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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우성 변호사 Dec 02. 2024

거짓과 용기 사이: 한 약혼 커플의 선택

제가 운영하는 로펌 머스트노우가 처리했던 사건들을 모티브 삼아, 드라마 형태로 작성해 보는 글입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 조우성 변호사 올림 - 


[4편] 거짓과 용기 사이: 한 약혼 커플의 선택   

  

#1 진실의 무게: VIP룸에 드리운 선택의 그림자  

   

‘운전자 바꿔치기’. 양희범 변호사가 Risk Assessment Matrix에 적은 첫 번째 키워드였다. VIP실의 젊은 약혼자들은 그들의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지 못했다    

 

2024년 3월의 마지막 화요일, 나는 머스트노우의 VIP실에서 한 쌍의 젊은 남녀를 맞이했다. 


기업 홍보팀장 강도윤과 그의 약혼자 장미연이 마주 앉았다. 맞잡은 두 손이 떨리는 것을 보며 나는 이들의 불안을 읽었다. 장미연은 약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을 이었다.VIP실의 조도를 중간 단계로 조절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우리 로펌의 상담 매뉴얼에 따르면, 이런 예민한 사건일수록 부드러운 조명이 긴장을 완화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    

 

"퇴근길 교통사고였는데, 제가 운전했다고 진술했어요."


미연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도윤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사연인즉, 도윤에게는 3년 전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다. 이번에 사고가 나면 면허취소는 물론, 회사에서도 문제가 될 터였다. 순간 공황에 빠진 도윤을 보며 미연이 자발적으로 운전자 바꿔치기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 CCTV는 없었고, 블랙박스도 고장이었어요. 아무도 몰랐을 텐데..." 도윤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 오른편에 앉은 양 변호사가 넥타이 끝을 만지작거리며 Risk Assessment Matrix를 펼쳤다. 그의 책상 위 더블모니터에는 이미 관련 법조문들이 띄워져 있었다. 양 변호사의 완벽주의적 성향은 이런 순간에 빛을 발했다.


그눈 차분히 법조문을 읽어내려갔다. 공무집행방해, 도로교통법 위반. 각각의 단어가 무겁게 울렸다   

  

“특히 사고 은폐 시도 자체가 추가 범죄가 될 수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나는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피해 차량은 어떻게 됐나요?"     


"전방주시를 잘 못하고 있다가 앞차가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뒤늦게 보고 추돌사고가 났어요. 상대방 운전자가 경추 염좌로 3주 진단을 받았고, 차량 수리비와 합의금으로 1,200만원을 지급했습니다." 도윤이 대답했다.

"그래서 경찰 조서에는 장미연 씨가 운전자로 기재되어 있다는 거죠?" 


양 변호사가 볼펜을 들어 확인했다. 그의 왼쪽 주머니에는 늘 그렇듯 세 자루의 볼펜이 정렬되어 있었다.

미연이 고개를 떨구며 작게 대답했다. "네...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머스트노우의 VIP룸에 늦은 오후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2 시스템의 가동: 법과 인간 사이     


양 변호사가 형사 사건 이력을 검토하는 동안, 허 변호사는 보험사 담당자와 통화를 시작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고 있었다.


양 변호사는 형법 제137조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의 적용 가능성을 검토했고, 허 변호사는 보험계약상 고지의무 위반 여부를 살폈다. 우리 로펌의 블루룸에서 양희범은 두 대의 모니터를 번갈아 보며 판례를 검색했다.     


"제가 보기엔 말이죠..."라며 허 변호사가 검은 수첩을 꺼내들었다. 

"피해자의 상해 정도가 심각하지 않고, 합의도 완료된 상태입니다. 다만 운전자 바꿔치기 혐의가 입증되면 실형도 가능한 만큼, 선제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그의 검은 수첩에는 이미 사건의 핵심을 시각화한 도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는 대법원 판결을 인용하며, 자진신고 시 정상참작 사례들을 하나하나 정리했다. 화이트보드에는 그가 그린 사건 경위도가 가득했다.     

"하지만 공무집행방해는 친고죄가 아닙니다." 양 변호사가 지적했다.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박정우 과장이 노크와 함께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방금 팩스로 받은 듯한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보험사 내부 지인을 통해 확인해봤습니다.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8조의 가중처벌 규정이 시행된 지 두 달째라 엄정 대응 기조라고 합니다만..." 그는 잠시 말을 고르더니 이어갔다. "다만 자진신고는 다르게 볼 여지가 있다고 하네요."

사건의 윤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리 로펌의 시스템이 차분히, 그러나 확실하게 가동되기 시작했다     

#3 균열의 시작: 봄땅을 뚫고 나온 진실   

  

CCTV 영상이 발견되면서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첫 균열은 병실에서 시작되었다. 교통사고 피해자가 입원해 있던 301호실. 그곳에서 우연히 같은 병실을 쓰던 환자가 입을 열었다. 


"사고 직후에 피해자 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분명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렸다고 하시더군요."     

교통사고 처리 특례법 개정으로 도입된 주변 영상 의무확보 규정. 그것이 우리가 간과한 변수였다. 그리고 그 화면 속에는 의심할 여지없이 남성이 운전석에서 내리는 모습이 포착되어 있었다.     


보험사의 추가 확인 요청과 피해자의 연락이 이어졌다. 미연은 매번 통화할 때마다 목소리가 흔들렸다. 내 책상 위의 Risk Assessment Matrix는 이미 위험 수준을 알리는 붉은색으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경찰청 교통사고조사 표준매뉴얼에 따른 후속조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어느 흐린 오후, 미연이 떨리는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왔다. "경찰이..." 미연의 숨이 거칠어졌다. "현장 검증을 다시 한답니다."


더블모니터 앞에서 판례를 검토하던 양희범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왼쪽 주머니에서 볼펜 세 자루가 어김없이 빛났다. "혹시 블랙박스는..."

"네... 주변 상가 CCTV도 모두 확인한다고 해요." 미연의 목소리는 이제 울음 섞인 떨림으로 변해있었다.

그날 오후 늦게 블루 포커스룸에서 미연을 다시 만났다. 벽면의 화이트보드에는 허 변호사가 그린 사건 경위도가 가득했고, 그의 검은 수첩에는 새로운 메모가 끊임없이 추가되고 있었다. 탁자 위에는 손수건과 함께 경찰서 출석요구서가 놓여있었다.     


"이러다 도윤씨까지 위험해질까 봐... 제가 먼저 제안한 거예요. 처벌은 저만 받을 순 없나요?"

허 변호사가 안경을 벗어 닦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건 쉽지 않은 일이니…     

"그 날, 도윤씨가 너무 침울해 보였어요. 3년 전 음주운전 이후로 술 한 모금도 안 마시고, 매일 새벽 출근하면서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던 사람인데... 이번 일로 모든 게 무너질까 봐..."


나는 커피 잔을 들었다. 75인치 전자게시판에는 관련 판례들이 가득했다. 법리적 해결과 인간적 구원 사이, 선택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박정우 과장이 노크를 했다. 그의 손에는 새로운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대표님, 교통계 담당 형사가 내일 정식 수사에 들어간다고 합니다."     


 #4 결단의 순간: 흐르는 강물처럼     


오전 8시 정각, 브리핑실의 모니터에는 이미 세 건의 CCTV 영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Morning Brief 시스템에 따라 모인 구성원들의 얼굴에도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형사소송법 제52조와 보험사기방지특별법 제10조의 자진신고 감면 규정을 적용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야…" 내 목소리는 예상보다 더 건조했다.     

양 변호사가 왼쪽 주머니의 볼펜을 하나씩 점검하며 말을 이었다. "의뢰인들이 동의할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커피 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뜨거운 커피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제가 직접 경찰서에 가겠습니다."


도윤의 목소리는 의외로 단단했다. 미연이 그의 손을 잡았다. 양 변호사는 말없이 의견서 작성에 몰두했다. 그의 더블모니터에는 수십 개의 판례 검색 창이 열려있었다.     

한비자의 말이 떠올랐다. 법은 물처럼 흐른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의 이치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그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뿐이었다.     


# 5. 새로운 시작     


한 달 후, 우리는 최종 결과를 전달받았다. 보험사는 자진신고를 고려해 형사고발 대신 행정처분으로 사건을 종결했다. 도로교통법상 벌점 부과로 마무리된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도윤이 고개를 숙였다.


미연의 어깨가 긴장에서 풀리는 것이 보였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깊은 위로가 된다.

미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이제 정말 새로운 시작인가 봐요."

피해자는 오히려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왔다. '젊은 부부의 용기 있는 선택을 응원합니다.'". 

    

도윤과 미연은 예정된 날짜에 결혼식을 진행했다. 법률사무소 머스트노우 구성원들도 참석했다.

일주일 후, 허용일은 이 사례를 '허변의 실무썰'에서 다루었다. 그의 유튜브 채널은 처음으로 조회수 1만을 돌파했다. 댓글에는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의 공감이 이어졌다.          


덧.


라틴어 법언(法言):

"Veritas vos liberabit"

(진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 출처: 성경, 요한복음 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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