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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 Mar 22. 2024

동네 딸이 되었다

     ㅡ 백일 소감


뭐 좀 물어봐도 돼?

좀 그렇긴한데.. 얘기해도 되려나.

저기 있잖아요.


새로 옮겨온 곳에서 백일이 지났다.

건네는 말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말들을 아주 많이 듣고 있다.  동네 딸이 된 느낌이랄까.

일부러 와서 뭐든지 다 물어보고, 고마워하고, 예쁘다 하시는 것까지는 좋은데  음..  결정적인 약점은 약이 필요없으신. 하하하. 

코끼리 다리 만지는 격으로 말하면 이곳 사람들은 정말로 건강관리를 잘하고 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되니 그럴 거라 짐작된다. 도시를 가로 질러 공원과 천변이 잘 조성된 지역이라 많이 걷고 주민센터에서 수영하는 분도 많고 정기적으로 돌보는 사람이 방문하는 것 같다. 모자와 운동화와 패딩 점퍼로 무장한 70대들이 바퀴가 달린 이동식 가방을 끌고 씩씩하게 장을 보러 오신다. 빈익빈 부익부가 빈익환(患)  부익건(健)으로 새롭게  나뉘는 것을 지켜 보고 있는 셈이다.


  동네 딸 운운했지만 말이 그런 거지 실상은 우울하고 쓸쓸한 풍경이다.
 내게 이곳은 언제나 "신도시"란 접미사가 붙는 지역이었지만  J신도시보다 훨씬 더 오래된 곳이다. 늙어가는 혹은 이미 너무 늙은 사람들의 쇠락을 보는 게 지난 백여 일 동안 나의 일상이 되었다. 큰소리로 마스크를 벗고 입모양을 보여주며  응대해야 하고, 손을 떨거나 턱을 덜덜거리는 경우가 많아도 혹시라도 내 시선이 머물러 그분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애쓴다.

  우리가 다 겪게 될 일이라는 동질감과, 또 드러내진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연민의 감정으로 조금은 더 따뜻하게 대하게 되었고 고마워하는 눈빛들에서 나 스스로 동네 딸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는 소리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이미 가셨다. 장성한 자식들은 서울로 외국으로 떠나고, 혼자서 아버지를 돌보신 늙으신 어머니, 그리고 홀로 남은 어머니는 결국 요양병원으로...

 그때 내가 곁에 남아 해드리지 못한 것, 누군가는 도와주었고 또 좀  도와주었으면 했을 법한 것들지금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저 조금 해드리는 것뿐이다.


  이렇게 죄책감을 더는 딸을 어머니, 아버지는 용서해주시리라.

  눈이 내리고 바람이 불고 그리고, 봄이 왔다. 아버지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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