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Zoltan Tasi on Unsplash)
제작년 블록체인 열풍이 온 대한민국을 휩쓸고 지나갈때, 누구나 아무 코인만 붙잡고 존버타고 있으면 수십배의 수익을 안겨주던 그 시절, 난 디자이너로서 댑 (DApp, Decentralised Application)의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물론 나도 여러 코인을 붙잡고 존버를 타긴 했다. 지금까지 타고 있는게 문제긴 하지만…)
소프트웨어 디자이너들의 대 변혁기를 구분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순전히 개인적인 구분 주의, 주로 소프트웨어 인터페이스 디자이너들에 국한된 이야기).
1) MS도스 시절
이 시절 소프트웨어 디자인은 그저 컴퓨터에 설치해서 실행하는 프로그램류의 인터페이스 디자인이 대부분이였다 (오피스 프로그램, 게임 등). 사실 게임쪽 아니면 OS자체도 명령어 기반이던 시절이라 디자이너가 디자인할 꺼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였다 (개인적으로 한컴타자연습이 그시절 디자인 최고봉 아니였을까.. 전국민이 사용했었으니 ㅎㅎ).
2) 애플 GUI시스템 이후
애플이 처음으로(는 아니라는 의견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마우스를 기반으로 Click-to-Operate이라는 인터페이스 역사의 신세계를 연 이후 개인적으로 소프트웨어 디자이너의 신세계 역시 이때 부터 열리지 않았을까 싶다.
3) 인터넷 시대
설치형 프로그램만 디자인하던 디자이너들에게 웹 애플리케이션이라는 신세계가 열렸다. 설치형 프로그램은 한번 배포하고 나면 디자인 수정도 불가능하고 디자인 스펙도 규격화 되어있었던 반면, 인터넷 시대에서는 높은 디자인 자유도, 원할때마다 디플로이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유저 반응을 보고 디자인을 점진적 개선시키는게 가능해진 것도 이 시절 부터이다.
4) 모바일 시대
스마트폰과 모바일 앱으로 인해 수 많은 형태의 인터렉션이 탄생하였다. 반응형 디자인이라는 엄청난 노가다가 탄생한 것도 이때부터. 원래 인터넷보다도 역사가 긴 UX라는 단어를 나같은 문돌이들도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게 이 시대 최고의 업적이 아닐까…
자, 그리고 오늘 글의 주제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모바일 시대 이후 역사상 유례없는 대항해시대를 열어줄 디자이너들의 신세계는 바로 댑 (DApp)의 시대이다.
댑 (DApp, Decentralised Application)이란 기반이 되는 서버가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어플리케이션을 말한다. 쉽게 말해서 이더리움 기반 댑이면 댑에서 상호작용하는 데이터들이 이더리움 블록체인에 기록되고 불러내어 지는 어플리케이션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State of the DApps에 의하면 현재 이더리움, EOS, 스팀 등에서 돌아가는 모든 댑들을 다 합하면 총 2,667개가 존재한다고 한다. 애플 앱스토어에만 220만개가 넘는 앱이 있는 것과 비교해 보면 아주 초라한 숫자이기도 하고, 전체 댑들 중에서 게임, 거래소, 도박 등을 뺀 실 생활과 밀접한 영역의 댑들의 유저 수 비중은 40%도 안된다.
이처럼 댑 산업은 “산업"이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초라할 정도로 이제 막 태동하는 영역이긴 하지만 스마트폰 초창기 터지기 직전의 모바일 앱 산업과 같이 그 가능성은 측정 불가능할 정도이다.
2017-2018년이 느린 성능과 확장성의 한계에 봉착한 이더리움을 대체하는 메인넷 블록체인의 경쟁의 시대였다면 (물론 그 경쟁은 아직 끝나지도 않았고, 이더리움은 그 한계를 넘어설거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2019-2020년은 어떤 메인넷에서 유의미한 규모의 사용자를 거느린 댑을 탄생 시킬 것인지, 더 나아가서 하나의 거대한 영향력을 가진 킬러 댑이 필요에 맞게 여러가지 블록체인 기반을 사용하면서 mass adoption을 달성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블록체인, 암호화폐, 댑 이 3가지를 전혀 구분 못하기도, 구분할 필요도 없는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누가 블록체인 얘기를 꺼내면 고개를 끄덕이며 오늘 저녁 뭐먹을지를 고민하고 있을거다.
하지만, 댑 디자이너가 된다고 해서 위 3가지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예를들어 모바일 앱 디자이너에게 iOS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디바이스 토큰, 푸시알림등을 알아야 푸시알림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할 수 있는게 아닌것과 마찬가지 맥락이다.
개념적으로 블록체인 메인넷이 iOS, 안드로이드 같은 운영체제에 비교된다면, 그 위에서 돌아가는 댑 (DApp)은 수많은 모바일 앱들과 비교해 볼 수 있다. 즉, 디자이너로서 사용자가 ‘아이폰'을 쓰던, ‘안드로이드폰'을 쓰던 관계 없이 해당 앱에서 원하는 목적을 불편 없이 잘 달성하도록 댑의 사용성을 디자인 하는게 당신의 역할이다.
댑 자체가 아직은 블록체인에서도 완전 얼리어탑터에 속하는 일부 유저들만 사용하고 있다 보니, 일반 대중의 사용성을 고려해서 만들어진 댑들은 (필자가 운영중인 스팀헌트 (Steemhunt)를 빼고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즉, 거꾸로 말하면 이 바닥은 UX측면에서 디자이너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 처럼 쌓여있는, 이 바닥의 전설적인 디자이너가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는 상황이란 뜻이다. 스팀헌트 케이스를 예로 들어서 두가지만 들어보도록 하겠다.
일반적인 앱에서 회원가입이라 하면, 식별가능한 정보를 기반으로 (아이디, 폰 번호 등) 본인이 원하는 패스워드를 입력하여 가입을 신청하면, 해당 정보가 중앙 서버에 암호화되어 기록되고, 유저가 로그인을 하고 앱의 기능을 사용할때 마다 이 중앙 서버와 통신하는 방식이다.
반면, DApp에서는 우선 회원가입 부터 프로세스가 다르다. 블록체인상의 계정 생성을 요청하면, 해시화된 (그냥 외계어처럼 생긴 숫자/문자 조합) 아이디와 마스터키라는 것을 부여받는데, 이 마스터키는 어디 서버에서 관리해주는 개념이 아니고 나만 알고 있는 정보가 된다. 즉, 그 키를 잃어버리면 손쉽게 비밀번호 리셋이 가능한 일반 앱들과는 달리 댑에서는 열쇠따는 할아버지를 불러도 해결해 줄 수 없다.
심지어, 댑에서 주요 기능들을 사용할때 마다 이더리움기반 댑에서는 메타마스크라는 아래 그림처럼 생긴 요상한 여우를 자꾸 불러내서 인증을 해야만 기능 사용이 가능하다. 이건, 앱에서 기능을 사용한다는 것이 블록체인상에 트렌젝션을 기록한다는 의미가 있고, 이 트렌젝션을 전송하기 위해 인증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다.
스팀헌트에서는 이런 문제를 스팀 (Steem)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다음과 같이 해결하고 있다.
우선, 계정을 생성할 때 일반적인 댑들 처럼 블록체인 계정을 생성하는 주체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스팀헌트 웹사이트에서 아예 직접 블록체인 계정을 생성해 버린다. 유저 입장에서는 그저 일반적인 웹사이트에서 회원가입 하는 프로세스와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치는 개념이다. 즉, 댑에서 아예 스팀 블록체인의 계정 생성 과정을 구현하면서 겉으로 보이는 인터페이스는 일반적인 웹사이트 가입 과정과 동일한 단계로 모든 껍데기 및 용어를 디자인 한 것이다.
특히,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댑 사용자는 Bandwidth라는 생소한 개념이 발생하는데, 쉽게 말해서 블록체인이라는 공공재를 사용하기 위해 사용자가 사용량에 비례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개념이다. 이걸 일반 사용자에게 이해시키고 ‘댑 사용하려면 돈내야 함'이라고 설명했다가는 바운스율이 99.9% 이상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스팀헌트에서는 이 문제를 이런식으로 풀고 있다.
1. 신규 유저에게 블록체인의 기본적 기능 사용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스팀헌트가 직접 지불 (스팀 블록체인에는 스팀파워라는 스테이킹 토큰을 임대해주는 개념이 있다).
2. 유저는 우리가 비용을 직접 지불해 주고 있는지 조차 알 필요 없이 그냥 앱을 사용하면 된다.
3. 앱의 핵심 기능들을 유저가 접근하게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1번에 필요한 만큼의 스테이킹 토큰이 자동적으로 형성되도록 만든다.
4. 보통 한달 정도 되면 3번 과정을 통해 블록체인을 사용할 수 있는 기본 스테이킹 토큰이 쌓이게 되고, 그 시점에서 회사의 토큰을 뺀다.
유저는 이 1-4번의 과정을 알 필요도 없이 그냥 일반 웹사이트처럼 기능들을 사용하고, 이 모든 기능은 뒤에서 돌아가게 디자인 한 것이다.
현존하는 댑들이 지닌 가장 큰 문제가, 모바일 환경에서의 사용성이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더리움의 메타마스크, EOS의 스캐터 처럼 별도의 브라우저 익스텐션 혹은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여 누가 작성해 놓은 메뉴얼을 보고 따라하지 않는 한 아이큐 200이상의 초 천재들이나 가능할법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모바일 사용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실제로 EOS의 모바일 인증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개선시켰다는 Scatter 사용 방법에 대한 메뉴얼을 읽어보라.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들은 저거 한 반쯤 보다가 그냥 포기하기 딱 쉽다.
https://steemit.com/coinkorea/@donekim/mobile-scatter-qr-code
스팀 블록체인에는 위와 같은 앱 방식의 인증인 스팀 키체인과 웹 방식의 인증인 스팀커넥트라는 인증 툴이 있는데, 스팀헌트는 스팀커넥트를 활용하여 모바일에서도 100% 완벽하게 모든 온체인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디자인 하였다.
특히 위 동영상에서 보여지듯, 모바일에서 인증을 불러내는 과정, 컨텐츠 작성, 댓글, 업보팅 등의 모든 온체인 기능 전 과정이 모바일에서 막힘없이 돌아가고 있고, 모바일에서의 폰트, 아이콘, 반응형 컴포넌트, 툴팁, 각종 설명 등이 쾌적하게 표시되도록 수 없이 많은 사용성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일반적인 댑들과는 다르게 스팀헌트 댑 유저의 반정도는 꾸준하게 모바일 디바이스에서 나오는 중이다.
디자이너로서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슴 설레이는 영역인데, 댑 (DApp)이라는 개념 조차 아직 생소한 단계이기 때문에 그 어떤 댑을 만들더라도 유저들에게는 처음 경험해 보는 영역이다. 즉, 이 말은 디자이너로서 그동안에는 시도해 보지 못한 다양한 레이아웃 실험을 해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어플리케이션을 디자인 할때는 아무리 디자이너가 실험적인 레이아웃을 얹어보고 싶어도 유저들이 그동안 경험해온 일반적인 프로세스와 지나치게 어긋날 경우 높은 이질감으로 이탈율이 높아지거나 어려움을 호소하며 앱의 리뷰 점수가 나락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다. 또한 수 많은 앱들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빨리 사용자에게 가치를 어필해야 하기 때문에 심미적 아름다움 따위는 학교 프로젝트때의 추억으로 돌리고, 최대한 쉽고 직관적인 레이아웃을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댑 (DApp)의 세계에서는 이미 유저들 자체가 뭔가 새로운 영역에서 돌아가는 서비스를 사용한다는 인식이 있어, 전혀 새로운 디자인 실험에 대해 유저들이 매우 관대한 편이고, 오히려 새로운 레이아웃이 댑 사용의 충성도를 높이기도 한다.
실제로 스팀헌트의 경우 ‘테크 제품 디스커버리’라는 컨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그동안 일반적인 웹 서비스에서는 구경하기 어려웠던 ‘double-sided view’ 라는 레이아웃을 적용하였다. 이는, 데스크탑에서는 오른쪽에 메인 뷰를 위치시키고 왼쪽에 상세 뷰가 바로바로 뜨는 색다른 뷰 방식이고, 모바일에서는 왼쪽 뷰가 메인 뷰 위의 오버레이 뷰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이런 이중 레이아웃이 제품 디스커버리의 가치를 극대화 하는 이점과 함께 유저들이 그동안 보아온 웹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디자인 컨셉에서 느끼는 신선함을 통해 댑 사용의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이런 디자인 실험의 성공으로 인해 스팀 커뮤니티에서는 ‘스팀헌트 스타일'이라는 레이아웃이 다른 댑에도 적용되는 트렌드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지금까지 블록체인 산업에서는 주로 메인넷 경쟁, 기술 활용, 암호화폐를 둘러싼 버블 논쟁에 모든 사회적 이슈가 집중되어 왔고, 디자이너에게는 머나먼 세계의 이야기처럼 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2019년부터 블록체인 경쟁에서 ‘댑 (DApp)’이 차지하는 중요도가 높아지고, 스팀헌트와 같이 mass adoption을 목표로 하는 댑이 하나 둘씩 나타나면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디자이너들이여, 당신도 ‘댑’항해시대에 올라타서 대항해시대를 연 엔히크 왕자 (Infante D. Henrique)가 될수 있다!
글쓴이는 노마드태스크 (Nomadtask)라는 퀘스트 기반의 글로벌 마케팅 캠페인 플랫폼의 Co-founder 및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원래는 비즈니스를 전공하고 기획자로 일하다가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본업을 스타트업 파운더+디자이너로 전향했는데, 그 과정에서 득템한 다양한 스킬들을 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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