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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Aug 14. 2022

남은 자의 몫,  남은 자의 시간

 

 

  8월로 접어들자 한반도를 덮친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우기(雨期)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래 계속되어 온 나라가 물에 잠긴 듯했다.

  누군가는 순식간에 들이찬 물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반지하 생활공간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리의 집은 당신들이 와서 쪼그려 앉아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는  항의 이 인터넷에 떴다.

 누구는 사진이 잘 나오도록 비가 내려줘야 한다는 소리를 는 것으로 복구 현장 방문이 쇼임을 드러냈고, 누구는 폭우가 시작되는 걸 알고서도 자택으로 퇴근을 해 지지율 신기록을 향해 한발 더 갔다.

     

 물난리를 뒤로 하고 이틀째 폭우가 소강상태여서 유족들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 유해는 공항에서 곧장 가평으로 옮겨졌다. 정오가 되어 식이 시작되었을 때만 해도 비는 조금씩 흩뿌리기만 해서 추모객들도 안도했다. 유족과, 아주 가까운 사람 몇이 모인 조촐한 발인식이었다.

 Y가 사랑했던 아름다운 한옥을 나오면서부터 빗줄기는 굵어졌고, 어른 여섯이 든 관이 매장지에 도착하자 비는 기어이 쏟아지기 시작했는데 하관 때는 아예 들이붓는 듯했다.


 칠성판이 닫히고 이윽고 허토의 시간.

 집사는 손잡이를 하얀 천으로 감싼 삽에 흙을 조금 담아 내어주었다.

 H 흙이 담긴 삽을 받아 뿌리다말고 흙을 손으로 쥐었다. H의 손으로 직접, 어릴 적에는 그들이 곧잘 서로 잡곤 했던 손으로 직접 뿌려주어야 할 것 같았다. 집사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아 그 댁 법도에 어긋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아무리 그녀의 위상(시댁과 남편의 위상이라고 해야 맞겠지)이 현대판 '훙서'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높다고 하더라도 H에겐 그저 사랑하는 동무였다.    


  울음은 잦아들고, 비도 잦아들었다.

 

  산을 내려온 H아무 일도 없는 듯 차를 일터로 향했고, 팔야리를 지나 퇴계IC에서 수도권 외곽순환도로를 탔다. 토요일 이른  오후라 중동 IC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아 오히려 시간 여유가 생겼다.  

 밤 11시까지 일을 하려면 뭐라도 먹어두어야 했으므로 약국 근처 설렁탕 집에서 밥 대신 김치를 국물을 반쯤 들이켰다. 속이 조금 편해졌다. 그제야 H는 자신이 아침부터 내내 한끼도 먹지 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마감시간이 다 되어 그날 매출을 확인하니 350만 원이 조금 넘는다. H가 비운 시간을 메워준 약사 두 명의 인건비 '30만원 추가 지출'을 기입하고, 컴퓨터를 종료했다. 가운을  벗으려고 조제실로 들어간 H는 거울 속에, 초췌한 여자 하나가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Y야.

 있잖아 내가, 여태 아이라인이 지워진 줄도 모르고 근무를 했지 뭐니.

 약국 슬리퍼를 그대로 집까지 신고 온 줄도 몰랐어....

 내 말 듣고 있니.


  슬픔 속에 자기 연민을 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Y를 향한 슬픔의 순도가 과연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슬픔의 순도를 분석하며 잘난 척하는 H에그래도 Y는 "그래 너 잘났어" 하며 빙긋이 웃었을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책임감도 고통도 없이 이제는 완전히 자유로울 내 친구... 안녕 잘 가.


  회한이든 죄책감이든 부끄러움이든 가치관의 전도든 이제는 남은 자의 몫, 남은 자의 시간.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우리가 짓는 죄.

우리가 유기한 것들... 그래도 사랑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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