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에서의 인생 후반 #4)
일본여행을 3박 4일로 다녀왔다.
수다스러운 대학교 동창 남자 4명이 함께 오사카, 교토, 나라~고베를 즐겁게 돌아다녔다. 우리 넷은 매달 5만 원씩 회비를 모으고 있는데, 그동안 쌓인 회비를 사용해서 일본 오사카 지역을 여행해 보기로 했다. 굳이 여행에 타이틀을 붙이자면, '환갑 기념 해외여행'.
친구 딸이 일정 계획을 짜고 숙소와 이동수단을 예약을 해준 덕분에, 어려움 없이 매끄럽게 일본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었다. 여행 배낭과 유심칩을 산 것 말고는 별다른 준비 없이 떠났는데, 뭘 잃어버리거나 놓치거나 멘붕에 빠지는 일 없이 일본 도시들을 경험하고 돌아왔다.
아시아나 7시 55분 비행기를 타고 간사이 공항에 내려 미리 예약해 둔 난카이 전철 "라피트"를 타고 오사카 난바역까지 빠르고 편리하게 이동. 도톤보리 강 근처 금룡 라면 (Kinryu Ramen) 집에서 진한 국물과 쫄깃한 면발이 특징인 라멘을 점심으로 먹었다.
오사카 시내와 요도가와 강(Yodo River)의 아름다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우메다 스카이 빌딩의 공중정원 전망대를 방문했다. (이동은 오사카 주유패스를 이용)
다음으로 택시를 타고 오사카성으로 이동했다. 오사카성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을 제패하고 축성했는데, 그의 가문은 오사카 전투(1614-1615)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멸망했다. 오사카성 안에는 당시 전투 상황을 깨알처럼 묘사한 그림들이 있고, 그림의 구석구석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영상도 상영되고 있다.
저녁 7시부터는 도톤보리 강 위를 유람하며 구경하는 크루즈(작은 배)를 타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 예약을 포기하고 생선회와 다양한 일본음식을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며 성공적인 첫날 여행을 기념했다. 음식이 나오면 먼저 먹느라 사진을 못 찍었는데, 근사한 회 접시가 나왔을 때 비로소 한 장 찍었다. 관광객들이 쉼 없이 들어오고 나가는 살짝 정신없는 식당이었다.
교토는 아름다운 정원, 고즈넉한 사찰, 그림 같은 골목길들이 어우러져 있어, 산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상적인 환경을 제공한다. 둘째 날 아침에 호텔 조식을 먹고, 버스투어 (인디고트래블) 집결 장소인 우동집 소에몬초점 앞 닛폰바시 다리 위까지 걸어갔다. '또치'라는 가이드가 투어 설명과 일본 역사, 그리고 개인사까지 버스 안에서 열정을 다해 설명했다. 이번 여행은 가이드 덕분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수천 개의 붉은 토리이(기둥문)로 이어진 아름다운 길과 요염한 여우상이 곳곳에 있는 후시미이나리 신사였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에도 나오는 유명한 곳이다.
길게 이어진 아라시야마 대나무길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신비롭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가 살짝 오고 있어서 더 신비로웠다.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크게 돌면, '청룡사' 입구로 가는 멋진 산책길이 나온다. 사찰과 정교한 정원을 가진 멋진 일본 주택들도 둘러볼 수 있었다.
비가 와서 그런지, 대나무길과 청룡사 둘레길에는 일본 전통 인력거를 타고 편하게 관광하는 여성이나 커플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인력거 모습이 보인다.
다음으로 찾은 은각사는 일본 전통 정원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모래 정원과 연못, 고즈넉한 산책로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산책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이 산책로는 한 철학자가 사랑한 곳으로도 유명해 '철학자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은각사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돋보였는데, 어느 '미의 구도자'가 자신의 신념을 담아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은각사 산책로 주변으로 이끼가 비를 맞아 반짝였다.
교토 여행의 대미는 교토의 대표적인 사찰, 기요미즈데라(청수사)였다. 절벽 위에 나무로 세워진 본당과 주변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규모도 컸고, 산책로도 충분히 길었다.
본당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여성들이 줄을 서서 떨어지는 물을 마시는 진귀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이는 출산에 도움을 준다는 미신(?)에서 출발했지만, 실제로 밑에 내려가 보면 여성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물을 마시고 그 아래에는 그 모습을 사진에 담기에 바쁜 남성들을 볼 수 있다. 남자 넷으로 구성된 우리는 덤덤히 지나쳤다.
청수사로 향하는 길에는 산넨자카와 니넨자카라는 매력적인 거리가 있다. 이 거리는 전통적인 일본 가옥과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어 마치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일본 전통 의상인 기모노를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볼 수 있어 거리에 활기가 넘친다.
셋째 날 아침도 호텔에서 조식을 먹고, 버스투어 (와꾸와꾸 여행사) 집결 장소인 우동집 소에몬초점 앞 닛폰바시 다리 위까지 걸어갔다. '희짱'이라는 가이드가 이번에도 투어 설명과 일본 역사, 그리고 개인사까지 버스 안에서 열정을 다해 설명했다. 희짱은 남편 따라 일본으로 왔다가, 본인이 주장해서 일본에 아예 거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 나라시에서 살고 있는데 조용하고 이웃들이 정이 많아 정말 좋다고 했다. 버스투어가 끝나고, 어느 여행객은 헤어지는 게 슬퍼서 가이드를 끌어안고 울먹였다. 그만큼 가이드들은 열정을 다해 우리에게 '이야기가 있는 일본 여행'이라는 선물을 해 주었다.
오전에는 나라 동대사라는 곳을 관광했다. 이 주변 일대에서 자유롭게 거니는 사슴들을 볼 수 있었다. 단체로 여행온 학생들도 많이 보였고, 학생들은 사슴들과 깔깔거리며 같이 놀았다. 사슴들은 어디 갇혀있지 않고, 아침에 밖으로 출근했다가 저녁이 되면 잠자리로 퇴근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고베시 인근에 위치한 아리마 온천마을이었다. 언덕 위에 자리한 마을이라 다소 경사가 있었지만,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취해 천천히 거닐며 산책을 즐겼다. 우리는 남자 셋이라 온천을 하지 않고, 마을에서 일본식 전통 돈가스를 맛보았다. 정갈하고 독특한 풍미가 가득한 장인의 손길이 느껴지는 식사였다. 식사 후에는 생맥주와 차를 즐기며 시간도 보냈다.
마지막 여행지는 고배 항구 하버랜드였다. '모자이크'라는 쇼핑몰에서 사진도 찍도 아이스크림도 먹으며, 일본에서의 마지막 여유를 만끽했다.
오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았다. 다시 보니, 영화가 공간의 의미에 대한 심오한(?)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
병 치료를 포기하고 제주도의 리모델링된 집으로 내려간 아버지, 정릉의 낡은 집에 홀로 남은 어머니, 욕망의 대상인 대치동, 첫사랑이 꿈꾸는 제주도 바다 뷰의 집. 다양한 공간들이 나온다. 나이가 들어 마지막이 될 집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궁금해졌다.
사람은 누구나 가꾸고 꾸미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이해하고 배우려는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으리라.
<건축학 개론>에서 교수는 첫 번째 과제를 내준다.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를 여행을 해보는 거야. 평소에 그냥 무심코 지난 친 동내 골목들, 길들, 건물들, 이런 걸 자세히 관찰을 하면서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보세요.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게 바로 건축학개론에 시작이다. 알았어?"
오사카 호텔은 조식을 6시 반부터 제공하는데, 나는 항상 6시 전에 밖으로 나가 새벽 길거리를 산책했다. 사진도 찍으며. 마치 탐구를 하듯. 고덕이라는 동네를 중심으로 서울의 동쪽을 애정을 가지고 요모조모 탐구를 해 보아야겠다. 마치 <건축학 개론>에서 첫 번째 과제를 수행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