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by 유명운

주인집 딸이었던 혜연이는 심보가 못된 계집애였다. 그 못된 심보만큼이나 얼굴도 사납게 생겨서, 가늘고 길게 찢어진 눈초리가 치켜 올라간 얼굴은 누가 봐도 그 고약한 성격을 알 수 있는 상이었다. 또한 영악하다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한, 때때로 드러나는 악마적 속성은, 과연 이 애가 어린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구석이 있었다.


혜연이는 나보다 한 살 어렸지만, 늘 나를 자기 밑에 두려 했고, 꼬집고 할퀴는 데는 이유가 없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오면 나부터 찾았다. 그냥 와서는 꼬집고 할퀴었다. 심지어 내가 엄마랑 함께 있을 때조차 자기 할머니 손을 이끌고 와서 내 얼굴에 손톱자국을 냈다. 하지만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입장이라 엄마는 크게 따지지 못했고, 오히려 나를 다그쳤다. 혜연이가 꼬집으면 나도 꼬집고, 혜연이가 할퀴면 나도 할퀴고, 혜연이가 밀면 나도 밀라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워낙 순둥이였던 나는 누굴 때릴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맞거나 괴롭힘을 당한 후에도 우는 게 전부였다. (그때 나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어른들에게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었겠지만-, 내가 혜연이를 때리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나의 분노를 제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말하면 어이없다고 웃을 수도 있겠지만, 그때 나는 정말 심각했다. 내가 나의 분노를 폭력으로 표현하면, 혜연이가 내 주먹을 맞고 죽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나는 밖에 나가는 걸 꺼리게 됐다. 문 밖에는 늘 혜연이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집에 있는 동안 나는 거미줄에 매달려 있는 거미를 보는 게 낙이었는데, 딱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아빠는 두 분 모두 회사에 다니셔서 저녁때가 되어야 돌아오셨고, 집에 있는 오래된 장난감들엔 이미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매일 같이 보던 거미에 특별히 관심을 갖게 된 건, 엄마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였다. 어느 날인가, 거미줄에 매달린 거미를 향해 물총을 쏘아대던 나에게, 엄마는 집안에 있는 거미는 죽이는 게 아니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유를 물어본 나에게 엄마는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해주지 못했지만, 어쨌든 그 때 이후로 나는 거미를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신비감까진 아니더라도, 뭔가 함부로 할 수 없는 영험함 같은 게 있진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신기한 건, 의외로 거미줄을 보는 일이 지겹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어떨 땐 거미가 아주 오랫동안 죽은 듯이 꼼짝도 안 할 때도 있었지만, 거미가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나는 거미줄을 보는 일에 싫증을 내지 않았다. 방사상(放射狀)으로 뻗어 있는 거미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최면에 걸린 듯한 느낌에 빠져들기도 했고, 약간의 환각상태를 경험하기도 했으며, 또 그러다가 잠이 들기도 했다.


그날도 나는 엄마가 차려 놓은 밥을 먹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거미줄을 보고 있었다. 아침에 보는 거미줄엔 항상 이슬이 맺혀 있어서 좋았다. 집 구조 자체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둡고 침침했지만, 희미하게나마 들어오는 햇빛이 비추는 거미줄의 이슬은 뭔가 싱그러운 느낌을 주었다.

하루 종일 거미가 보여주는 모습은 크게 네 가지였다. 죽은 듯 움직이지 않는 모습, 부지런히 거미줄을 뽑아대며 집을 짓는 모습, 거미줄 끝에 매달려 오르락내리락 줄타기를 하는 모습, 그리고 거미줄에 걸린 사냥감을 향해 서서히 다가가는 모습..

거미줄에 정신이 팔려 있던 나는 눈앞에 서 있는 혜연이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 나랑 놀자.

단지 같이 놀자는 그 말이 내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더욱이 지금 집 안엔 내가 구원을 요청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혜연이에게 함부로 싫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었다. 혜연이는 혹시라도 내가 싫다고 할까봐, 그 사나운 눈초리를 한껏 내리고는 조곤조곤한 말투로 다시 말했다.

- 나랑 놀자. 안 괴롭힐게.

안 괴롭힌다는 말에 한두 번 속은 것도 아니지만, 싫다고 거절한다고 하더라도 그냥 돌아갈 년이 아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혜연이의 눈초리가 다시 제 자리를 찾기 전에 빨리 대답을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 알았어, 같이 놀게. 대신 정말 나 괴롭히면 안 돼.

- 응, 나가자.

나는 혜연이가 내민 손을 어색하게 잡고 끌려가듯 밖으로 나갔다.

혜연이는 평소와 다르게 조곤조곤 말하며 놀이를 주도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혜연이가 요구하는 대로 했지만, 그건 노는 게 아니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혜연이의 변덕과 짜증을 받아낼 준비를 하느라 긴장을 풀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며칠간 내가 밖에 나가지 않았더니 그동안 심심했었는지, 혜연이는 생각보다 오래 천사의 모습을 가장했지만 그것도 결국 끝가지 가진 못했다.

밖에서 소꿉놀이를 하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집 안으로 들어왔는데, 놀던 흐름이 끊겨서 그런지, 하던 놀이를 마저 하려니 서로 어색하고 민망했다. 게다가 가뜩이나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운 집 안은, 비가 내려서 그나마 들어오던 햇빛이 완전히 차단되는 바람에 음침하기까지 했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할 때, 혜연이가 대뜸 입을 열었다.

- 야, 너 바지 벗어 봐.

- 왜?

- 왜긴, 남편이 집에 들어오면 옷 벗고 자야지.

- ?..

- 빨리 벗어!

혜연이의 언성이 높아져서 내가 어쩔 수 없이 허리띠를 푸는데, 혜연이의 손이 내 바지를 덥석 잡아 내렸다. 나는 놀라서 한 손으론 팬티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론 고추를 가렸다.

- 팬티도 벗어.

- !

나는 나직이 말하는 혜연이의 명령에 무언가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걸 느꼈지만, 그게 무엇인지까지는 알 수 없었다.

- 우리 이제 그만 놀자.

내가 혜연이로부터 떨어지면서 바지를 추켜올리며 말하자, 혜연이의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다짜고짜 괴성을 지르며 내 머리채를 잡고 쥐어뜯었다. 이어서 주먹질과 발길질에, 꼬집기, 할퀴기, 물어뜯기.. 나는 내가 잘못한 게 뭔지도 모르는 채 혜연이에게 미안하다고 빌어야 했다.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후에 혜연이는 씩씩거리며 나갔고, 나는 영문도 모르고 당한 일이 억울해서, 그리고 혜연이에게 뜯기고 물린 데가 아파서 울고 있었다. 그런데 밖으로 나갔던 혜연이가 다시 들어와서는 바가지에 든 걸 나에게 쏟아붓는 것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얼굴에 똥물을 뒤집어썼고, 혜연이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서야 만족한 듯 똥바가지를 팽개치고 가버렸다. 나는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똥물을 닦아내며,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똥물은 옷에도 묻은 상태라, 엄마가 이 일을 모르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는 당하다 당하다 못해 이제는 똥물까지 뒤집어 쓴 아들 때문에 속이 무지 상하실 테고, 그 속상함을 못난 아들을 책망하며 풀 것이었다. 나는 똥물을 뒤집어 쓴 한심한 내 모습과 엄마가 속상해 할 모습을 생각하니, 화(火)라는 것이 나기 시작했다. 한번 화가 나기 시작하니, 한 살 어린 계집애 하나 당해내지 못해 똥물까지 뒤집어쓴 못난 내 자신에게 더 화가 치밀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얼굴을 닦다 말고 똥바가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변소에서 똥을 한 바가지 가득 푼 나는 혜연이네 집 안마당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혜연이는 우산을 든 채로 등을 보이고 마당에 쪼그려 앉아 있었고,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다가가서 혜연이의 시선이 닿는 곳에 발을 들이댔다. 나와 눈이 마주친 혜연이는 내 얼굴과 내 손에 들린 똥바가지를 번갈아 보더니, 뒤로 주춤 물러앉았다.

- 뭐야, 너?

나는 대답 대신 혜연이의 우산을 뺏어서 내팽개치고, 손에 들린 똥바가지를 혜연이의 머리 위에서 천천히 기울였다.

- 뭐야 너! 저리 안 가! 너, 우리 할머니한테 일른다.

혜연이는 똥바가지를 피하려고 쪼그려 앉은 상태로 뒷걸음질치며 말했고, 나는 또 다시 협박에 굴복해서 종속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하며 혜연이를 구석으로 몰고 갔다. 평소와는 다른 내 눈빛과, 협박에도 전혀 꺾이지 않는 내 기세에, 혜연이는 적잖이 당황한 듯 보였다. 똥바가지를 든 내 손이 혜연이의 머리 위에서 점점 더 기울어지자, 혜연이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내게 애원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교활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 어디 해 봐! 대신 너 우리 집에서 쫓겨날 줄 알아!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혜연이의 협박에 또 다시 굴복할 순 없었다.

- 좋아, 해 봐! 너 때문에 니네 엄마랑 아빠랑, 집도 없이 쫓겨나는 거 보고 싶으면..

쫓겨난다는 말은 무시할 수 있었지만, 혜연이 같은 못된 년에게 더 이상 굴복하지 않겠다던 내 의지는, ‘엄마 아빠’란 말 앞에서 순식간에 무너져 버렸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면서, 혜연이네 집까지 오기까지의 험난했던 여정이 떠올랐다. 그때였다. 길을 잃고 헤매던 비에 젖은 어린 양 뒤에 혜연이의 할머니가 나타난 건.


혜연이 할머니의 등장으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혜연이에게 똥물을 뒤집어썼던 나는 졸지에 혜연이에게 똥물을 뒤집어씌우려 했던 나쁜 놈으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뒤집어쓴 똥물에 대해서는 어떤 해명도 통하지 않았다. 엄마가 오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내 말을 믿는지 안 믿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주저하는 사이, 혜연이 할머니가 등장했던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엄마는 퇴근하자마자, 엄마가 오기만을 벼르고 기다리던 혜연이 할머니에게 호된 꾸중을 들었고, 앞뒤 정황도 가리지 않고 일단 죄송하다고 빌기부터 했다. 방으로 돌아온 엄마는 몹시 지쳐보였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회사에서 돌아오자마자 영문도 모른 채 주인집에 빌어야 했고, 집 안엔 똥물을 뒤집어쓴 못난 아들이 벗어 놓은 옷가지가 그대로 있었다. 엄마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는,

- 도윤아, 정말 네가 그랬어?

- 아니, 혜연이가 먼저..

엄마는 물을 데워서 나를 씻겨주셨다. 아무래도 똥인지라, 나 혼자 씻은 것만으론 마음이 놓이지 않으셨던 모양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혼나거나 맞지 않아서 좋았지만, 아무 말 없이 나를 씻기는 엄마의 얼굴에서 지친 서글픔 같은 걸 보았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엄마는 나를 다 씻기고, 똥 묻은 옷을 빨고, 저녁을 지었다. 평소보다 늦은 저녁이었지만, 아빠가 오지 않아서 엄마랑 둘이서만 밥을 먹었다. 아빠는 오늘도 야근을 하시고, 아마도 내가 잠든 후에야 들어오실 터였다. 엄마는 고단하셨는지, 평소보다 일찍 자리를 펴셨다. 불을 끄고 자리에 누운 엄마는 한동안 천장을 바라보시더니,

- 도윤아, 우리 이사 갈까?

- ?..

응, 근데 우리 돈 있어?..

엄마는 내 물음에, 여린 한숨을 들이마시고는 눈을 감으셨다.


다음날, 늦잠을 자고 일어난 나는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이미 엄마는 출근하신 뒤였고, 방에는 엄마가 차려놓은 밥상이 있어서 평소와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었지만, 뭔가 다른 느낌이 분명히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나가서 세상이 온전한 지부터 살폈다. 어제 내렸던 비로 맑게 갠 하늘과 쓰러지지 않은 멀쩡한 집들을 보면, 세상은 분명 온전해 보였다. 그러나 집안 분위기는 뭔가 달랐다. 그 뭔가를 찾아보려, 집안 구석구석을 면밀하게 관찰했지만, 결국 찾아낸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찾는 걸 단념하고 문지방에 앉은 나는 비로소 달라진 걸 알아챌 수 있었는데, 거미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거미줄은 분명 그대로 있었지만 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단지 거미가 사라졌다는 것만으로, 집안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지는 분위기를 설명하기엔 다소 억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을 접고 밥이나 먹으려고 방으로 들어가려던 나는 기겁하며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무언가 시커멓고 커다란 생물이 밥상 앞에 앉아서 여러 개의 긴 다리를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와서 앉아. 무서워하지 말고.

나직한 중저음의 목소리엔, 나의 긴장을 풀어주는 동시에 행동으로 옮기게끔 하는,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나는 그 정체불명의 생물이 시키는 대로 밥상 앞에 앉았지만 고개를 들어 마주보지는 못했다.

- 고개를 들고 나를 봐.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본 상대는 예상대로 거미였다. 나는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떨면서도 이성적인 사고로,

‘이건 분명 꿈일 거야.’

그런데 내 앞에 앉아 있는 거미는 내 생각까지 읽는 듯했다.

- 이게 꿈이든, 꿈이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지금 너와 내가 마주하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은, 네가 꿈에서 깨어나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거고.

거미는 나와 대화를 하면서도 쉴 새 없이 다리를 움직여서 밥을 입에 넣고 있었다. 그런데도 밥공기의 밥은 줄어들지 않았다.

- 너 혜연이가 밉지?

- !

- 솔직하게 말해도 돼. 나는 너를 혜연이로부터 구해주러 온 거니까. 아니, 엄밀히 말하면 혜연이네 집을 심판하러 온 거지.

- ?

- 너는 아직 어리고, 사람 사이의 관계나 자연과 우주의 섭리에 대해 잘 모르니까 쉽게 말해 줄게. 우선 혜연이가 미운지 아닌지부터 말해.

- 미워.

- 그럼 혜연이를 볼 때마다, 네가 원하는 불행한 혜연이의 모습을 상상해봐.

- ?

- 대신 네가 상상하는 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것만 명심해.

- ?

- 내가 해줄 말은 그게 다야. 아마 언젠가 나를 다시 만날 날이 있을 거야. 그때, 네가 상상했던 것들을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이제 밥을 다 먹었으니 가 봐야겠다. 마지막으로 뭐 묻고 싶은 거 없어?

- ?..

- 그럼 난 간다.

거미가 문지방을 넘을 때,

- 이름이 뭐예요?

- 기껏 묻는다는 게 겨우 이름이야? 하긴, 넌 아직 어리니까. 아직까진 네게 없었지만, 이제 네가 깨어나면 갖게 될 힘. 그게 내 이름이야.

거미가 문지방을 넘어 사라지고 나서, 나는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했다. 내가 꿈에서 깨어난 것도 그때였다. 꿈에서 깨어난 나는, 문지방에 걸터앉아 문설주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아마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정신이 든 나는 집안 분위기부터 살폈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고, 공기마저 다르게 느껴졌던 몽환적인 분위기는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거미는?’

약간의 불안감과 긴장감으로 천천히 올려다 본 거미줄엔, 죽은 듯이 꼼짝 않고 붙어 있는 거미가 그대로 있었다. 비로소 완전한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던 나는 심한 허기를 느꼈다.


- 도윤아, 도윤아..

엄마가 깨워서 일어났을 때는 사방이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이상한 꿈을 꾸고 깨어났다가, 허기를 느끼고 밥을 먹은 것까지는 생각이 나는데.. 그 뒤로는 아무 기억이 없었다. 아무래도 밥을 먹다가 다시 잠든 것 같았다. 엄마가 퇴근할 때까지면 꽤 긴 시간인데, 그토록 오랜 시간 낮잠을 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 눈꺼풀은 무거웠다. 엄마는 나를 깨워서 저녁을 먹이려던 생각을 포기하고, 요 위에 나를 눕혔다. 다시 잠으로 빠져드는 혼미한 정신 속으로 문지방을 넘는 엄마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 얘가 여기다 풀칠을 했나, 뭐가 이렇게 끈적거리지?


다음날 눈을 떴을 때, 전날은 거미줄처럼 혼미하기만 했던 내 의식이, 오늘은 거미줄에 맺힌 이슬만큼이나 맑고 투명했다. 어두침침하기만 했던 실내로 들어오는 햇빛도 오늘은 유난히 밝아서, 밖에 나가서 놀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었다.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지, 혜연이를 만나는 두려움도 걱정이 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간 나는 맑게 갠 하늘에서 쏟아지는 싱그러운 햇살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인가 맑은 날씨조차 마음껏 누리지 못하고 지내온 것 같았다. 그게 언제부터였을까를 생각하려던 차에, 막대사탕을 입에 문 혜연이가 나타났다. 혜연이는 내가 밖으로 나온 게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에 문 사탕을 돌려댔다. 나는 혜연이의 등장에 조금 긴장했지만 굳이 피할 생각은 없었다. 혜연이는 특별한 목적지 없이 집을 나섰는지, 입에 문 사탕을 계속 돌려대며 내 앞을 떠나지 않았다. 혜연이의 눈에서, 나를 괴롭힐 방법을 찾고 있는 혜연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혜연이가 입에 문 사탕이 먹고 싶었다. 사탕을 사 먹을 돈이 없던 나는, 그래서 그 모습이 눈에 더 거슬렸다.

‘목에나 걸렸으면 좋겠다.’

혜연이는 여전히 내 앞을 떠나지 않고 사탕을 돌려가며 빨았는데, 이번엔 돌리다가 너무 깊숙이 넣었는지 갑자기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사탕 손잡이가 손에 들려 있지 않았다. 점점 얼굴이 붉어지며 숨이 넘어갈 듯한 혜연이의 모습에, 나는 당황하지도 않았고 당황해야 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지만,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앞에서 내게 구원을 청하는 듯한 혜연이의 눈빛을 보았을 때, 차마 그 눈길을 외면할 순 없었다.

‘그래도 죽으면 안 되겠지?..’

- 켁! 켁!

내 생각이 끝남과 동시에 혜연이는 두어 번 켁켁거린 후 사탕을 토해냈다. 이어 숨통을 트는 격한 호흡으로 공기를 들이마시더니, 생존을 확인하는 요란한 기침 또한 잊지 않았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자, 혜연이는 꽤나 놀랐었는지,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도망치듯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는 방금 전 일어난, 위험하면서도 황당했던 일을 지나치며 걷다가 걸음을 멈추었다.

‘설마?..’


혜연이의 목에 막대사탕이 걸렸던 사건이 있은 후, 나는 꿈속에서 보았던 거미가 나에게 준 능력을 사흘간 시험해 보았다. 그 결과 알아낸 사실들은, 첫째 혜연이와 혜연이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 둘째 무생물이나 동식물에게도 통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내가 가진 능력이 초능력은 아니라는 사실, 셋째 혜연이와 혜연이 가족을 직접 눈으로 보고 있을 때 상상해야만 능력이 통한다는 사실, 넷째 행복한 일에 대한 상상은 통하지 않고, 반드시 불행한 일을 상상해야만 능력이 통한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사실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혜연이 가족에 대한 단계적인 복수를 구상하고 있을 때였다. 웬일로 엄마보다 일찍 들어오신 아빠가,

‘도윤야, 과자 사 줄까?’

엄마 아빠 월급날 때나 먹을 수 있던 과자를, 그것도 두 개씩이나 들고 음료수까지 손에 든 나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어느 것을 먼저 먹을까하는 행복한 고민을 하다가, 마침내 선택받은 과자봉투를 뜯어 맛있게 과자를 먹고 있을 때 엄마가 들어오셨다. 그런데 엄마는 방에 누워계신 아빠와 내가 먹고 있는 과자봉투를 보더니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엄마의 추궁과 회사를 그만 뒀다는 아빠의 대답. 고성이 오고가다 엄마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셨고 아빠는 밖으로 나가셨다. 나는 맛있게 먹던 과자를 더 이상 먹지 못했고, 이미 먹은 것들을 다 토해냈다. 나는 아빠를 원망하며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어 밖으로 나갔다. 외식을 하고 오는지, 고기 냄새를 풍기며 혜연이네 식구가 들어오고 있었다. 순간 나는 혜연이네 식구의 행복한 모습에서 참을 수 없는 질투심을 느꼈다. 특히나 혜연이의 손을 잡고 앞서 가는 혜연이 할머니의 뒤에서, 귓속말을 하며 혜연이 엄마의 어깨를 다정하게 감싸는 혜연이 아빠의 모습과 수줍은 듯한 웃음을 지으며 혜연이 아빠의 품에 안기는 혜연이 엄마의 모습은 당장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을 만큼 꼴 보기 싫은 그림이었다.

‘우리 엄마 아빠보다 더 크게 싸웠으면 좋겠다. 아저씨, 확! 바람이나 나버려라.’


여느 때처럼 집 밖에 나와 앉아 따뜻한 햇볕을 쬐고 있었다.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혜연이 엄마가 예쁘게 화장을 하고 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뒤로 혜연이가 매달리며,

- 엄마, 어디 가? 나도 데리고 가.

- 아냐, 엄마 금방 올 거니까 잠깐만 놀고 있어.

- 나도 데리고 가.

- 아이, 안 된대두! 얘가 자꾸 왜 이래~

혜연이를 매몰차게 뿌리치고 가는 혜연이 엄마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바빠 보였고, 거기엔 어떤 설레임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화장한 혜연이 엄마의 얼굴은 정말로 화사하고 예뻤다. 그런 예쁜 아내를 두고 아저씨가 바람을 피우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 같았기에, 나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쓰리게 다가왔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내가 알 수 없는 불안을 담고 있는 혜연이의 눈빛이었다. 혜연이 눈에서 그런 불안감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혜연이는, 엄마에게 버림받은 화를 나에게 풀려는 듯, 표독스런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나에게 다가오던 혜연이가 넘어져서 얼굴을 다치는 상상을 했다.

- 으앙!~

내 상상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으로 자빠진 혜연이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울고 있었다. 나는 혹여 또 가해자로 몰리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넘어져 울고 있는 혜연이를 비웃으며 범죄 현장을 유유히 벗어났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집 안에만 박혀있지 않았다. 혜연이가 두렵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일부러 다가가서 괴롭힐 필요도 없었다. 먼저 시비를 걸어오는 혜연이를 그저 머릿속으로 응징하기만 하면 되었다. 나를 괴롭히려다 몇 번 큰 코를 다친 혜연이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건 어쩌다 마주치는 혜연이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이제는 오히려 혜연이가 나를 피하고 있었다. 그래서 밖에 나가는 걸 더 즐기게 되었다. 슬며시 나를 피하는 혜연이의 반응이 재미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날도 혜연이의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밖에서 혜연이가 눈에 띄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 엄마, 가지 마. 가지 마~

- 얘가 도대체 왜 이래? 엄마가 어디 도망가니? 너 왜 그래?

- 엄마, 가지 마~

혜연이는 엄마의 물음에 대답은 않고, 다짜고짜 엄마 팔에 울며불며 매달렸다. 혜연이 엄마는 혜연이를 떼어놓으려고 악을 쓰기도 하고 매달린 손을 뿌리치기도 했지만, 혜연이는 완강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바짝 약이 오른 혜연이 엄마는 신발을 벗어서 혜연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매를 맞으면서도 엄마 팔을 놓지 않았던 혜연이는 결국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고, 혜연이 엄마는 도망치듯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나는 처음 보는 모습에 놀라며 혜연이가 불쌍하게 느껴지는 마음이 들려고 하자, 똥물을 뒤집어썼던 날을 떠올리며 일말의 측은지심마저 몰아내 버렸다. 그때, 시장에 다녀오는 길인지 손에 하얀 비닐봉지를 든 혜연이 할머니가 나타났고, 혜연이 할머니는 주저앉아 있는 혜연이를 일으키기가 무섭게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 뭐야? 네가 그랬어? 혜연아, 누가 그랬어? 쟤가 그랬어?

혜연이는 대답 대신 꺽꺽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저었다. 그것 역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없던 일까지 만들어 내서 나를 모함하던 혜연이가.

혜연이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나를 쳐다봤는데, 그 눈빛엔 뭔가 할 말이 있다는 듯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그날 밤, 혜연이네 집은 시끄러웠다. 혜연이 할머니의 고성과 혜연이 엄마의 울음, 그리고 혜연이 엄마를 편드는 혜연이 아빠의 고성..


- 네가 했지?

- ?

- 너, 어떻게 한 거야?

- 뭘?..

- 나 다치게 한 거, 그리고..

우리 엄마 춤바람 나게 한 거.

- !

다음날, 내가 알지 못했던 사실까지 말하며 나를 추궁하는 혜연이의 눈빛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 너밖에 없어. 빨리 말해. 네가 했지?

나는 혜연이의 말에 두 번 놀랐다. 하나는 혜연이 엄마가 춤바람 났다는 사실, 또 하나는 자신한테 일어나는 모든 불행의 원인이 나한테 있다고 확신하는 혜연이. 나는 그 모든 걸 확신하고 나늘 추궁하는 혜연이가 섬뜩했다. 그렇지만 나는 태연하게 모르는 척했다. 그러자 혜연이는 순식간에 나를 넘어뜨리고 내 목을 졸라댔다.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나는 그대로 당할 수밖에 없었고, 어느새 혜연이의 기다란 손톱이 내 목을 파고들었다. 혜연이의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는 정말로 나를 죽일 기세였다.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낀 나는 본능적으로 혜연이를 밀쳤다. 그동안 혜연이의 기에 눌려 한번도 제대로 써보지 못한 힘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불행을 부르는 상상의 힘 없이 오로지 자력으로 혜연이를 물리치는 순간. 처음이었다. 나도 놀랐고, 내 힘에 밀려 뒤로 나자빠진 혜연이도 놀라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나는 상상의 힘 없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한 자부심으로,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본래의 힘을 되찾은 것에 대한 자신감으로 온몸에 새로운 기(氣)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반면 혜연이는 처음 일어난 일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내 다시 내게 달려들려다, 여느 때와는 다른 나의 기에 눌려, 그 사나운 눈초리를 누그러뜨리고 잠시 동안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 돌아서서 가버렸다. 그때 나는, 혜연이의 입에서 나오진 않았지만, 그녀의 눈에 담겨 있던 말을 읽을 수 있었는데..

- 부탁이야, 내가 잘못했어. 제발 그만해..


그날 이후로 혜연이를 자주 볼 수 없었다. 전과 다르게 집 밖에 잘 나오지도 않았고, 어쩌다 보는 얼굴엔 짙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 혜연이네 집에선 밤낮으로 고성이 끊이지 않았는데, 낮에는 혜연이 엄마와 할머니의, 밤에는 혜연이 할머니와 아빠의 고성으로 조용할 날이 없었다. 언제가부턴 쌍소리만 오가던 집 안에서 가구나 집기가 부서지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는데, 그건 혜연이 아빠의 싸움 상대가 혜연이 할머니에서 혜연이 엄마로 바뀌고 나서부터였다. 그리고 며칠 뒤, 집 나간 엄마를 애타게 찾는 혜연이의 울음소리가 동트기 전의 새벽 공기를 갈라놓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끓는 슬픔이 담긴 혜연이의 울음소리를 듣고서야, 비로소 나는 내가 설계한 불행의 결과에 대해 죄책감과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내가 정신을 차리고 잘못된 상황을 되돌리기 위해 거미줄을 올려다보았을 때, 거미는 이미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고, 늘어진 거미줄만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혜연이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우리 식구는 이사를 했다. 혜연이 엄마가 집을 나갈 때 재산을 몽땅 챙겨가서, 혜연이네 집이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다행이 때맞춰 아빠가 다시 취직했고, 마침 이사 갈 마땅한 곳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식구는 갑자기 닥친 위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

내가 혜연이를 우연히 다시 본 건 그로부터 2년 후였다. 나는 2학년이 되었고, 비록 작긴 했어도 엄마 아빠가 ‘우리집’을 사서 이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혜연이는 할머니가 끄는 리어카를 뒤에서 밀고 있었는데.. 이사를 하던 모양인지, 리어카에는 살림살이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이제 1학년이 된 혜연이의 책가방과 함께 나의 후배임을 알게 하는 교모(校帽)도 놓여 있었다. 혜연이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혜연이 엄마가 집을 나간 뒤 술주정뱅이에 폐인이 되었다는 소문을 기억나게 했다. 혜연이는 나를 보고도 부끄러워하거나 고개를 돌리지 않았는데, 이미 그런 단계는 예전에 지났다는 듯 체념한 얼굴이었다. 사납기 그지없던 눈초리도 한껏 누그러져 있었는데, 어쩐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마주친 눈에서, 2년 전.. 혜연이가 입 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내가 읽을 수 있었던 말을 상기할 수 있었는데, 그건 지금의 내 입에서 나올 말과 다르지 않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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