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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Mar 11. 2022

불쑥 갑자기 찾아오는

기록의 출발 1

마당은 작았습니다. 마당에는 낡은 평상, 오래된 낫, 줄, 호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텃밭이 있었습니다. 정원이 아니라 마당이었습니다. 상추, 고추, 쑥갓, 가지가 단정한 이랑 사이에 있었습니다. 봄이었고, 일동이었습니다. 주택가가 끝나는 지점, 산 밑 건물들 사이에 자리 잡은 집이었습니다. 2013년, 오래전이라면 오래전인데, 그 집의 여러 가지가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그 후, 저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울 게 분명한, 좁고 작은 단층집 앞에 멈추곤 했습니다. 일동, 부곡동, 월피동, 와동, 아파트가 아닌 다가구 주택 단지에, 그 집들은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1980년 초중반 신도시 개발과 함께 일률적으로 세워진 집이었습니다.  빠른 시간 안에, 막 지어진, 비슷비슷한 모양으로 지어진 집과 마당이 있는 그 집의 이름은 흔히 개집이라 불립니다. 막 지었다는 '개'입니다. 개집이라는 단어가 들어맞을 수밖에 없는 집이었습니다.


1층 위로 2층을 올린 집, 나무와 양봉통이 있는 집, 쓰레기가 가득한 집, 꽃나무가 가득한 집,  주차장으로 사용되는 마당, 담으로 사용된 재료도 달랐습니다. 넝쿨, 건축 폐자재, 붉은 벽돌, 담이 없는 집. 요즘 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세 개의 개집을 사진으로 찍고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이라, 폰 카메라의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아서, 촬영 기술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겨울의 개집은 어떤 구도로 촬영해도, 매끈하거나 예쁘지 않습니다. 나뭇가지와 흙을 덮은 비닐과 밖으로 나와 있는 세간살이는 어딘가 지저분하고 때로는 쓸쓸해 보입니다. 그래도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세 개집을 찍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이었습니다. 두 집의 마당이 지난주 보다 더 정돈된 것 같았습니다. 마당 흙 색깔이 다르고, 이랑이 생겼습니다. 흙 두덕 한 편에 삽이 꽂혀 있는 걸 보니, 텃밭이 봄을 맞을 차비를 하나 봅니다. 그리고 한 집이 있습니다. 폐기 처분된 것으로 보이는 살림이 마당 여기저기에서 보였습니다. 플라스틱 양동이, 오래된 서랍장, 스티로폼 박스. 이사를 가는 건가, 이사를 간다면 이 집은 부서지는 건가, 이 집 자리에 필로티 건물이 들어설까, 아니면 상가 건물이 들어설까, 아니야 봄을 맞아 대청소를 하는지 몰라, 주인만 바뀌는 건지 몰라, 젊은 사람들이 이사 오는 건가.

개집은 개집입니다. 개집은 이름 그대로 개집이라, 사람이 살아가기에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춥고 덥고 외부 게 그대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도시가스가 아닌 엘피지 가스가 설치된 집들도 있습니다. 그 집을 살아가는 사람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개집은 살기 좋은 집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걱정이 되고, 궁금하고, 아쉽고, 아니었으면 좋겠고, 사라진다면 잘 보내야지 싶습니다.


아마 저는 이 집을 좋아하나 봅니다.


집을 좋아하게 된 건, 2013년 길을 가다 만난, 텃밭이 있던 그 집 때문입니다. 그 집은 지금 없습니다. 그 집 자리에는 공동 주택이 있습니다.


왜 좋아하게 되었는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유가 그리 중요할까 싶습니다. 그 집은 우연히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불쑥, 갑자기 그렇게 찾아왔습니다.  


문화, 예술, 사려, 우정, 사랑. 그 모든 것들에 이유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대상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낡고 오래된 집을 좋아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까요. '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왜 좋아하는지, 좋아하는 나를 분석하고 살펴보는 일은 필요는 있으되, 재미는 없는 일 같습니다.


그냥 불쑥, 갑자기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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