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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버 May 30. 2020

프렌즈는 가장 환상적인 시트콤

넷플릭스 시트콤 <프렌즈> 리뷰

시작은 별 거 없었다. 출근하기 전에 혹은 피곤할 때 뭔가 보고 싶은데 많은 감정을 쓰고 싶진 않을 때 볼 만한 어떤 것! 그 때 눈에 들어온 게 프렌즈 시즌1이었다. 내 기준 밀레니얼 노스탤지어의 끝판이기도 했고, 누리끼리하게 빛바랜 필름 카메라의 색감과 과하게 넣은 앞머리 뽕, 아직은 앳된 얼굴들과 과한 리액션을 보는 재미가 있어서 적잖이 마음에 들었다.

젊다 젊어

캐릭터도 나쁘지 않았다. 많은 20대 중후반의 사람들이 그렇듯,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나와 사회적으로 처한 상황이 비슷해서일까 누구 한 명을 동경하거나 미워하는 일이 없었다. 이혼가정에서 외롭게 자란 챈들러, 오빠와의 은근한 비교를 당하며 살아온 모니카, 아내가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하고 이혼당한 로스.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다가 원치 않는 결혼까지 할 뻔한 레이첼, 작은 역할이라도 따내기 위해 오디션을 전전하는 조이, 그리고 그 누구보다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겪은 피비까지. '누구나 결점 하나쯤은 있지' 정도가 아니라 그냥 결점투성이인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공감이 되다 못해 '난 저 정도까지는 아니다' 싶은 알량한 우월의식까지 생긴다. 그게 위로라면 위로라고 할 수 있겠다.

귀여워..

시즌 3을 볼 때쯤이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싸우고 화해하는 모습이 너무도 성숙하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치부를 안다는 건 가장 큰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치명적인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친구들의 관계가 그렇다. 서로가 살아오면서 축적한 편견들과 자격지심으로 상대방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다. 이렇게 감정들이 미끄러질 때 트러블은 발생한다. 보통의 현실에선 손절하거나 점점 멀어지거나 누군가 한 명이 속을 끓일테다. 하지만 프렌즈에서는 그 회가 끝날 즈음엔 서로의 잘못을 인정하며 ‘내가 미안했다'라며 뜨거운 우정의 포옹을 나눈다.


프렌즈는 여기서 판타지물이 된다. 나는 그렇지 못한데 쟤들은 화해마저 너무 쿨한 거다. 여기서 말하는 쿨함은 보통의 쿨함과 조금 다르다. 본인의 찌질함을 숨기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역으로 쿨해보인다. 치부를 한껏 발산하는 모습이 이상하게 매력적이다. 챈들러는 조이의 여자친구와 키스를 했는데 우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관짝에 들어가 사과를 한다. 로스는 결혼식 선서를 하던 중 레이첼의 이름을 외쳐버리는 탓에 아내 에밀리에게 수치심을 줬는데, 용서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아파트까지 팔고 영국으로 갈 준비를 한다. 현실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형태는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많이 다르다.


그래서 '쿨 강박'이 있는 나에겐 프렌즈는 환상적이었다. 자신의 추함을 남들에게 지적당하고 '그래 난 그렇지'라고 쉽게 고개 끄덕일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몇이나 될까. 아끼는 사람을 놓치지 않으려고 저 정도까지의 수고를 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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