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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깔깔마녀 Apr 13. 2022

모두의 존엄

반지하와 길

1970년 인구 10만 명 이상 도시에서 200미터 제곱 이상의 건물을 지을 때는 지하실을 설치하도록 함. 주거용 아님. 지하 벙커 혹은 창고 등의 용도로 쓰임


1981년 폭발적인 대도시 유입 인구의 주거를 위해, 지하실을 주거 공간으로 양성화. 주거용으로 사용해도 연면적에 포함되지 않도록 규제 완화. 


1984년  층고의 2분의 1,  반만 묻혀 있어도 지하로 인정함. 반지하의 탄생.


1980년대 후반  다세대·다가구 건물이 합법화되면서, 급속도로 반지하를 둔  3~4층짜리 건물이 지어짐. 


2000년 1층에 주차장을 두면 연면적에서 빼주고 한 층을 올려지을 수 있도록 건축법 개정. 


현재  1층에 주차장을 둔 일명 필로티 건물이 다가구 주택의 대세.   



아들은 반지하 집에서 생애 첫 일 년을 지냈다. 유독 잘 우는 아이였는데, 반지하 계단을 올라가 담장 밑 햇빛을 보면 울음을 멈추곤 했다. 친정 엄마는 아들이 울었던 이유가 반지하여서라고 말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아들은 반지하 집에서 울기만 하지 않았다. 창문 위로 보이는 주인집 마당의 초록 잔디에 방실 방실 웃고, 어두운 방에서 나와 편안한 낮잠을 잤다. 


건너편 집에도 반지하가 있었다. 아들을 안고 저녁 산책을 나가는 길, 내 눈과 건너편 반지하 젊은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나와 그 남자 모두 동시에 눈을 피했다. 그날부터 나는 길을 걸으면서 반지하 쪽으로 눈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특히 저녁에는 더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과 사무실이 자리 잡은 동네에는 3층, 반지하를 포함하면 4층 건물이 많았다. 어떤 이유였는지,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서 반지하 문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방과후에 와서도 몇 번 반지하 문을 열었다. 물 냄새가 났다. 


도서관에서 마을 정원 만들기 이런 걸 했다. 다세대 건물과 다세대 건물 사이에 틈새 정원을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건물 주인이 지원을 하면, 건물 주인과 도서관이 함께 의논해서 마을 정원을 만드는 일이었다. 건물 주인은 좋아했다. 식물을, 꽃과 채소 기르기를 좋아하는 분도 있었고, 집 값이 오르리라 기대하는 분도 많았다. 그때 나는 한 사람이 지닌 여러 모습이 무엇인지 배웠던 것 같다. 


어느 날이었다. 반지하에 사는 임대인이 정원을 없애라고 건물 주인에게 항의했다. 정원 때문에 벌레가 들끓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바람에 불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건물 주인이었던 중년의 선생님은, 그때 우리는 그들을 선생님이라 불렀다, 셋방 살이 하는 주제에 말이 많다고 했다. 


두 가지가 나를 엄습했고 괴로웠다. 건물의 주인은 누구인가, 건물의 주인은 그 건물을 짓고 임대를 하는 이 하나일까, 건물의 주인은 그 건물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아닌가, 전세이든 월세이든 그 건물 사람은 정당하게 돈을 지불하고 그 건물을 사용한다. 

또 하나의 문제, 괴로움의 강도로 치면 훨씬 더 강한 문제. 항의를 하는 반지하 임대인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었다. 도서관이 만든, 마을 공동체를 위해서, 마을 환경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그 틈새 정원은 사람을,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잠을 자는 사람의 생활에, 안전에 위협적인 요소였다. 


몇 년 후, 나는 그 사무실에서 퇴사했다. 본격적으로 공동체, 마을, 주민, 이웃, 이런 단어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일동과 부곡동의 반지하는 사라지고 있다. 건물이 부서지고 신축되기도 하고, 반지하 집에 사는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반지하에 살았던 방과후 가구도, 임대 지원을 받아 1층의 깨끗한 집으로 옮겼다. 길을 걷다 보면, 반지하 방을 내놓는다는 벽보가 종종 눈에 띄곤 한다. 짐작컨대, 현재 반지하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공공의 임대 지원을 받기도 힘든 조건에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정재로 115 건물의 반지하는 거의 지하와 가깝다. 창문의 높이가 반이 아니다. 잠깐 출입구 사이로 건물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지하 혹은 반지하에 사람이 사는 것 같지 않았다. 정재로 115와 115-1 사이는 길이 있다. 보통 다가구 주택과 다가구 주택 사이는 담장이 있다. 길이 아니라 115 건물의 사유 공간인 셈이다. 어떤 이유인지 115 건물은 담장을 세우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이 길을 종종 걷는다. 


봄이라 이 길 왼쪽 화단의 흙이 고르게 정리되어 있었다. 고른 흙 위에 어떤 식물이 자랄지 궁금해졌다. 화단은 건물과 반대편 쪽에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눈길은 건물 쪽이 아니라 화단을 바라보게 된다. 길을 걷는 나 같은 사람의 눈길이 어디에 가야 할지, 건물은, 화단은 알고 있었다. 


모두의 존엄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의 존엄을 추구하지 않는 건, 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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