저에게 본능은 적을 피해 새로운 도피처를 알려준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수많은 움직임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훗날 이곳에 로봇들이 걸어올 때 저의 본능은 또 저를 어디로 데려갈까요?


노가다 하이바를 쓰고 인공지능의 미래를 생각하다

오늘도 열심히 현장에서 걷고 배관 사이를 기어 다니고 티엘에 탑승해 높은 곳에 올라갑니다. 여러 공구들을 이용해서 튀어나와 있는 철근을 잘라내고 주머니에 있는 작은 고무캡을 꺼내 씌웁니다. 큰 동작부터 세세한 동작까지 가릴 것 없이 열심히 움직입니다. 아직은 AI가 따라 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더 자랑스럽습니다.

지니 : 고객님 월 구독 결제 하셨나요? 안하셨으면 3가지 소원만 무료 사용 가능합니다!


예전에 즐겁게 봤던 알라딘이 떠오릅니다.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지니를 보면서 ‘나라면 소원을 100개로 늘려달라고 소원을 빌 텐데 ‘라는 생각을 누구나 해봤을 것입니다.


저는 인공지능이 결국에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이 글조차도 저만의 고유한 경험이 담겨 있어 아직은 힘들겠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경험담과 이야기들을 참고하면 눈물이 글썽이는 글 한편을 0.1초 만에 만들거라 생각합니다.


움직임도 언젠가는 고성능 모터와 배터리로 인해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미드저니와 같은 상상력, chatGPT와 같은 대화력, 3D 프린팅의 발달로 정교한 로봇의 제작이 합쳐지만 진정한 램프의 지니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어떤 황당한 주제도 그려주는 AI처럼 황당한 소원도 들어주는 기계를 만들어줄 것입니다. 요리사는 온갖 종류의 기괴한 요리들을 선보일 수 있고 건축업자는 기묘한 형태의 건축물을 단시간에 만들어낼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다만 만화를 보면서 그 끝은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니를 통제하고 소유하기 원했던 자파는 오히려 램프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함께 친구로 지내기를 원한 주인공은 사랑과 우정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손에 넣습니다.  


영화 듄의 한 장면, 인공지능을 배척하는 세계관이 흥미롭습니다... 잠깐, 지니의 램프도 이런곳에서 발견되지 않았나요?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지니와 친구가 될지, 통제하려다 스스로를 가두게 될지, 그것도 아니면.... 램프 자체를 황량한 사막에 버릴지 말입니다.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저와 여러분들은 열심히 움직여야겠습니다. 건강뿐만 아니라 뇌를 더 발전시키고 인공지능이 따라오지 못할 생각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말이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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