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변호사, 태평양 로펌 가다>(22) conflict of interest (2)
#1
컨플릭트가 그리 큰 문제일 줄 진짜 몰랐다. 알고 보니 이미 사무실에는 컨플릭트 체크 프로그램이 있었고, 모든 변호사들은 새로운 사건을 맡게 되었을 때 반드시 체크를 해야 해었다. 의뢰인과의 관계는 수시로 변하는 것이므로.
거래규모가 작은 기업과의 관계에서 컨플릭트가 생겼다면 적절히 양해를 구하면 되는데, 이번 건은 자문파트에서 아주 큰 고문기업인 조흥은행과의 일이라 문제가 커진 것이다.
나는 안절부절,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일단 두물기공의 친구에게는 컨플릭트 이야기를 하고 나는 더 이상 자문을 할 수도 없고, 우리 사무실이 이 사건을 맡아서 소송을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을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친구는 자기 땜에 내가 난처해 진 거 아니냐고 걱정을 했다.
#2
동기 정 변호사와 이 문제에 대해서 상의를 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지? 혹시 이런 건 들어본 적 있어?”
정변호도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로펌에서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는데, 그때 중요 고문기업 관계 끊어지고, 해당 변호사는 사표내고 나갔대. 피해가 꽤 컸었나봐.”
뭐? 이런 일로 사표까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들어온 로펌인데...
#3
난 그 날 이후 죄인인 듯 지냈다. 언제 또 호출이 올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냈다. 아, 예전처럼 그냥 돌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일에만 몰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고 징징댔던 것이 얼마나 철없는 일이었는지 절감했다.
그런데 그 이후 더 이상 날 찾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 더 불안했다. 나는 byh 비서에게 물어봤다. 그러자 byh가 비서가 나를 내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저어기요.. 이거 비밀인데요... 혼자만 알고 계세요. byh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셨는ㄷ데요...”
듣고 보니 이렇게 되었단다.
#4
byh는 투 트랙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단다. 한편으로는 조흥은행 측에 압박(?)할 수 있는 카드를 찾았고, 또 한편으로는 조흥은행 측에 사과를 하러 직접 가기로 했다.
당시 조흥은행의 가장 큰 고객 중 하나는 A대학교였는데(대학교에 어느 은행이 입점하느냐는 은행 입장에서는 아주 큰 이해관계), 그 대학교 사무처장이 byh 의뢰인의 형이었다고 한다.
일단 byh는 그 의뢰인에게 이 문제를 부탁해서, 그 형이 조흥은행 부행장에게 자연스레 이 문제를 거론하며, 자신이 아주 아끼는 변호사(byh)가 실수한 건데 너그러이 봐주면 좋겠다 라고 말하게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byh는 우리 자문변호사 칩들과 함께 조흥은행으로 건너가 부행장과 법무팀장을 직접 만나서 자기 실수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정말 잘못된 일이며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조흥은행에 대해서는 더 좋은 조건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우리측 변호사들과 조흥은행 부행장이 인사를 나누는 계기도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담당 비서가 전화 연락 등을 했기에 이 내막을 알고 있었던 것.
#5
와...
그랬었구나.
나 때문에 곤란했을 텐데 한편으로는 전략적으로, 한편으로는 아주 감성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냈던 것이다.
byh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내 새끼는 조질 때는 조지더라도 챙길 때는 확실히 챙겨야지.”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무슨 조폭이야?’ 싶었는데, 그 말의 의미가 무언지 확 다가왔다.
아, 이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너무 죄송하고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byh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1인분 변호사로서 우뚝 서는 것이겠지?
내 진짜 충성을 다한다. 암.
나는 byh 방을 쳐다보며 마음 속으로 충성서약을 맹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