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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장이 임기자 Jan 26. 2023

오키나와 로드트립 #1

7박8일 무계획 모터사이클 여행

기장님. 당신의 터프한 랜딩 덕에 스릴 넘치는 오키나와 여행이 시작됨을 깨달았어요. ^ㅍ^


1일차_



_출발


설렘을 안고 잠에서 깼다. 그렇다. 오늘은 오키나와로 여행을 떠나는 첫 날이다. 새벽 다섯 시 기상했다. 피곤했지만 당연히 피곤함 같은 감정이 느껴질리 없다. 설렜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정말 전혀 계획에 없던 것이다. 다사다난 했던 2022년을 겨우 겨우 보내고, 마지막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급여 미지급으로 끝날 기미가 안보이자, 현명한 나의 아내가 내린 결론은 여행을 다녀오라는 것이었다.


내가 평소에 겨울에도 따뜻한 곳이라며 오키나와를 종종 말하곤 했는데 이김에 오키나와로 놀러갔다 오라는 아내. 놀랐기도 놀랐지만 고맙기도 하고 얼떨떨 하기도 했다. 금전적으로 압박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한 수 물렀다.

 

"에이 돈이 얼만데 지금 거길가... 이번달에 돈 아껴야 하잖아."


그런데 다른 한 에서는 뭔가 설레기 시작했다.

그렇게 여행길에 정말로 오르게 됐다.



_인천국제공항


내가 사는 파주에는 인천 공항까지 빠르게 갈 수 있는 방법이 별로 없었다. 서울에 살 때, 특히 강서에 살 때는 공항이 워낙 지척이라 이런 생각 해본 적이 없는데, 집에서 인천공항까지 가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소요된다. 비교적 정확히 시간을 지킬 수 있는 전철을 택했다. 공항철도는 좀 오래걸리긴 했지만 아무튼 정확하게 원하는 시간에 공항에 나를 데려다 놓았다.


 하지만 시간이 꽤 촉박했고, 하필이면 국 수속 줄이 이날 따라 진행이 더뎠다. 간단한 수속에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고 탑승시간이 이미 지난 상태로 소지품 검사를 마쳤다. 군대 이후로 이렇게 온힘을 다해 뛴 적이 없었는데, 정말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에 다리가 풀릴때까지 뛰었다.


그런데 거의 다 도착했을 즈음 생각났다. 탑승시간은 탑승 시작시간이지 마감시간이 아닌데, 착각하고 최선을 다해 뛴 것이다. 아무튼 도착한 게이트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탑승할 수 있었고, 아내에게 잘 도착했다는 카톡을 보낸 뒤 그렇게 한국을 뜨게 된다.



_나하공항


나하 공항은 오키나와의 현관문이다. 오키나와를 가려면 나하를 통해야 한다. 나하 시는 공항을 중심으로 관광지 다운 쇼핑 거리나 숙소 등 인프라가 잘 되어 있는 편이다. 구글 캘린더에 뜨는 정보에는 내가 5년전에 이 곳에 왔었다고 한다. 그 때는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함께 모터사이클 투어를 왔던 기록이다. 참고로 나는 대부분의 해외여행을 모터사이클 투어링 목적으로 간다. 생각해보면 모터사이클 없이 해외를 다닌 기억은 거의 없다. 출장 빼고는.


아무튼 나하 공항에서 일단 숙소로 이동했다.



_익숙한 나하시


오랜만에 만나는 유이 레일은 자기부상열차다. 모노 레일이라고도 하는데 지상에서 10미터 이상 떨어진 높이로 다니는 지상철이다. 보통 2량 정도의 짧인 승객칸을 두고 기사가 앞에서 운전한다. 우리나라 전철과 비슷한데 항상 관광객이 타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나하 공항역부터 원래는 슈리 성까지 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증편해서 종착역이 좀 더 멀어져 긴 운행을 하고 있었다. 그래봤자 아지가 오키나와 남부만 커버하고 있어 모노레일로 오키나와를 전부 여행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오키나와를 여행하려면 렌트카가 필수다. 그 밖에 버스도 이용할 수 있지만 가이드북에 따르면 시간이 정확하지 않고 대기 시간이 길다고 한다. 애초에 버스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나는 관심이 별로 없는 수단이다. 택시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싸지만 일본은 훨씬 더 비싸다. 이번 여행에서 몇 번 어쩔 수 없이 이용해봤는데 역시 비쌌다. 10분 정도 대략 이동하는데 1만원 정도 나온다.


예약해 둔 호텔은 3.5성급으로 필요충분한 퀄리티를 가졌다. 이름이 티사쥬 호텔인데 그런 것보다 한국 영종도에서 묵어본 경험이 있는 호텔 네스트의 핸들링으로 운영된다고 하여 예약했다. 주변 다른 비슷한 가격의 호텔에 비해 지은지 오래안 된 점도 한 몫했다.


아무튼 짐을 푼 뒤 이제 모터사이클 렌탈을 하러 다시 유이레일을 타고 이동, 5년 전에 렌탈했던 렌탈819 나하공항점에 도착했다. 자, 여기서 어마어마한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등장한다.


국제 면허증 재 발급을 위한 반명함판 셀프 사진 촬영 _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짐도 못 푼 상태. 핸드폰과 삼각대로 어떻게라도! ㅠㅍㅠ


_전쟁의 서막


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한국의 운전면허증은 얼마전 앞/뒤로 국문과 영문으로 나뉘어 인쇄된 플라스틱 카드 타입으로 갱신됐다. 나도 오래된 적성검사 겸 기존의 헌 면허증을 폐기하고 해당의 신형 면허증으로 재발급받았다. 뒤에 영문 면허증을 추가하겠냐는 말에 OK하고 발급 받은 것인데, 이 때 담당 공무원에게 물었다.


 "와, 이렇게 바뀐건가요? 그럼 기존에 종이로 된 국제 면허증은 이제 안쓰는 거에요?"

돌아온 답은

"네. 그걸로 쓰시면 돼요."

나는 다시 한 번 확인차,

 "이렇게 바뀐거에요?"

그러자

 "네,네."

그래서 감탄하며

 "아 좋아졌네~ 감사합니다."

하고 면허시험장을 나왔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국제면허증(기존의 종이 타입)은 유효기간이 지난 채 그냥 두고 이런식으로 면허증 발급방식이 개편된 줄알고 이것만 들고 해외 출장을 간 적도 있다. 그 때도 문제없이 운전을 했다.



_친절속 불친절


그런데 이번에 렌탈 샵에 가서 면허증을 보여주니,


"스미마셍, 이 영문면허증 말고 국제 운전면허증을 주세요."

나는 당황하지 않고

"한국에서는 이 면허증으로 전부 갱신되었습니다. 이게 국제 면허증 입니다."

했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스미마셍, 일본에서는 종이로 된 국제 면허증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렌탈은 할 수 없습니다. 스미마셍."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아니라니까요. 이렇게 다 바뀌었어요. 난 이걸로 다른 나라에서 운전을 한적이 있어요."

젊어보이는 직원은 배시시 웃으며(알고보니 이 청년이 관리자였던 것 같다)

"미국은 되는걸로 아는데, 일본은 안됩니다."

어이없어 하며 나는

"그럼 렌탈이 안된다는 거에요?"

그가 끄덕이며

"하이, 하이, 스미마셍."


이때부터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며 최대한 혼을 붙들어 잡고 상황을 타개하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흥분이 가시질 않았다. 너무 당황했고 현실이 믿기지 않아서였다.


 모터사이클 여행을 왔는데 면허가 없어서 빌릴 수가 없다니. 말도 안되는 상황에 어쩔도리 없이 화가 날 뿐이었다.


그래서 알아보겠다며 영사관에 전화를 걸었지만 느려터진 연결과 전혀 도움되지 않는 자동응답 안내만 되풀이 될 뿐. 한국의 면허시험장에 상담원과 겨우 연결해 따지자,


 "안타깝지만 일본은 기존의 국제 면허증이 없으면 안됩니다."


라는 안내를 받았다. 억울하고 분통이 터졌지만 마음을 다잡고 그럼 어떻게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재발급 받아 한국에서 발송을 해서 받던지 아무튼 그게 필요하니 알아서 하란다.



_체념


흥분을 가라앉히고 한국에서 근무 중인 아내에게 전화로 호소해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나도 영어가 짧은 상태로 갔지만 렌탈 샵 쪽도 영어가 상당히 짧아 의사소통도 잘 안될 뿐더러 믿도끝도 없이 그냥 안된다는 말 뿐 뭔가 함께 해결해보려는 태도는 전혀 아니었다. 아마 나는 그런 부분에 더욱 화가 났던 것 같다.


 아무튼 안된다는 결론에 맥이 탁 풀리고 앞으로 8일의 일정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다시 돌아가서 면허증을 가져오는 말도 안되는 여정을 되풀이 해야되는것인가, 머리속이 하얘진 상태로 샵을 나왔다.


동분서주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아내의 통화를 마지막으로 세상을 잃은 듯한 표정으로 메가리없이 헬멧을 들고 다시 유이레일을 타고 오는길, 아직도 기억이 선하다.


2일차_

소바를 좋아하는 나는 이틑날 아침부터 작정하고 소바요리만 먹기 시작했다 _이틀째 숙소 1분 거리의 그냥 동네 헬스장 내 소바집. 주인아저씨가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하심.ㅇ_ㅇ


이렇게 어쩔 수 없이 며칠간 오키나와의 도보 여행은 '여행이란 원래 이런 것'이라는 자위로 시작되었다.



_예정없던 도보여행


 일단은 걸어서, 혹은 유이레일을 통해 다닐 수 있는 관광지나 그 뭐라도 아무튼 시간을 보람있게 보내기 위해 계획을 세웠다. 사실은 계획이 없었지만 끼워맞추기 시작했다.


관심도 없는 쇼핑센터에도 가보고, 원래 바이크로 갈 생각이었던 슈리성도 유이레일을 타고 걸어갔다. 더 놀라운 것은 슈리성을 가긴 갔는데 2019년에 불이 나서 다 타버리고 터만 남은 것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이걸 영상으로 담아보겠다고 전철역부터 가는길 도보 30분을 구석구석 촬영하며 올라간 나는 또 한번 맥이 풀렸다. 관계자들을 붙잡고 이게 왜 불에 탄거냐며 이유를 물었지만 "화재의 원인은 모르겠습니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아니 그럼 입장료를 받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난 당연히 이거 볼 줄 알고 온건데. 지금 아무것도 없음. 덜렁 돌 담만 있음. ㅠㅍㅠ


_오키나와소바


이미 여행을 반쯤 포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제 어디로 가지"

그래도 날씨는 좋다.


나그네같은 마인드로 터벅터벅 걸으며 어디가서 좋아하는 소바나 먹자 하고 간 곳이 상당한 맛집이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원래 웨이팅이 있는 이 집은 오키나와 소바를 맛깔나게 해서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에게 꽤 인기 있는 곳이었다. 영문 메뉴도 있어서 편했다.


 여기서 주문한 기본 소바는 정말 진한 돼지고기 육수에 짭짤한 풍미, 그리고 쫄깃한 면발로 소바보다는 내 생각에 일본 라멘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맛있긴 했다. 다만 다 먹을 즈음에는 너무 강한 간 탓에 좀 물려서 힘들게 흡입하긴 했지만, 이렇게 먹어둔 덕분에 앞으로 5킬로미터 정도를 걸을 수 있었다.



_고마운 구글맵


그렇다.

구글 맵이라는 환상적인 앱 덕분에 나는 아직까지 절망하지 않았다. 여행의 필수품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구글 맵은 내비게이션도 기가막히게 해준다. 도보 내비게이션도 가능해서 좌회전 우회전 할 때마다 진동으로 알려주기도 한다. 너무 똑똑하고 고맙고 아무튼 그렇다. 이게 없었으면 한국에 정말 돌아갔을지도 모른다.


근데 이상하다.

분명히 슈리성 역앞에 있던 표지판에는 현립 오키나와 박물관이 600미터 남았다고 되어 있어서 슬슬 소화시킬 겸 걷기 시작한 건데, 이게 아마 직선거리였나보다. 구글맵을 보면서 걷기 시작한게 5킬로미터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_오키나와 공부하기


거의 도보 여행 수준으로 바뀐 첫날 여정은 슈리성에 이어 시립 나하 박물관의 매우 매우 교육적이고 뜻 깊은 오키나와의 역사에 대해 쓸데없이 깊고 진하게 알게 되었다.


 이걸 알아서 뭐에 쓰지 싶을정도로 많이 알게 되어 오히려 허탈했다. 사실 그렇게 된 것은 모터사이클 여행을 못하게 됐다는 자괴감에서 온 사명감, 이렇게 된 이상 의미를 확실히 가져야 해! 하는 의지로 이뤄진 것이다.


평소같았으면 그냥 대충 영어 안내만 보고 전시물 좀 보고 15분 만에 퇴장했을 박물관이 분명했다. 이날은 3시간 정도 정말 매우 꼼꼼하게, 한글 음성 지원 툴을 대여해 굳이 이어폰을 끼고 터치팬과 터치보드를 찍어가며


지구 탄생의 태초 오키나와 - 생태계 시작 - 석기시대 등등등 류큐왕국 시대와 에도시대 이후 일본 본토와 미국의 점령, 그리고 일본 반환 시기까지


시대별로 총 망라된 정보를 미친듯이 습득하여 원치 않게 오키나와 박사가 되어 버렸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거지? ㅇ_ㅇ



_여행은 이런 것인가


아무래도 무겁고 걷기 불편한 모터사이클 라이딩 슈즈를 신고 도보 여행을 아침부터 하루종일 했던 탓에 발바닥이 퉁퉁 부어 도저히 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야 숙소에 귀환했다.


다시 걸어서 유이레일타고 내려서 숙소까지 또 걸어갈 생각이었다. 걷기위해 단 걸 먹어야 했다. 내 여행 왜 이렇게 된거지...


예상했던대로

난 세븐일레븐 편의점에서 오리온 캔맥주와

 선토리 하이볼 캔, 과자 몇 봉을 사들고

육신을 하얗게 불태운 표정으로

쇼파에 스러졌다.


기린, 삿포로, 아사히 보다 오리온이 맛있다. 근데 생맥주라면 사실 다 맛있긴 하다.

이렇게 여행 이틀째,

계획에 없던 토요일이 지나고 있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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