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레이리스트#5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 질 때가 있어 by. 가을방학
잠을 설쳤다.
요즘 잔기침에 몸이 조금 안 좋기도 했지만 새벽에 자꾸 깬 적은 없었다. 피곤으로 어깨가 묵직했지만 그래서 더 억지로 몸을 일으켜 베란다를 열었다.
"음."
스스로 이런 소리를 냈다는 것에 놀랄 새도 없이 다시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내가 좋아하는 비가 살짝 적신 상쾌한 아침이다. 잠을 설친 것이 싹 가신 듯했다. 기분이 좋아 그녀에게 카톡 한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은 유쾌하지 않았다. 워낙 비를 싫어하는 그녀는 비 한 방울이라도 맞으면 몸서리를 친다. 고작 한 방울일 뿐인데 웬 유난일까.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평소보다 조금 일찍인 오후 8시쯤에 퇴근을 했다. 사실할 일이 많지도 않았을뿐더러 비가 살살 내리는 밤의 산책을 놓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마침 그녀에게서 알바를 마쳤다는 카톡이 왔다. 밖에 비가 오냐는 물음에 '맞고 다닐 만해'라고 적었다가 다시 지우고 '응, 우산 있어?'라고 보냈다. 다행히도 우산은 있나 보다. 집에 가기 전에 얼굴이나 한 번 보자고 말하고 그녀를 기다렸다.
매번 알바를 마치고 만나게 되는 그 횡단보도에 서있는 그녀를 보고는 우산을 들고 나란히 섰다. 우리는 꽤 오래 사귀었지만 아직도 같은 우산 밑에 나란히 서는 것이 어색했다. 그녀가 비 오는 날을 싫어해서 비 오는 날은 같이 데이트한 적이 없어서였을 수도 있다. 어색하게 엉거주춤 걷는 와중에도 그녀에게 빗방울이 떨어지지 않게 노력은 했지만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같이 걸었고 나는 이제 버스를 타야 했다.
"잘 가."
그 말이 왜 이렇게 아쉬웠는지. 순간 그녀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 외투는 이미 조금 젖어있고 비 한 방울도 용납 안 하는 그녀는 이런 내가 안는 것이 싫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그녀가 악몽을 꾸고 아직도 자신을 좋아하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질문에 순간 화가 났지만 이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인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지 못한 다는 것은 큰 상처가 된다. 숫기 모자란 내가 그녀의 사랑에 부응하지 못한 탓이라 생각됐다. 하지만 그녀가 이것 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비 내리는 날 그녀를 꼭 안아주지 못한 것은, 내가 더 이상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혹시라도 비에 젖은 채 안는 것을 걱정해서라고.
그녀가 작별인사를 하고 우산을 고쳐 쓰고 뒤돌아 걸어갈 때에 쉽사리 발을 떼지 못했던 것은,
그때라도 달려가 안아볼까라고 고민하고 있던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