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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pr 08. 2022

고양이 자두의 집

다른 것들의 집, 너의 집

이동 케이지에서 나온 자두는 내가 준비한 새 이동 가방에 들어갔다. 순식간이었다. 목과 등과 꼬리를 봤나 했는데 어느새 보이지 않았다. 


3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다. 이동 가방이 텅텅 비었다. 자두는  방 한쪽 구석 플라스틱 통과 플라스틱 통 사이 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밤 사이 우당탕 소리가 나고, 자두는 바구니에 갇혀버리고, 자기를 도와준 내게 하악질을 했다. 아침이 되자 자두가 보이지 않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한참 자두를 찾아 헤매는데, 싱크대와 바닥 사이 한쪽에 구멍이 보였다. 다 막혀 있는지 알았는데, 구멍이 있었다. 자두가 발로 차서 엎은 건지, 원래 그랬는지, 나무 칸막이가 저기 먼지 덩이 사이에 놓여 있었다. 자두는 보이지 않았다. 물론 자두야 불러도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가로로 긴 나무 칸막이를 떼서 보니, 반대편 구석에, 주홍과 까만 털이 보였다. 싱크대 밑은 아늑하고 캄캄하고 좁다. 고양이가 딱 좋아하는 장소다. 하지만 먼지와 시멘트 가루가 가득하다. 자두는 고양이 쉼터에서 감기에 걸려 약을 먹었다. 


자정이 넘어 후다닥 소리가 나서 나가보니 자두가 거실 의자 밑에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때다 싶어서, 얼론 싱크대 구멍을 나무 칸막이로 막았다.  헐렁했다. 자두가 건드리면 또 넘어질 것 같았다. 나무 칸막이의 경계 면을 우선 집에 있는 큰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였다. 


자두는 밤새 울었다. 그 구멍을 발로 차다가, 그 소리에 나온 나를 보더니 얼른 방으로 다시 도망쳤다. 계속 울었다. 캄캄하고 좁고 아늑하고 따뜻한 싱크대 바닥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다.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모른 채 이부자리에서 나왔다. 자두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방에 자두가 없었다. 싱크대 바닥을 확인했더니, 테이프로 잘 고정되어 있었다. 어디 갔지, 어디 갔지, 책꽂이 위와 냉장고 위도 보았다. 어젯밤, 탈출을 하려 했는지, 유리 창문에 거미처럼 붙어 있는 자두를 목격했기에, 집을 나갔을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불안했다. 소리 났잖아, 자두는 집에 있어, 어디 갔을라고, 아 어디 갔지, 자두야 하고 이름을 부르면 더 도망갈 텐데, 심장이 쿵쿵 뛰었다. 


그런데 그런데 자두는 거실 앞, 내가 마련한 숨숨집 안에 있었다. 햇빛이 잘 드는 창문 가에서 놀다가 쉬라고 마련한 조그만 숨숨집이었다. 숨숨집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집을, 나를, 낯설어하는 자두가 내가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실에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꾹 참았다. 자두가 또 놀랠지도 모르니까. 자두는 몇 번 울더니 꼼짝없이 숨숨집 안에 있다. 고양이를 안정시킨다는 음악을 틀었더니 울음소리도 내지 않았다. 아침에 준비한 밥은 먹을 기미도 하지 않지만, 화장실 모래 안에 오줌도 눴다. 고양이의 오줌 뭉치, 감자라고 불리는 그 뭉치가 사랑스러웠다. 


자두는 길냥이 가족 중 한 고양이였다. 일 년을 넘게 엄마와 남자 형제들 사이에서 잘 컸다. 길에서. 올해 2월 중순, 누군가 고양이 먹이에 독약을 넣었고, 자두의 가족은 모두 죽었다. 자두도 무척 아팠다. 아픈 상태로 구조되었다. 그리고 살아났다. 자두는 1년 3개월 정도로 추정되는 성묘다. 1년 3개월을 길에서 살아갔다. 먹이를 챙겨주는 캣맘도 있지만,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병원을 나온 자두는 갈 곳이 없어서, 고양이 보호소에 있었다. 보호소 환경은 열악했다. 자두는 다른 고양이와 좁은 방에 있다가, 케이지에 혼자 있기도 했다. 길냥이 생활을 해서 그런지, 원래 성품이 그런지 다른 고양이와 잘 지내는 순한 아이다. 순하기 때문에, 겁이 많고, 겁이 많아서, 예민해졌다. 


그 조그만 숨숨집이 계속 자두의 집이었으면 좋겠다. 숨숨집에서 잘 지내다 보면, 거실에도 나올 테고, 거실에서 내 방으로 가기도 할 테다. 


그림책 <이 집을 나를 위한 집>의 문장이다. 


차 상자는 티백의 집

찻주전자는 차의 집

네가 차를 한 잔 따라주면 난 그걸 홀짝 마셔.

그럼 난 찻집으로 변신하지!


종이 상자는 크래커의 집

왕궁은 왕의 집

내가 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많은 물건이 집이 돼.


만일 네가 생각하기 시작하면

넌 그게 진짜인 걸 알게 될 거야.

네가 다른 것들의 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많은 물건이 너에게 집이 된다는 걸 말이야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는다. 

네가 다른 것들의 집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할수록, 더 많은 물건이 너에게 집이 된다는 건 말이야. 


자두도 언젠가 그러겠지. 밥그릇은 사료의 집, 물그릇은 물의 집, 책꽂이는 책의 집, 책상은 컴퓨터와 필기구의 집, 침대는 커다랗고 낯선 생명체의 집이라는 걸 알겠지. 그때쯤 그 집들은 모두 자두의 집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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