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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Zam Dec 05. 2024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노랑잠수함의 잘 모르는 북리뷰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황국영

위즈덤하우스 2023-06-28     

 며칠 전, 딸 수민이가 “아빠, 이 책 읽었어? 라며 이 책을 건네준다.

 긴 제목을 보고 ”일본 작가야?“라고 물으니 ”류이치 사카모토의 책“이란다.

 일단 읽어보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 없다.

 물론 내가 본 영화에 그가 음악을 담당한 경우가 있으니 아예 안 들은 건 아니지만, 사카모토의 음악을 찾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문외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사카모토가 암 투병을 하면서 쓴 에세이다.

 책 말미에 보니 스즈키 마사후미라는 취재 담당의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사카모토가 인터뷰 형식으로 구술하고 스즈키 마사후미가 정리하여 책을 낸 것 같다.     


 내가 그의 음악에 흥미를 갖든 말든 사카모토는 세계적인 거장이고 따라서 그의 시간들은 전세계에 닿아 있다.

 이 책에서도 일본, 미국, 한국, 중국 등등 다양한 나라를 넘나드는 그의 모습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예술가의 이름도 많이 등장한다.

 백남준, 이우환... BTS 슈가는 물론이고 새소년이라는 밴드도 그와 닿아있다.

 노년의 사카모토가 얼마나 폭넓고 시대를 아우르는 사람인지 실감하게 된다.     


 그는 중인두암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이름의 암으로 투병을 시작했고 경과가 좋은 것 같았지만 이후 2020년 직장암으로 전이되며 결국 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다.     


 이 책은 결국 그의 마지막 책이 된 셈이다.     


 책을 읽다 보면 그의 일상이 얼마나 대단한지 놀라게 된다.

 우리가 일기에 ”오늘 무슨 일이 있었다, 늦잠을 자고 점심을 먹고 친구를 만나고...“라고 쓰듯 그는 미국 뉴욕에서부터 일본, 한국, 프랑스, 영국을 넘나들며 작품을 하고 연주를 하며 사카모토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예술가들과의 일상을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백남준, 이우환 작가를 존경했다는 심정을 이야기하거나 BTS 슈가와의 인연, 작품에 함께 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과도 인연 깊은 그의 일면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이 책의 말미에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흘러나온 음악의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서른 세곡의 음악이 장례식장에서 재생되었다고 한다.

물론 서른 세곡의 음악을 차례로 듣다 보면 한 곡쯤은 들어본 적 있는 경우도 있겠지만, 음... 하나같이 모르는 곡들이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예술가 사카모토를, 병에 대해 걱정하고 죽음을 앞에 둔 심정을 이야기할 때에는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릴 정도로 평범한 삶을 보여준다.     


 앞으로 가끔은 사카모토의 음악을 찾아 들어봐야겠다.     


https://youtu.be/aCYTAClObCA


16P

 희망의 여지를 조금도 남기지 않고 비관적으로 단정 지어버리는 말에 충격을 받았고, 좌절감에 휩싸였습니다.     


25P

 친구끼리는 사상이나 신념, 취미가 달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묵묵히 기댈 수 있는 사람, 그런 이들이 많지 않을지언정 확실하게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71P

 한편, 인간의 언어 기능에 대해 돌이켜 생각해보면, 언어란 것은 실제로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까지 틀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안개’라는 말을 들으면 안개라는 존재가 보이기 시작하고, ‘하늘’이란 말을 들으면 마치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구획된 영역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103P

 거리 구석구석에서 이러한 브리콜리주, 그 손수 빚어낸 넘치는 창의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감동스러웠습니다.

 * 손에 닿는 대로 아무거나 이용하는 예술 기법.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언젠가는 부서지고 만다는 사실을 통감했죠. <Out of noise>도 자연에의 경외심을 담아 커다란 산수화를 그리듯 만들었는데, 그 의식이 지진(동일본 대지진)이라는 재해를 계기로 한층 깊어졌다고 할까, 어떻게 해도 자연에는 대적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127P

 마지막으로 “Keeping silent after Fukusima is barbaric”.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침묵은 곧 야만이다, 이것이 제 신조입니다.     


145P

 10대 시절부터 일방적으로 동경하던 백남준을 만난 것은 1984년의 일이었습니다. 그해 도쿄도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개인전이 열렸고, 저는 전시 준비를 하는 그를 만나러 갔습니다. 전시장 쪽으로 걸어가자 맞은편에서 백남준이 손을 벌리고다가오더니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라는 [논어]의 구절을 읋으며 저를 안아주었습니다. 그저 감동스러웠습니다.     


160P

 하지만 저는 가끔 의도적으로 시적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 부분은 깊은 숲속에 있는 인적 없는 호수, 마치 거울과 같은 호수의 수면에 어렴풋한 물결이 일 듯이”같은 식으로요. 이것은 상대가 인간일 때만 가능한 일로, AI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일지도 모릅니다.     


177P

 처음으로 노화를 느낀 것이 마흔두 살 때였습니다.     

 노안이 왔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죠. 어릴 적부터 항상 1.5의 시력을 유지해온 저로서는 눈앞이 침침한 경험 자체가 처음이라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자력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잖아요.     


182P

 생명력을 희생하면서까지 수행승처럼 엄격한 식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주객전도라는 판단에 마음을 바꿨습니다.     


193P

 지금은 모두가 밝은 관광지의 이미지로 인식하는 하와이이지만, 사실은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와이 왕국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고 19세기 말에는 미국 본토 해군들의 무력과 상인들의 경제력에 의해 미국 영토에 병합되고 말았습니다. 일본의 육군도 비슷한 시기에 조선을 침략하여 이후 한일합병으로 이어지니, 전 세계 여기저기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213P

 저는 항상 ‘노력을 싫어한다’고 공언해왔는데, 실제로 지금까지는 큰 고생 없이 그렇게 해왔습니다. 체력에는 늘 자신이 있었죠. 거기에 교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겁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지막 황제>의 영화음악은 불과 2주일만에 완성했으니까요. 그런데 <레버넌트>를 작업하면서 생전 처음으로 좌절을 맛봤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항암체 치료 후 머리가 맑지 않아 좀처럼 집중력이 생기지 않는 ‘케모브레인’ 증상도 분명 있었고, 이냐리투의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한 기재 때문에 애를 먹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변명에 지나지 않죠.     


224P

아오야마학원대학의 교수이자 록펠러대학의 객원고수이기도 한 후쿠오카 씨와는 그가 뉴욕에서 지내는 동안 종종 식사를 같이하는 사이였습니다. 후쿠오카 씨의 말에 따르면 밤하늘의 별들을 마음대로 이어 붙이는 인간의 뇌의 특성, 즉 이성을 ‘로고스’라 칭하며 이에 대비되는 별 본래의 실상을 ‘피시스’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피직스(물리학)의 어원으로 ‘자연 그 자체’를 뜻하는 말이죠.     


237P

 이우환 선생님의 작품을 만난 것이 열여럽 무렵이었으니, 어쩌면 그때부터 ‘모노’(もの)로서의 음악의 길을 향해 곧바로 걸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길을 택하지 않았던 것은 젊은 시절의 제가 돈과 여자에게 눈이 멀어 있었기 때문이에요. 구체적인 이야기는 상상에 맡기겠지만 그렇다고 나이를 먹은 지금, 그 인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분명 환갑을 넘기고, 큰 병을 앓고, 속세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청빈한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자신이 올라야 할 산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겠죠. 말하자면, 큰 나선을 그리듯 빙 돌아 원점으로 돌아온 셈입니다.     


260P

 그러고 보면 저라는 인간은 그야말로 주위 어른들로부터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존재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65P

 뒤이은 팬데믹 상황에서도 그랬듯, 세계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음악과 예술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큰 구원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정치가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할테지만요.     


282P

 오사카에 있는 어떤 홀의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천장은 높은데 가로 폭이 몹시 좁아 기린은 들어가도, 피아노는 들어갈 수 없는 이상한 크기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설계를 했을까요?     


284P

 다만, 저희는 그저 모임에 이름을 붙여 놀고 있을 뿐 ‘신교토 악파’의 작품은 아직 없습니다.     


286P

 지금도 대만 곳곳에서 ‘쇼와의 거리 풍경’을 볼 수 있고 그곳에서 일반 시민들이 살아아고 있습니다. 뭐, 우리의 시각으로 보니가 쇼와 시대가 떠오르는 것이겠지만요. 한편, 지금 일본 현지에 간신히 남아 있는 ‘쇼와의 거리 풍경’들은 하나같이 테마파크처럼 과도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도록 연출되어 있어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식민지였던 대만이 과거의 일본 풍경을 오히려 더 잘 간직하고 있다니,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이야기죠.     

294P

 후쿠시마 원전이 그랬듯, 중앙이 필요로 하는 위험한 시설을 멀리 떨어진 지역들에만 강요하는 것이 오늘날 일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가 전혀 기능하고 있지 않죠.     


303P

 3.11 대지진 때에도 그랬지만, 세상이 급격하게 변화하는 것은 매우 충격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충격을 쉽게 잊어버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강하게 듭니다.     


305P

 당연한 이야기지만, 역시 인간은 일하지 않고 돈만 받는다고 만족할 수 있는 생물이 아니죠.     


343P

 정작 그 집은 큰 미련 없이 팔았지만, 시간이 묻어나는 낡은 분위기가 어찌나 근사하던지 피아노만은 뉴욕 자택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실험’이라는 이름으로, 시험 삼아 피아노를 마당에 그냥 놔둬보기로 했습니다. 몇 년의 시간 동안 수차례 비바람을 맞으며 도장도 다 벗겨진 지금은 점점 본래의 나무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이대로 어떻게 썩어갈 것인가. 그것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나이 먹어가야 하는가, 하는 것과도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349P

 9월 말에는 일본을 방문한 BTS의 멤버, 슈가를 만났습니다.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 정상의 아이돌임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해보니 전혀 교만함이 없는 좋은 청년이었고, 매우 진지하게 음악 활동에 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다른 취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늘 음악 생각을 하더군요.     

 그 후, 슈가의 제안으로 그의 솔로 앨범 중 <Snooze> 트랙을 위한 피아노 연주 음원을 보냈습니다.     


355P

 이것으로 저의 이야기는 일단 마칩니다.

 Ars longa, vita brevis.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저자를 대신한 에필로그 – 356

 스즈키 마사후미

 전 <GQ JAPAN> 편집장으로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에서도 사카모토 류이치의 인터뷰 취재를 담당했다.     

371P

 우리가 그곳을 떠난 때는 이미 다섯 시를 훌쩍 넘긴 시각이었다. 사카모토 씨는 우리가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소파의 같은 자리에 앉아 방을 나서는 우리를 진심 어린 순수한 미소와 안녀의 손짓으로 배웅해주었다. 문을 닫을 때 돌아보니 그가 여전히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것이 사카모토 씨를 본 마지막이었다.     


393P

 2022

 9월 BTS 멤버 슈가와 첫 만남을 갖고, 이후 그의 솔로곡 <Snooze>를 위해 피아노를 연주한다.     

 세상은 소리로 가득 차 있고 그 소리들이 모이면 음악이 된다는 걸 알려주신 선생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음악과 사람을 사랑했던 선생님, 긴 긴 여행 평안한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_방탄소년단 슈가<SU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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